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하늘내린 박태희(왼쪽)와 오유진. 오유진은 정규시즌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보다시피 부광탁스가 7등이다. 전혀 뜻밖이다. 부광탁스는 이미 며칠 전에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상황이었지만 순위와 자존심은 별개라는 듯 19일 마지막 대전에 최정-위즈잉을 출격시켰다. 최정의 상대는 헤이자자 6단, 위즈잉의 상대는 박태희 초단. 4연패 늪에 빠져 있는 헤이자자는 사뭇 비장한 표정이었다. 중반까지 최정을 리드했다. 최정의 대마를 몰아쳤다. 목말랐던 1승이 여기서 터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잘 두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흐트러지곤 하던 모습을 재현하며 헤이자자는 5패로 주저앉았다.
박태희는 수세에 몰리자 오히려 서두르지 않았다. 침착하게 호흡을 조절하면서 조금씩 치고 빠지고 하다가, 종반 입구에서 이때다 싶은 기회를 포착하자 대마를 방치하고 몸을 날려 큰 끝내기 두 곳을 독차지했다. 역습이었다. 흑이 대마를 살리면 큰 끝내기로 손을 돌려 판을 정리하려던 위즈잉이 불의의 역습을 받자 흔들렸다. 박태희의 대마를 잡으러 갔다. 사실 백 대마는 위험해 보였다. 그러나 박태희는 마지막 초읽기 속에서도 활로를 찾아낸다.
<1도>가 위즈잉과 박태희의 바둑이다. 좌상귀 쪽 백△와 우상귀 쪽 △, 이게 위즈잉을 자극한 큰 끝내기였다. 흑의 권리라고 해도 괜찮은 곳이었는데 두 곳을 모두 빼앗긴 것. 해설자 이희성 9단의 목소리가 커졌다. “좌변 백 대마가 살면 집으로는 백이 남습니다. 역전 모드입니다.”
위즈잉이 백 대마를 향해 흑1~5로 칼을 뽑았다. 아닌 게 아니라 대마의 생사가 위태로워 보인다. 게다가 마지막 1분 초읽기. 박태희는 시간을 확인한 후 <2도> 백1로 찝고 3으로 가만히 늘면서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겼다. 살았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흑4, 아무튼 차단해야 한다. 위즈잉의 표정도 단호하다. 여기서 백7, 이희성 9단이 탄성을 질렀다. “살았습니다! 이 수를 보고 있었군요. 위즈잉 선수는 못 보았을까요?”
위즈잉은 당황했던 것 같다. <3도> 흑1로 시간을 벌더니 3으로 치받는다. 흑3에는 백4로 가만히 잇는 묘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로 대마는 살았고 바둑은 역전이었다. 모양으로는 <4도> 흑1로 치중하는 것이 급소처럼 보인다. 백2로 잇는다면 흑3, 이건 대마가 잡힌다. 그러나 <5도> 백2로 이쪽을 잇는 수가 있다. 흑3 자리에 두어 집을 내는 것과 4의 곳을 이어 연결하는 것이 맞보기. 그렇다면 대마는 못 잡는다고 하더라도 <6도> 흑1~5면 여기 집이 쏠쏠하게 나는 것 아닌가. 백이 4집반을 이긴 바둑이니 이랬으면? 그게 여의치 않다. 우상귀 쪽에서 백이 6으로 끌고 나오는 큰 끝내기가 남아 있다. 백8-10에서 흑A 따내고 백B로 넘고, 흑C에는 백D로 버티는 수도 있다. 그렇다고 중앙을 흑5로 막아두지 않으면 백E로 올라갈 때 응수가 없다.
박태희 역전승에 뒤미처 인제의 신데렐라 오유진 2단이 부광의 김나연 초단을 제압해 인제가 2 대 1로 이기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의 8부 능선을 넘었다.
부광의 탈락은 이변이다. 주장 최정은 8승4패로 역할을 잘 감당했지만, 기대했던 위즈잉이 4승3패에 그친 것이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부안도 탈락이다. 선수 선발식 때 1지명권을 가졌던 부안의 강승희 감독은 최정 아닌 김혜민을 선택했는데, 믿었던 김혜민의 후반 6연패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서울과 부안은 침울하고 인제는 들떠있다. 헤이자자는 안타깝지만, 오유진-박태희, 두 초단이 팀의 7승을 합작한 것(오유진은 18일에 2단으로 승단했다). 더구나 오유진은 개인 전적 10승1패로 남은 대국 승패와 관계없이 상금 100만 원의 정규 시즌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했다(상금이 좀 적은 느낌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