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 전경. 옛 영화를 그리워하듯 휘황찬란하다. | ||
찻길 양 옆으로 출연 가수들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카페마다 당일 출연 가수의 이름과 출연 시간이 적힌 간판이 깜빡거린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가수들이 모여서 활동하고 있는 곳.
매일 밤 수십 여 개의 라이브 카페에서 한때 세상을 풍미하던 가수들의 공연이 끊이지 않는 곳, 미사리. 그냥 서울 인근의 데이트 코스 가운데 하나 정도로 치부하기에 그곳이 갖는 의미는 사뭇 남다르다.
30~40대를 위한 언더그라운드의 공연 무대이자 실력파 신인 가수의 양성소와 같은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
2004년 연말을 뜨겁게 불태울 그곳으로 함께 들어가 보도록 한다.
기자가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을 처음 찾은 것은 지난 12월2일 목요일 밤 9시경.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고 오가는 차량도 많았지만 정작 카페 앞마당에 마련된 주차장은 썰렁했다.
취재를 위해 들어간 카페의 내부 상황 역시 마찬가지. 평일 밤이고 이른 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손님이 너무 없었다. 계속된 불황으로 직격탄을 맞은 미사리에 대한 첫 느낌은 텅 빈 객석에 홀로 선 듯한 적막감 뿐이었다.
“2002년, 아니 2003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평일에도 손님이 꽉꽉 들어찼고 주말에는 자리가 없어 되돌아가는 손님이 더 많았을 정도니까요.”
ROME 라이브 카페 황재웅 부장은 전성기의 미사리를 이렇게 회상한다. 기자가 미사리를 찾은 목요일은 가장 손님이 없는 요일 가운데 하루다. 하지만 2년 전에만 해도 요일과 관계없이 미사리 라이브 카페는 늘 만원이었다고.
“당시에는 은퇴하고 집에서 살림하던 가수들까지 총동원 됐을 정도”라는 가수 허송은 “미사리에서만 1천 명 넘는 가수들이 활동했었지만 이제는 3백 명도 채 안 남았다”고 얘기한다.
▲ 미사리 라이브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허송은 최근 방송에서도 잘나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일 카페 무대 위에 선 허송. | ||
“주말에는 누가 나와도 만원이라서 일부러 손님이 적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박강성이 나온다”는 이 카페 관계자는 “그 덕분에 평일에도 정신이 없다”고 얘기한다.
박강성의 무대는 열정적이었다. 고음부에서 두 손을 하늘로 치켜 뻗기도 하고 고개를 강하게 도리질하는 등의 열정적인 액션이 특히 돋보인다. 이런 액션 하나하나에 손님들은 탄성을 아끼지 않는다. 손님의 합창과 박수를 유도하는 무대 매너 역시 일품. 그의 무대 매너와 이미 검증받은 라이브 실력이 더해져 지금의 박강성이 탄생한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콘서트나 마찬가지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생생하게 접하며 차와 음료까지 곁들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미사리가 가진 매력인 셈이다.
다음 날 다시 찾은 미사리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미사리의 피크는 토요일이지만 금요일 역시 손님이 많이 몰려드는 날. 카페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량이 줄을 이었고 전날과 같은 네온사인이지만 좀 더 활기차 보였다.
7년째 미사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통기타 가수의 신화 같은 존재’ 송창식의 무대는 밤 10시에 시작됐다.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디너쇼를 마치고 미사리로 막 넘어온 그는 다시 부산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 아무리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에게 미사리는 빠뜨릴 수 없는 하루 일과다. 대부분 30대 이상의 중장년층 손님들이지만 눈망울은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송창식은 다른 가수와 달리 종이로 써서 전달되는 신청곡을 받지 않는다. 노래 한곡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육성으로 노래를 신청하고 그는 언제나 그렇듯 해맑은 미소로 이에 화답한다. 50대 중년 손님이 정말 아이같은 맑은 목소리로 “‘담배가게 아가씨’ 불러주시면 안돼요”라고 묻자 송창식은 “왜 안되겠습니까”라며 기타 연주를 시작한다.
부인의 생일을 축하해 달라는 사연을 읽어주던 그는 ‘당신 사랑해’라는 대목에서 “이거 좋네”라고 탄성까지 내뱉으며 생일 축하곡을 불러준다.
“송창식 선생님하고는 7년째 함께 일했는데 정말 훌륭하신 분이에요”라는 라이브 카페 록시의 업주는 “다른 가수들이 단돈 얼마라도 더 주는 카페로 이리저리 옮겨 다닐 때 선생님은 요지부동이셨어요. 심지어 너무 장사가 안되는 비수기에는 지급해드린 출연료를 되돌려주실 정도예요”라고 얘기한다.
▲ ‘록시’ 무대에 오른 ‘통기타의 신화’ 송창식(오른쪽). 그는 “나에게 미사리 카페는 매일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이 돼주는 곳”이라고 밝혔다. | ||
20대 손님이 자주 찾는 라이브 카페는 또 다른 분위기다. 카페 외부 인테리어부터 화려하고 규모 역시 일반 카페가 아닌 공연장에 가까울 정도다. 20대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커피값도 1만2천원가량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
밤 11시경에 시작된 가수 최재훈의 무대는 감미로움과 격정이 교차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손님 대부분이 20대 연인들로 서로에게 기대어 감미로운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밤 12시가 되어도 한번 불붙은 미사리의 밤은 꺼질 줄을 모른다. 12시에 찾은 한 카페에서는 미사리 공인스타 허송의 무대가 시작된다. 미사리에서 6년째 활동중인 허송은 무명가수로 출발해 이제는 미사리 최고의 인기가수로 발돋움했다. 이미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최근 발표한 2집 앨범 <야>의 좋은 반응으로 방송 활동까지 시작했다.
길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과 불우한 노인을 한 명씩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가족으로 삼은 그는 현재 5명의 동생과 한 분의 아버지를 부양하고 있다. 모두 길거리에서 만난 가족들. 이런 사연이 KBS <인간극장>을 통해 두 차례나 방영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뒤 카페를 찾는 손님들 역시 그의 인간미에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자신의 노래 ‘야’로 시작된 그의 무대는 ‘모나리자’ ‘무정 블루스’ 등으로 이어진다. 허송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코믹한 엉덩이춤과 브레이크 댄스를 연상시키는 현란한 스텝은 손님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미사리 무대에서 손님들의 반응을 직접 느끼며 완성시킨 이런 춤사위가 요즘 방송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미사리는 가요계의 충전소 같은 곳이다. 방송 활동을 중단한 왕년의 톱스타들이 다시 무대에 서서 팬들과 호흡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끊임없이 실력파 신인 가수를 가요계에 공급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사리 일대의 라이브 카페들이 단순한 카페가 아닌 문화공간으로, 가요계를 떠받치는 진정한 언더그라운드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