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은 2003년 우리나라 대기업 중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출범했다. 박은숙 기자
이후 SK그룹·GS그룹 등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으며 한진그룹·두산그룹·CJ그룹 등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모색해왔다. 또 지난해부터 시작된 삼성그룹·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일부 대기업들의 사업구조 재편 과정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해석됐다.
정부에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요건 중 하나로 지주회사 체제를 독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기업에 세제혜택 등을 주고 있다. 이를 테면 배당금이나 브랜드 사용료 등 지주회사의 수입원에 대해 세금을 일정 부분 감면해주는 것이다.
지주회사는 크게 순수지주회사와 사업지주회사로 나뉜다. 순수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회사를 지배·관리하는 일만 하는 회사며 사업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배·관리 외에 직접 다른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를 일컫는다. 우리나라 대기업 중에는 GS그룹의 (주)GS가 순수지주회사의 대표적인 예로 통한다. 사업지주회사로는 LG그룹의 (주)LG, 두산그룹의 (주)두산 등이 있다. 여의도 트윈타워 사옥을 보유하고 있는 (주)LG의 경우 임대료를 받는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업지주회사로 분류될 만큼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혹은 지주회사 격인 회사는 대부분 사업지주회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LG그룹 이후 SK그룹과 GS그룹 등도 잇따라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이종현 기자
지주회사 체제는 우리나라의 대부분 대기업이 갖추고 있는 순환출자 구조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지향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순환출자 구조에서 가장 큰 단점은 한 계열사가 어려워지면 순환출자로 연결돼 있는 다른 계열사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라며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한 계열사가 무너지더라도 다른 계열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LG그룹의 예를 들자면, 과거 순환출자구조에서라면 LG화학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경우 순환출자로 연결돼 있던 LG전자, LG유플러스 등이 함께 큰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짙다. 하지만 지금처럼 지주회사인 (주)LG와 각 계열사들이 일 대 일로 연결돼 있는 상태에서는 비록 LG화학이 어려워지더라도 실적 좋은 다른 계열사가 어려워질 일은 없다. 순수지주회사를 표방하는 GS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설사 GS칼텍스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더라도 GS리테일, GS홈쇼핑, GS글로벌 등 다른 계열사들이 함께 흔들릴 위험은 적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삼성그룹은 오랫동안 유지돼왔던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제일모직’이라는 순환출자 고리가 지난해부터 단행해온 사업재편을 통해 단순화됐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의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회사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도 순환출자 구조의 단점으로 꼽힌다. 순환출자 구조에서 만일 한 계열사가 자금난에 시달려 증자 등을 실시할 경우 그곳에 출자한 다른 계열사는 지분율을 유지하고 대주주로서 책임을 지기 위해 증자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영업이익을 많이 낸다 해도 순환출자로 연결돼 있는 한 계열사가 어려워지면 그 이익을 설비 확장, 연구개발(R&D), 인수·합병(M&A) 등에 투자하지 못하고 어려운 계열사를 지원하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순환출자 구조가 유리한 점도 있다. 한 계열사가 곤란한 지경에 이를 경우 훨씬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순환출자구조에서는 그룹 차원에서 빠른 의사결정과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체제가 깔끔하고 투명한데도 대기업들은 왜 여전히 순환출자구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의 지분 20%(비상장사 40%)를 보유해야 한다.
삼성그룹이 만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면 설립하는 지주회사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 30%를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 주당 150만 원에 이르는 삼성전자 지분 30%를 확보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삼성SDI, 삼성SDS, 삼성물산 등의 지분도 확보해야 한다.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수십조 원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많은 비용이 들었다”면서 “삼성과 현대차 등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대기업은 완전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너 입장에서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도 순환출자 구조의 매력이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지분 3.38% 등 낮은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현행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체제 역시 큰돈 들이지 않고 전체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지적도 적지 않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현재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있는 대기업들만 봐도 지주회사 지분만으로 그룹 전체에 오너십을 강화했다”며 “순환출자 구조에서 오너의 지배력이나 지주회사 체제에서 그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한 대기업 고위 인사는 “어차피 우리나라 오너십은 어떤 체제에서는 황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며 “다만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경영의 투명성을 전제로 법적 틀에서 보장받을 수 있어 유리하다”고 전했다.
