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곡 지정과 제창 논란 지속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거부해 지난해 기념식을 파행으로 몰고 간 국가보훈처가 또다시 왜곡된 억지 주장을 내놨다. 보훈처는 14일 보도 자료를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점을 거론하며 “이 노래를 제창할 경우 국민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임을 위한 행진곡’을 2008년 이전과 같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제창해야 한다는 5·18 민주화운동 단체 등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정부기념일로 지정된 지난 1997년부터 이명박 정부 첫 해인 2008년까지 제창하던 것을 그 이후 금지하면서 해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잘 알려진 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과 야학을 이끌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1년 소설가 황석영 씨가 가사를 쓰고 당시 전남대생 김종률 씨가 곡을 붙여 탄생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등의 가사를 통해 ‘5.18’ 당시 항쟁의 상황을 담고 있다.
그 이후 정부기념일로 제정되기 훨씬 전부터 매년 5월 18일이 되면 광주항쟁을 기억하는 광주시민과 국민이 해마다 함께 불러왔던 역사적인 노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13년에는 여야합의로 5.18 공식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북한을 슬쩍 끼어 그 가치를 폄훼할 성질이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이 노래 제목과 가사를 북한과 결부시켜 문제 삼는 것은 터무니없는 왜곡인 셈이다. 또 국민통합 저해라는 말도 반대를 위한 논리로밖에 볼 수 없다. 국민의 60% 이상이 기념곡 지정을 찬성하고 있고 2년 전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 80%가 찬성표를 던져 ‘5·18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는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2013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과거 민주화 투쟁 시절에 하루에 몇 번씩 불었던 민주화 투쟁의 주제가였다. 노래 가사 어디에도 반국가적, 친북적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며 “그동안 5·18 추모식에서 오랫동안 불렀던 노래를 왜 중단시켜서 국론을 분열시키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고 정부를 비판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보훈처의 처사는 그대로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이 노래의 공식 제창을 요구해 온 5.18희생자 유가족 등이 마치 국민통합을 저해시키고 있는 것처럼 말한 데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때문에 5·18 기념재단이 보훈처의 공식입장 표명을 ‘일종의 선전포고’라며 강력 대응할 뜻을 밝히고, 광주시의회가 성명을 내고 보훈처장의 해임을 요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보훈처는 또한 이 노래가 북한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때문에 ‘제창’은 안 된다고 한다. 그런 논리라면 참석자들이 다 함께 부르는 ‘제창’은 안 되고 합창단이 부르는 ‘합창’은 된다는 것도 억지스럽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해묵은 이념논쟁으로 국론분열의 도구로 쓰일 수 있는 그런 노래가 결코 아니다.
국가기념일로서 5월의 유산에 자긍심을 심고 이를 선양하는 일은 국가보훈처의 마땅한 임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희생한 영령을 추모하는 노래를 거부하는 것은 정부가 5.18정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우려스럽다. 정부는 ‘역사 지우기’로 의심받을 수 있는 소모적인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의 몽니도 즉각 중단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민주정부라면 즉시 지정하는 게 도리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정권의 뿌리가 결국 광주학살을 야기한 전두환 세력과 맞닿아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 줄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형태도 어이없다. 지역민의 염원을 관철시켜야 할 새정치연합은 어이없는 이같은 사태를 풀어내야 함에도 허구헌날 상투 차림의 싸움판에 골몰하느라 정신이 없다. 4·29 재보선 참패에 따른 후폭풍에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다. 더욱이 문재인 대표는 정부 주관 행사에만 참석한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아직도 5월의 가치와 광주민심을 제대로 매기지 못하고 있는가.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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