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_오크우드 펜트하우스 내부 2_오크우드 펜트하우스 침실 3_드라마 <파리의 연인> 장면 | ||
대본에 맞는 화면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바로 촬영장 섭외 담당자다. 때로는 멋있게, 때로는 누추하게 극중 분위기에 꼭 맞는 장소들을 찾기 위해 동서남북 뛰어다녀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사는 이들. 섭외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고성권, 옥성일씨를 만나 촬영장 섭외 뒷얘기를 들어보았다.
고성권씨는 얼마 전 종영된 <파리의 연인> 이후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조만간 또 다른 작품에 들어갈 계획이지만, 마지막 몇 주 동안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촬영이 이어져 온몸이 녹초가 됐던 상황. 그러나 “맡았던 드라마마다 시청률이 좋게 나와 뿌듯하다”며 <파리의 연인> 촬영 장소 섭외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파리의 연인>의 초반과 마지막 부분은 파리 현지에서 촬영되었다. 그러나 실내 장면 대부분은 한국에서 촬영된 것이다. 대본에 따라 그때그때 촬영해야 하는 부분을 위해 파리로 급히 날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 화면에서는 구분하기 힘들 만큼 ‘파리 분위기’가 풍기는 장소들만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극중 박신양의 ‘파리 집’으로 나왔던 삼성동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 센터 ‘펜트하우스’는 1백20평, 단 2실만이 있는 고급 객실이었다. 하루 객실료만 6백만원에 이르는 곳. 총 3일 동안 이곳에서 촬영했는데 제작진은 뭘 하나라도 깨뜨리진 않을까 염려해 조심조심 움직여야 했다고 한다. 파손될 경우 모두 변상해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촬영 중 잠깐의 틈이 날 때면 몇몇 스태프는 “언제 이런 데서 자보겠냐”며 침대 위에 잠깐 드러누워 보기도 했다고.
박신양의 한국 집으로 등장했던 곳은 평창동의 한 저택이었다. 개인 소유의 이 집은 섭외가 가장 힘든 곳 중 하나였다고. 고성권씨는 “낮에는 일하는 아주머니만 계셔 집주인을 만나기 위해 밤늦게 가서 기다려보았지만 결국 못 만나고 아침 일찍 다시 찾아가서야 만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야말로 삼고초려였다. 결국 한번 촬영할 때마다 1백만원을 주기로 하고 섭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파리의 연인> 촬영 중 벌어졌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깜짝 공개했다. 바로 김정은이 회장님(김성원 분)을 만나고 돌아오며 오락실 앞의 펀치기계를 치는 장면. 작가는 반드시 ‘사람 얼굴 모양이 있는 펀치기계’를 요구했고 섭외 담당은 작가의 주문에 맞는 기계를 찾아 서울 곳곳의 오락실을 헤매고 다녔다. 마침 언젠가 본 기억을 떠올린 고씨는 홍대 앞에서 딱 맞는 기계를 찾아냈다.
▲ 드라마 <풀하우스> 오픈세트 | ||
<풀하우스>의 장소 섭외도 만만치 않았다. 섭외를 담당했던 옥성일씨는 극중 ‘풀하우스’ 세트장이 지어진 서해안의 섬 ‘시도’를 찾기까지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애초 대본상에 묘사된 장소는 ‘뒤에는 산이 앞에는 강이 흐르는 곳’. 옥성일씨는 “강원도까지 찾아가 장소를 물색했지만 협조가 여의치 않았다. 결국 강 대신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중 비와 송혜교의 신혼여행 촬영중 요트신에서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촬영지는 태국 푸켓이었다. 옥씨는 가장 마음에 드는 요트를 발견해 내고 섭외에 들어갔다가 소유자인 프랑스인이 거절해 촬영 불가. 급하게 다른 요트를 섭외해 촬영했지만 이번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고역이었다.
그래서 옥씨가 비 대신에 직접 나섰다고. 그는 “타이틀에 나오는 요트 장면에서 비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은 나”라며 “비와 머리모양이 비슷해 대역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꽃보다 아름다워>의 장소 섭외를 맡기도 했었던 옥씨는 당시의 후일담도 전했다. 무엇보다 우는 장면이 많았던 드라마여서 촬영장 섭외 담당자가 이 같은 일을 겪기도 했다는 것. 옥씨는 “고두심씨 같은 베테랑 연기자는 주변에서 소음이 들려도 개의치 않고 눈물을 흘리는데, 신인 연기자는 옆에서 무슨 소리만 나면 감정이 흐트러진다”며 “그땐 우는 장면만 나오면 어디서 소리가 날까 두려워 그것부터 살폈다”고 털어놨다.
<발리에서 생긴 일> 촬영 섭외 담당자였던 고성권씨는 극중 ‘하지원과 소지섭이 살던 집’의 섭외 뒷얘기도 전해주었다. 애초 대본상에는 ‘연립주택 반지하층’이라고 묘사돼 있었지만 마침 방이 두 칸인데다 촬영하기도 편한 집을 한 채 발견한 고씨는 연출팀과 상의해 이곳으로 결정했다. 바로 서울 봉천동 언덕 꼭대기에 있던 집이었다. 고씨는 “재개발 예정 지역이어서 대부분 철거되고 남은 집은 달랑 그곳뿐이었다”면서 “드라마로 인해 이젠 명소가 됐다”며 웃음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