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내놓은 한식뷔페는 1만~2만 원 초반대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후식까지 해결할 수 있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대기업들의 공세에 주변 상권이 몰락하고 있다. CJ푸드빌 ‘계절밥상’ 용산점 전경.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으르렁거리면서도 비교적 서로의 영역을 지켜가며 아슬아슬한 공생을 이어오던 대기업과 중소상공인의 관계는 유통업계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이 대형마트에 이어 기업형 슈퍼마켓(SSM)까지 손을 뻗치자 중소상공인들은 “영세업자들을 다 죽이는 행태”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문어발식 확장을 이어나가는 대기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번지자 정부는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를 출범시켜 중재에 나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사회적 갈등 문제를 논의하고 민간 부문 합의를 도출하겠다.’
야무진 포부를 가지고 출범한 동반위는 이듬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도 탄생시키는 등 갈등 봉합에 앞장섰으나 곧 대형 악재가 터졌다. 2012년 일명 ‘재벌 빵집’으로 발발한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대기업과 중소상공인의 불붙은 갈등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된 것이다. 당시 이전까지만 해도 한 치의 양보도 없던 대기업도 거센 여론에 골목상권 논란에 휩싸인 사업을 매각 혹은 철수(박스기사 참고)까지 하며 사태진압에 나서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동시에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의무휴업 및 영업제한 조치가 내려졌고 그렇게 골목상권 침해 논란은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골목상권을 둘러싼 갈등은 대상만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 대형마트와 SSM이 뜨거운 감자였다면 이젠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시장이 그 자리를 물려받은 모양새다.
대기업들은 홍역을 치르며 여러 규제가 생긴 대형마트와 SSM를 뒤로하고 새로운 먹잇감으로 아울렛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상 아울렛시장은 진입장벽도 높지 않고 특별한 제재가 없는 상태라 롯데, 신세계에 이어 현대까지 유통업계 ‘빅3’ 모두 경쟁적으로 덩치 키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주요도시 근교에 자리하던 아울렛들이 도심으로 진출하고 있어 골목상권에게 더욱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롯데백화점은 서울역에 이어 서울 강남에도 도심형 아울렛 운영을 검토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만 해도 인천, 경기, 경남 등지에서 오픈을 예정하고 있다. 신세계 역시 복합쇼핑몰을 통한 도심아울렛시장을 공략할 계획인데 뒤늦게 합류한 현대백화점도 지난해 가산 디지털단지 인근에 첫 도심형 아울렛을 연데 이어 올해 하반기 송파구 장지동 가든파이브에 2호점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아울렛이라는 신무기를 장착하고 도심으로 파고들자 입점이 예정된 인근상권 소상공인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며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인천지역의 롯데아울렛 입점 반대 비대위 관계자는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상권을 자랑하는 신포동 일대가 롯데아울렛에 잠식당하게 생겼다. 롯데마트를 아울렛으로 변경하는데 별다른 규제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1㎞’라는 규제도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다. 롯데아울렛 인천항동점도 인천종합어시장과 1.5㎞ 거리에 있어 이를 비켜갔다. 그나마 보호를 받는 전통시장이나 지하상가는 형편이 나은 편이나 실질적인 피해를 입는 골목상권은 방치되고 있다. 우리들이 다 죽고서야 대책을 세워봤자 뭐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반발이 극심함에도 대기업들은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구멍가게도 아니고 법적으로 모든 사항을 체크하고 사업을 진행한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최대한 협조를 하고 있는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타깃은 끝이 없다. 이제는 한식까지 접수했다. ‘신종 골목상권 파괴범’이라 불리는 한식뷔페는 2013년 7월 CJ푸드빌이 ‘계절밥상’ 브랜드를 내놓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한식은 ‘손이 많이 가고 돈 안 되는 업종’이라 치부해 대기업들의 관심 밖이었지만 계절밥상이 예상외의 흥행을 거뒀다. 그러자 이랜드는 ‘자연별곡’을, 신세계는 ‘올반’이라는 이름으로 한식뷔페를 시작했고 롯데도 올해 합류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동반위 관계자는 “대기업 한식뷔페도 신규 매장을 낼 경우에는 역세권 100m 이내에 출점이 가능하고 연면적 2만㎡ 이상인 복합다중시설에 입점해야 하는 제약을 지켜야 한다. 다만 대기업 본사나 계열사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과 시설에서는 연면적과 관계없이 출점할 수 있다”며 “실질적으로 중소상공인들을 보호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상공인들의 다툼은 ‘백년전쟁’이라는 말을 들었다. 100년을 싸워도 해결나지 않을 것이란 뜻이기도 하고 기업의 ‘욕망’은 100년을 가도 그대로일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욕망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효율적인 분배’에 대해서는 사회의 뜻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지금껏 대기업은 웨딩사업, 빵집, 분식, 문구 등 수많은 골목상권에 손을 댔다가 논란에 휩싸여 철수를 하고도 또다시 새로운 사업으로 서민들의 밥그릇을 탐내왔다. 이제는 “그냥 먹고 살게만 해 달라”고 하소연하는 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갈수록 ‘있는 자’와 서민의 차이가 너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광명 지역상권 초토화 코스트코-롯데아울렛-이케아 유통공룡에 깔려 ‘질식’ 경기 광명시에서 만난 소상공인들은 “골목상권이 질식했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허허벌판이었던 공간이 ‘공룡들의 집합소’로 돌변하면서 그 덩치에 눌려 골목상권이 질식했다는 뜻이었다. 소상공인들의 말이 엄살은 아니다. 광명시에는 지난 2012년 오픈한 미국의 대형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를 선두로 지난해 ‘유통 공룡’ 롯데그룹의 롯데프리미엄아울렛과 ‘가구 공룡’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이케아 국내 1호점까지 입성했다.