비록 경영의 투명성과 지배구조의 단순화를 위해서 필요하다지만 지주회사 체제가 강제적 조항은 아니다. 재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지주회사 체제의 장점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강정민 연구원 역시 “지금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체제가 이상적인지는 의문”이라며 “올바른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기 위해 새로이 계열사들의 지분을 매입할 만큼 자금 여력이 있는 기업을 찾기 힘든 현실에서 기업 상황에 맞춰 사안별로 나눠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 움직임이 새삼 재계의 이슈로 부각된 까닭은 오너 3, 4세들의 경영시대가 도래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난 3월 31일 “올해 지주회사 전환이 그 언제보다 활발할 것”이라며 오너 3세들로의 경영 이전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김 연구원은 “그룹을 넘겨받은 재벌 2세들은 1세 때와 같은 고 성장기를 누리지 못해 3세, 4세들이 부를 축적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3세, 4세로 지분 이전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최근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며 경영이전과정은 진행 중이지만 상속 대상이 되는 기업의 규모를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줄이거나 증여·상속을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를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앞의 대기업 고위 인사는 “우리나라에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사실상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오너가 모든 계열사에 지배권을 행사하기 힘든데, 지주회사를 통하면 다 지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훗날 계열분리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귀띔했다.
대기업들의 이 같은 지주회사 중심의 경영권 승계와 연장 움직임에 대해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개선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산층 붕괴와 빈부간 격차가 심해진 원인 중 하나가 대기업 위주의 편중된 경제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을 볼 때, 그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하드웨어가 바로 대기업의 지주회사에 의한 경영권 평생세습이라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죽어가는 서민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고민하는 것보다 경영권 유지·승계에 더 애쓰고 있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두산, 지주사 지위 포기 내막 너무 잘나가서 문제라고? 대기업 지주회사 중 대표적인 사업지주회사로 알려졌던 두산그룹의 (주)두산이 최근 지주회사 요건에서 벗어나 지주회사 체제를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산그룹에 따르면 (주)두산은 동양맥주 시절부터 자체 사업을 해오던 회사로서 현재 전자 사업을 비롯해 유압부품 사업, 정보통신 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1968년부터 시작한 지게차 생산·판매 사업은 국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주식가액 합계액(지주비율)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지주회사 (주)두산이 보유하고 있는 두산중공업 등 자회사 지분가액이 자산 35조 원의 절반인 17조 5000억 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주회사로 전환했을 당시인 2009년 (주)두산의 지주비율은 66.1%였다. 하지만 (주)두산이 사업을 확장해나가면서 자산이 증가, 2011년 지주비율은 54%로 낮아졌고 2013년에는 51.6%로 줄어들었으며 지난해에는 47.8%로 감소했다. (주)두산이 지주회사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면 자회사 지분을 추가 매입하거나 자산 중 일부를 매각해 지주비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지주비율을 다시 50% 이상으로 높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주)두산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에서 제외된다. 두산 관계자는 “그렇다고 잘 되는 사업을 포기하거나 사업영역을 확장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비록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세제혜택 등은 포기해야 하지만 내부적으로 지주회사 체제는 유지할 것이며 투명경영과 관련해서도 변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주)두산의 경우는 재계 일부에서 사업지주회사의 맹점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임] |
금융사는 지주사제 해체 러시 시너지는 없고 집안 싸움만…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과 달리 금융사들은 기존 지주사 체제를 잇달아 해체하고 있어 대조된다. 국민은행 본점 입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해부터 지주사 체제를 포기한 금융사는 우리, 씨티, 산은 등이다. 2001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지주사로 기록돼 있는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정부의 민영화 방안에 따라 지난해 11월 우리은행과 합병했다. 합병 후 우리은행으로 존속회사로 하면서 우리금융지주는 자연스레 사라졌으며 주식시장에서도 우리은행이 우리금융지주의 자리를 대신했다. 산은금융지주 역시 지난 1월 1일 해체됐다. 정책금융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산은금융지주와 정책금융공사가 산업은행에 흡수합병되면서 사라졌다. KDB대우증권, KDB생명, KDB캐피탈 등 산은금융지주의 계열사였던 회사들은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됐다. 한국씨티금융지주도 지난해 10월 31일 한국씨티은행과 합병하면서 2010년 설립 후 4년 만에 사라졌다. 금융권에서는 SC금융지주 역시 조만간 은행과 합병하고 해체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기업과 달리 금융사들이 잇달아 지주사 체제를 포기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결과다. 오히려 자회사들과 갈등을 일으키기 일쑤며 실적 악화에 따른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금융지주사 특성상 은행 비중이 클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서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사이에 갈등과 알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대표적인 사례가 KB금융지주다. 최근 금융지주 회장이 은행장을 겸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지주사들의 내분이 사회적인 문제가 크게 부각하자 금융권 일부에서는 ‘금융지주사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사 무용론은 지금도 유효한 상황”이라며 “지주회장과 은행장의 겸직이 당연시되다시피 한 현실에서 옥상옥 같은 금융지주사가 꼭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