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어머, 이거 촬영 의상인데 어떡하죠?”
분장실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있던 엄정화는 꽃분홍색 ‘츄리닝’ 차림이었다. 한눈에 봐도 튀는 패션. 드라마 <12월의 열대야>에서 엽기 발랄한 아줌마 ‘오영심’으로 분한 엄정화의 모습이었다. 점심 식사 시간을 빌어 인터뷰를 요청했으니 기자도 미안한 터. 그러나 그 복장 그대로 사진을 찍기에는 다소 무리였다. 그런데 곁에 서 있던 코디, 어느새 청바지와 근사한 하이힐을 구해와 엄정화를 ‘변신’시켰다.
이날도 이른 아침 7시부터 촬영이 이어지고 있었다. 예정에 없던 스케줄 변경이었다. 전날 밤 잠에 들며 ‘아, 내일은 오랜만에 늦잠 잘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행복했다는 엄정화는 이번엔 입을 삐죽 내밀며 특유의 ‘귀여운’ 웃음을 지어 보인다.
엄정화가 연기하는 ‘오영심’은 여고시절 고향 남해에 공중 보건의로 왔던 남편 지훈(신성우 분)에게 첫눈에 반해 임신한 뒤, 의사 집안의 맏며느리로 시집온 결혼 9년차 전업주부다. 시어머니의 갖은 구박에도 꿋꿋하게 집안 살림을 이끌어가는 밝고 명랑한 성격이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정우(김남진 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편 지훈과는 그저 무덤덤하고 의무적인 부부관계. 시어머니의 구박은 참을 수 있지만 남편의 무시는 견딜 수 없어 남몰래 외로워한다.
엄정화는 “영심이는 참 외로운 인물이다. 그런 외로움 속에 있다가 정우가 다가왔을 때 그 느낌이 얼마나 클까란 생각을 하며 연기한다”고 설명했다. 과연 소화하기 만만찮은 역할이다. 그런데 엄정화는 영심을 처음 만났을 때 뭔가 ‘필’이 꽂힌 듯한 느낌이었다고.
연출을 맡고 있는 이태곤 PD는 엄정화의 연기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엄정화는 연기자의 유전자를 타고났다’라는 표현까지 했을 정도. 그런데 ‘망가지는’ 역할에 대한 여배우로서의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저는 연기하면서 예뻐 보이는 것보다는 그 상황에 맞는 자연스러운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제가 또 예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아요.(웃음) 만약에 몸빼바지를 입어야 된다면 좀 더 촌스럽게 입으려고 노력하죠.(웃음)”
최근 연기에 도전하는 여가수들이 많은 상황에서 엄정화는 이 분야의 선두주자. 후배들을 바라보는 느낌이 남다를 것 같았다.
“전 운이 좋은 케이스예요. 처음부터 가수하면서 연기를 동시에 시작해서인지 별 거부감을 안 가지시니까요. 요즘 친구들도 제가 보기엔 모두들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감성이 뛰어난 것 같아요. 박정아라는 친구도 잘하고 있었는데 좀 안타까워요. 처음 하는 연기치곤 너무 큰 역할이라 본인한테 큰 부담이 됐을 거예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성유리도 참 예쁘게 잘 하고 있는 것 같고요.”
이어 엄정화는 후배 여가수들이 ‘연기 조언’을 부탁해 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연기자로서도, 가수로서도 탄탄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엄정화는 참 복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섹시와 발랄’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는 것처럼 드문 행운도 없을 것이다. 엄정화의 도전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저는 연기자로서 폭넓은 캐릭터를 다 해보고 싶어요. 제가 가수활동 하면서 너무 섹시한 이미지로만 굳어져서 실은 좀 고민을 했었거든요.(웃음) 다들 저보고 너무 섹시하다고들 그러는 거예요, 하하. 농담이구요. 다음 작품은 연쇄살인을 다룬 스릴러 영화를 찍을 예정이에요. 처음 하는 분야라 그런지 벌써부터 설레네요.”
“언젠가 꼭 한번 설경구 오빠와 함께 연기해 보고 싶어요. 같은 소속사 식구라서가 아니라 오빠를 보면 정말 질투가 날 정도로 연기를 잘해요. 평소엔 ‘욕쟁이’예요.(웃음)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연기를 할까도 싶은데, 막상 연기를 보면 정말 ‘여우 같다’란 느낌이 들 정도로 잘 해내잖아요.”
마지막으로, 수도 없이 들었을 결혼에 대한 질문. “신성우씨는 얼마 전 ‘낮에 만나 폭탄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는데 정화씨는 어떤 상대를 원하나요?”
“제 일까지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욕심나는 사람이 나타나면 할 거예요. 꼭 그런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제 일은 좀 더 뒤로 하고 제 인생이나 제 사랑을 느끼며 살아보고 싶어요. 정말 그 사람만을 위해서. 만약 어느날 갑자기 제가 잠적하면 그런 남자를 만난 거라 생각해 주세요~!(웃음)”
(기자: “어, 나한테 전화나 해주고 잠적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