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광명점(위)과 이케아 광명점 전경.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변의 골목상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광명시내에서 가구 및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이케아 개점에 따른 지역상권 영향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55%가 “매출이 감소했다”는 답변을 내놨다. 실제 지난 14일 광명 가구거리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조사 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17년 동안 장사를 했다는 한 가구점 사장은 “언론에서 이케아 때문에 가구거리가 활성화됐다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해서 인터뷰도 하기 싫다. 눈으로 직접 봐라. 주말도 이케아가 있는 쪽만 바글거리지 아예 이쪽으로는 발길을 돌리지도 않는다”며 “가구업체뿐만 아니라 식당, 옷가게, 동네 철물점까지 계속 문을 닫고 있다. 우리가 죽는 소리를 해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있지만 지금 광명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곧 대한민국 전체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룡’들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입은 서민경제 몰락의 서곡이 될 수도 있다. [박] |
논란의 ‘재벌 빵집’ 지금은… 공주님 품 떠난 후 줄줄이 죽 쑤는 중 ‘재벌 빵집’ 논란으로 한창 시끄러웠던 2012년 이후 반강제적으로 대기업과 결별하는 베이커리 및 외식업체들이 줄을 이었다. 당시 대기업들은 재벌 2~3세까지 가세해 의욕적으로 ‘먹을거리’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대부분의 업종이 골목상권과 겹쳐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재벌이 소상공인들의 밥그릇까지 넘본다는 지적이 계속 됐고 결국 대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문제가 된 업체들의 지분을 매각하거나 사업 철수를 결정해야 했다.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과 롯데호텔 장선윤 상무가 각각 맡았다 손 뗀 아티제(왼쪽)와 포숑. 이 시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외손녀인 롯데호텔 장선윤 상무는 당시 집중 폭격을 맞은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프랑스 명품 베이커리 ‘포숑’ 한국 사업을 맡고 있는 블리스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었는데 논란을 이기지 못하고 지분 전체를 매일유업과 영유통에 매각하고 업계를 완전히 떠났다. 신세계 정유경 부사장은 베이커리 브랜드인 ‘데이앤데이’ ‘달로와요’와 레스토랑 ‘베키아에누보’ 등을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SVN 지분(40%)을 전량 매각했으며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도 베이커리카페 ‘아티제’를 운영하는 보나비를 대한제분에 넘겼다. 이와 동시에 호텔신라는 고급레스토랑 ‘탑클라우드’의 운영업체인 탑클라우드코퍼레이션까지 동아원에 매각했다. 비록 대기업에서 떨어져 나온 업체들이 또 다른 중·대기업으로 흡수돼 아쉬움을 남겼으나 소상공인들은 어쨌든 상생의 길이 열렸다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대기업이 떠난 자리에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기업들과 대기업과 다름없는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파고들었고 무엇보다 대기업으로부터 쫓겨난 업체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등 떠밀려 별다른 준비 없이 대기업의 후광에서 벗어나니 브랜드 파워 약화, 마케팅 전략 부실,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른 부적응 등 온갖 문제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생겨났고 신규 채용도 악화됐다. 파티시에를 꿈꾸며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손 아무개 씨(여·30)는 “이쪽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2012년~2013년은 재앙의 해라 부른다. 이미 취직한 사람들도 고용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해고를 당하기 일쑤였고 신규채용도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매출 부진도 이어졌다. 삼성그룹 계열사를 등에 업고 매장 확장에 열을 올리던 아티제는 한순간에 동력을 잃어 보나비에게 적자의 굴욕을 안겼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나비는 매각이 이뤄진 2012년까지는 흑자를 자랑했으나 이듬해 적자로 돌아서더니 지난해도 22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탑클라우드코퍼레이션 역시 동아원의 경영난까지 겹쳐 지난해 3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더니 현재는 재매각이 추진 중이다. 블리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매각 후 본만제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을 했지만 지난해 1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2013년에 비해 적자 폭이 2배로 확대된 것이다. 또한 12개의 롯데백화점에 당당히 자리하던 ‘포숑’ 매장도 급격히 줄어들어 현재는 4개만 운영되고 있다. GS리테일이 야심차게 선보인 ‘미스터도넛’도 한때 전국 100여 개의 점포를 자랑했지만 마케팅 실패와 골목상권 침해논란이 더해지면서 백기를 들었다. 지난해 8월 지방의 한 중소기업 손으로 넘어간 미스터도넛은 현재 10여 개의 매장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한편 적자를 버티지 못해 폐업에 이른 곳도 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하는 업체 아래에서 영업을 하다 갑자기 분리되는 바람에 위기를 맞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스터피자로 유명한 MPK그룹의 외식업체 ‘제시카키친’이 대표적인 사례다. MPK그룹은 제시카키친을 8년 동안 운영해왔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적용대상으로 선정돼 2013년 동반성장위원회로부터 추가 출점 제한을 권고 받았다. 제시카키친의 성장이 불투명해지자 MPK그룹은 지난해 20억 원을 받고 코코엔터테인먼트에 매각결정을 내렸다. 외식사업과 전혀 관련 없는 새 주인을 만난 제시카키친은 급격한 경영 악화에 시달리게 됐고 매각 4개월 만에 6억 원의 적자를 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여기에 임금 체불, 납품업체 대금 미납 등의 압박까지 더해진 제시카키친은 끝내 서울 남부지법에 파산 신청을 내고 말았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