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중국명성기금 소규모 사업설명회(피해자 제공 영상캡쳐)
지난 3월 26일, 주부 A 씨는 <일요신문>과 통화하며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A 씨는 지인으로부터 ‘하루에도 투자금 대비 3%가 꼬박꼬박 수익금으로 들어오는 투자처가 있다’며 소개를 받았다. 마침 그는 오랜 기간 일한 회사에서 퇴직한 후 목돈이 생긴 참이었다. 지인의 제안에 솔깃한 그는 덥석 퇴직금 7000만 원을 투자했다.
“지인은 그 투자처, 중국명성기금이 공기업이라고 했다. 지인을 통해 서울 강남에 위치한 ‘센터’에서 투자설명회를 들었다. 막대한 자본금을 자랑하는 해당 기업은 중국 현지서 체육복권사업 등에 투자해 수익금을 낸다고 설명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터지는 로또라고 했다. 처음에는 실제 내 계좌로 3%에 달하는 수익금이 꼬박꼬박 들어왔다. 약 2000만 원 정도의 투자금을 회수했을 때쯤, 갑자기 해당 사이트가 문을 닫았고 센터는 비어있었다. 센터에서 상품을 소개한 강 아무개 씨는 ‘나도 피해자’라며 배 째라는 식이었다.”
피해자는 A 씨만이 아니었다. 불법 유사수신 조직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사례를 공유하는 한 유명 온라인 카페에 중국명성기금의 피해 사례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유사수신 피해자들을 상담해 온 카페 운영자는 “지난해 5월경부터 중국의 거대 공기업을 빙자한 일명 중국명성기금이라는 불법 유사수신 조직이 사이트를 개설하고 전국의 센터를 운영하며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피해신고가 접수되고 있는 부천 원미경찰서 앞에서 만난 다른 피해자 B 씨는 경북 영양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지역 피해자들의 위임장을 챙겨 오는 참이었다. B 씨는 “지난해 12월 나와 친인척들의 돈 8억 원을 중국명성기금에 투자했다 날벼락을 맞았다”며 “우리 동네 전체가 완전 쑥대밭이 됐다. 경북과 경남 지역에도 피해자들이 수두룩하다. 사업을 소개한 센터장이 있다는 사무실을 수소문해 찾았지만, 이미 뜬 상황이더라. 전화도 끊겼다.”
그러면서 B 씨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직접 촬영한 동영상 한 편을 <일요신문>에 제공했다. 서울 사당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있었다는 중국명성기금과 관련한 소규모 투자설명회였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일명 센터장은 “중국명성기금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투자하는 펀드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일반 펀드와 달리 수익성과 안전성이 보장된다”며 “1억~2억 원 푼돈이 아닌, 장기간 프로젝트에 수백억 원을 투자하는 거대 기업”이라고 사람들을 꼬드기고 있었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C 씨는 서울 강남의 한 센터를 통해 2억 3000만 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매일 수익금이 들어와 8000만 원 정도를 회수했을 때, 갑자기 일이 터져버렸다”며 “강서체육복권이라는 구체적인 로또 투자 사업까지 들먹였고, 실제 통장에 돈이 들어왔기 때문에 의심할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앞서의 카페 운영자는 “다른 조직과 비교해 피해 규모와 확대 속도가 매우 빨랐다. 무엇보다 3%에 달하는 수익금이 매일 들어왔으니, 떡밥이 제법 컸기 때문”이라며 “현재 카페에서 자체적으로 조직의 운영기간과 운영센터 개설 수 및 피해자 규모를 파악해보면 피해금액은 최소한 500억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산 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피해자들이 밝힌 중국명성기금의 투자 명목은 현지 체육복권사업이 주요 골자다. 그밖에 <일요신문>과 접촉한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복권사업 이외에도 광물사업, 도로건설 등도 언급됐다.
현재 피해자들이 지목하고 있는 조직의 핵심은 이 아무개 씨다. 이 씨는 갖가지 법인명으로 5개의 계좌를 만들고, 피해자들의 투자금을 모집해 왔다고 한다. 이 씨가 이미 지난 2013년 또 다른 유사수신조직에 관여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앞서의 카페 운영자는 “이 씨는 2년 전, A 사 유사수신조직에 관여했던 인물”이라며 “다만 당시 피해 금액이 적고, 피해자들도 공론화를 원하지 않아 묻혀버린 바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일 부천 원미경찰서 관계자는 “지난 3월 9일 사이트 폐쇄 이후 우리 쪽에 소장이 접수됐고, 현재 수사에 착수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도 전국에서 피해자 신고를 접수받고 있다”면서 “다만 이제 막 수사에 나선 상황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피해 규모와 혐의 내용 입증을 논하기는 이르다. 조직 소탕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설명했다.
인천의 센터를 통해 투자했다는 또 다른 피해자는 “어차피 원금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리도 안다. 허무맹랑한 말에 속아 일확천금을 꿈꿨던 우리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다”면서도 “다만 이번 수사를 통해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피해신고를 했다. 꼭 조직을 소탕하고 공론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앞서의 카페 운영자는 “일선 센터장들이 ‘어차피 당신들도 불법에 관여한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있다”며 “한편으론 가족에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또는 원금 회복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피해 접수를 주저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조직 소탕을 위해선 결국 피해자들의 협조가 우선”이라고 당부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