몇 년 전부터 언론은 한국전쟁 직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베이비 부머(Baby Boomer)에 관한 기사를 쏟아 내고 있다. 약 700만 명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 인구집단인 베이비 부머들의 임박한 은퇴에 대해 노후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 수준, 노후 주요 수입원인 공적, 사적연금 비중이 선진국 대비 턱 없이 부족하다는 점(미국 67%, 일본 67.5%, 독일 84.3%, 한국 13.2%)을 제시하고 있다. 맙소사. 언론이 조장하는 불안감 때문에 없던 멘붕도 생길 판이다. ‘그래서 언론은 우리에게 지금 뭘 어쩌라는 것일까?’
우리는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소크라테스가 되기 보다는 돼지부터 되었어야 했다. 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지적 사유는 정지되어 버렸고,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우리는 ‘성과주의’ 사회로 진입하였다. 이른바, 한병철 교수가 이야기하는 ‘자기착취’의 피로사회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고, 은퇴 이후의 삶 역시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을 뿐이다.
■ 진정한 멘붕은 아직 오지 않았다
베이비 부머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고, 앞으로 부딪혀 갈 진정한 멘붕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만은 아니다. 사실, 그들은 먹고 사는 문제만큼은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살기 위해 그들은 비정규직과 저숙련직을 마다 하지 않을 것이고 오랜 습관처럼 갑에게 무릎 끓고 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이전 직장에서 만들어진 ‘관계망’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 낼 것이다. 오히려 그것보다 베이버 부머에게는 ‘의미 없이 살아가야 하는 공허노동’이 더 낯설고 서럽고 어렵다.
베이비 부머는 태어나자 마자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가진 어떤 집안의 아들(딸), 어느 지역, 어느 학교의 몇 등, 무슨 직업 어떤 직위에 있었는지, 외적 신분이 그 사람의 대부분을 설명하던 사회에 살아 왔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외적으로만 규정되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는 개인의 인품, 능력, 성취에 대해서는 아마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과거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고 누구를 아는가가 은퇴 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믿을 것이다.
■ 멘붕이 새로운 동력이 되는 사회
우리의 진정한 위기는 누구나 언젠가 맞이하게 마련인 인생의 터닝포인트(Turning Point)를 과거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시민혁명의 경험이 일천했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사유가 없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많이 부족하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과 가족과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내 인생의 경제적 문제는 어느 수준에서 타협할 것인지, 그래서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 나갈 것인지’ 에 대한 논의는 없고, 오로지 돈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돈을 도외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돈은 우리의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700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사회집단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든, 어떤 이는 ‘지금부터라도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 또 어떤 이는 ‘지금부터 제대로 돈 한번 벌어 봐야겠다’고 할 수도 있다.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기 보다, 세상을 향한 엉뚱한 불만을 표출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기 보다 차라리 현재의 멘붕을 예찬하라. 그리고, 가장 자기다운 삶을 살아낼 준비를 하라.
스티브 잡스는 다시 말한다. “애플에서 해고당한 사건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성공이란 중압감 대신 찾아온 초심자의 가벼움, 약간의 불확실함,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그 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안다.
혹시 스티브 잡스와 당신은 나이, 경제력, 정신력 면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아직 당신은 멘붕을 겪고 있지 않은 행복한 사람이다.
글_최경춘 한국능률협회(KMA) 상임교수
► 리더십교육/ 성과향상 코칭/ 감정코칭 등 다수 경영분야 강의
► 대구 성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미국 University of Washington(MBA)/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영학 박사(수료)/ LG 인화원 기획팀장(부장)/ 팬택 아카데미 본부장(상무)/ 엑스퍼트컨설팅 본부장(상무)/ LG CAP,Work-out Facilitator/ Hay Group Leadership Facilitator/ KMA Assessment Center Ass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