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인간시장>에 출연중인 김상경. 작품이 여러 번 리메이크 되면서 주인공이 대항하는 ‘사회악’의 모습도 변화를 보인다. | ||
최근 SBS에서 리메이크한 <2004인간시장>에서도 장총찬은 여전히 사회악과 싸우고 있다. 2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장총찬의 ‘적’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원작 작가인 김홍신은 “<인간시장>이 팔리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1980년대나 2000년대나 여전히 우리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는 셈. 장총찬이 그간 싸워온 적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사회악 변천사를 한번 들춰보자.
81년 첫 선을 보인 소설 <인간시장>은 총 2부 10권 분량으로 출판돼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베스트셀러. 주인공 장총찬은 80년대의 갖가지 사회 문제와 정면 승부를 벌였고, 소설이 영화와 드라마로 리메이크되면서 그가 ‘맞짱 뜨는’ 사회악이나 비리도 궤를 달리해 왔다.
가장 먼저 이 소설을 리메이크한 것은 지난 83년 제작된 영화 <인간시장>. 70년대 <얄개시대> 시리즈의 진유영과 원미경이 ‘원조 장총찬’과 여주인공 ‘다혜’를 맡아 이후 <인간시장> 2·3탄에도 모두 출연했다. 83년작 <인간시장>에서 장총찬의 첫 번째 적은 ‘사이비 종교’. 당시 불안한 사회 심리를 틈타 서민들을 기만하며 설치던 사이비 종교와 정면 대결을 펼친 것.
2년 뒤인 85년 개봉된 영화 <인간시장2>에서 장총찬은 가정주부들을 춤바람 나게 만든 ‘가정파괴’ 제비족, 시골 처녀들을 꼬드겨 ‘늪’에 빠뜨리는 악덕 유흥업자, 그리고 취업을 빌미로 한국 여성들을 일본으로 데려가 유흥가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일본 야쿠자와 맞선다.
▲ 2004년판 박지윤과 김상경. | ||
당시 총 3개의 에피소드를 그린 드라마 <인간시장>에서 장총찬은 ‘인신매매’ ‘철거민 문제’ ‘악덕 교도소장’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이전에 영화 1, 2편을 통해 장총찬이 ‘정신봉’을 가장 많이 휘두른 대상은 가정 파괴 행위와 일그러진 유흥가의 여성수급 문제였다. 하지만 장총찬의 노력과는 별개로 사회악과 비리는 더욱 자라난다. 드라마 속에서 장총찬은 ‘인신매매’로 대변되는 여성의 성 노예화와, 돈과 권력이 유착돼 서민층을 유린하는 ‘철거정책’에 다시 발길질을 쏟아낸다. 또한 교도소의 그늘을 통해서 인권 문제에까지 눈을 뜨게 된다.
그로부터 4년의 시간이 흐른 뒤인 91년 진유영이 직접 감독까지 맡은 영화 <인간시장3>에선 복합적인 사회악이 등장한다. 장총찬은 토착민 철거-신도시 개발에 개입해 권력과 부를 쌓는 밀교 조직과 싸움을 시작한다. 또한 당시 사회문제로 대두된 어린이 유괴 사건도 해결한다.
그리고 1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장총찬은 SBS 미니시리즈 <2004인간시장>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그 동안 급변한 세상은 그에게 또 다른 적들을 내놓았다. 카드 남발로 인한 신용불량자들의 사채문제, 이 과정에서 어린이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는 장기밀매조직….
▲ 원조 주인공 원미경과 진유영. | ||
원작자 김홍신은 “80년대 초반 소설을 쓸 당시에는 정보기관으로부터 ‘민감한 국내 사회 문제를 다루지 말라’는 압력이 있었다”고 얘기한다. 때문에 당시 영화나 드라마 리메이크에도 고위층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하지만 2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권력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변했다. 더 이상 눈치만 보는 관계가 아닌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 된 이상 장총찬이 정치권과 맞서는 것 역시 사회의 변화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게 드라마 제작진의 설명이다.
원작자 김홍신은 열린우리당 후보로 총선을 준비중이지만 틈틈이 작업해 새 소설 <신인간시장>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번에는 국회의원 활동을 통해 보고 들은 국회의 현실을 바탕으로 <신인간시장>을 집필하는데 “이니셜 없이 정치권 인물의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게다가 <신인간시장>에서 장총찬 역시 국회의원으로 변신할 예정.
이제 정치권을 향해 두 눈을 부릅 뜬 장총찬. 많은 이들이 그의 활약을 청량제처럼 받아들이지만 진정 바라는 것은 그가 필요없는 세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