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 소속 지누션(왼쪽 사진)에 이어 빅뱅이 최근 KBS <뮤직뱅크>에 전격 출연했다. 오른쪽은 슈퍼주니어로 한때 MBC와 출연 문제로 뒷말이 오가기도 했다.
2012년 지드래곤이 솔로로 활동하며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하고, 타블로가 <해피 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얼굴을 비친 적은 있으나 양측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얽혀 있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 출연은 성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YG 수장인 양현석 프로듀서가 KBS 예능국 고위 관계자들과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며 양측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다 최근 11년 만에 컴백한 지누션이 KBS의 대표 가요 프로그램인 <뮤직뱅크>에 출연하며 냉랭하던 양측의 사이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결국 15일 빅뱅이 <뮤직뱅크> 무대에 오르면서 장기간 이어지면 YG와 KBS의 불편한 관계가 마침표를 찍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빅뱅이 <뮤직뱅크>에 출연한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이후 YG 가수들의 KBS 출연이 자연스러워질 테니 양측 모두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BS와 YG의 대립은 방송사의 새로운 역학 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고 볼 수 있다. 홍보 수단이 부족하던 시절, 지상파 3사는 스타를 키워내는 산실이었다. TV에 얼굴을 비쳐야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고 인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방송사 공채 탤런트의 경우 신인일지라도 좋은 배역을 맡으면 단박에 스타덤에 오를 수 있는 반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거나 방송사의 눈 밖에 나 출연정지 처분을 받으면 연예인으로서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지상파 외에도 케이블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을 비롯해 포털 사이트 및 동영상 서비스 등을 통해 얼마든지 대중에게 노출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다. 여전히 지상파의 권력은 막강하지만 그들의 대체재가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스타 권력이 강해졌다.
달라진 힘의 구도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 제작 현장이다. 이 프로그램은 주어진 시간 내에 출연 가수를 모두 보여줘야 하는 생방송 체제로 진행된다. 그래서 각 출연 가수들은 분 단위, 초 단위로 무대를 꾸밀 시간을 확보해 자신들의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신인이나 비인기 가수들에게 각 무대마다 허용되는 시간은 2~3분 남짓. 반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컴백하는 스타들은 두 곡 이상 소화하며 5분 넘는 시간을 배정받기도 한다.
출연 순서 역시 스타와 방송사들이 기 싸움을 벌이는 지점이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스타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대형 버라이어티쇼의 경우 엔딩 무대를 장식하는 가수가 최고의 인기 스타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대형 기획사 간 경쟁이 치열하다.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는 한 PD는 “SM과 YG, JYP 등에 속한 대형 가수들을 동시에 섭외하면 출연 시간부터 순서 배치까지 철저한 조율을 거쳐 결정해야 한다”며 “어느 한 쪽이라도 빈정 상하는 일이 생기면 향후 함께 일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에 출연 순서 조율은 섭외만큼이나 힘들고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생방송이 시작되기 전 미리 무대를 꾸미고 녹화를 뜨는 ‘사전 녹화’ 대상도 주로 스타들이다. 방송사 대기실의 위치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가장 안쪽 방은 스타 혹은 선배 가수들의 몫이다.
이 PD는 “물론 가수들이나 매니저들은 여전히 방송사 연출 PD들을 깍듯이 대한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사항 또한 분명하게 밝히고 수용해달라고 한다”며 “다매체 시대가 되면서 연예 권력이 방송사에서 스타로 넘어가고 있어 이런 권력 역전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M엔터테인먼트(SM) 역시 MBC와 불편한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지난 2007년 MBC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일밤>의 ‘동안클럽’과 ‘불가능은 없다’에 출연하던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강인이 슈퍼주니어 멤버 전체가 참여하는 SBS <일요일이 좋다> ‘인체탐험대’가 동시간대로 편성되며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이런 일이 벌어진 직후 강인은 MC를 맡고 있던 MBC <쇼 음악중심>에서 하차했고 SM 소속 다른 연예인들까지 MBC 가요 프로그램 출연에 다소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당시 MBC에서는 “특정 PD의 입장일 뿐 MBC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숱한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는 SM과 등지는 것이 MBC 예능국으로서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양측은 원만히 사태를 해결했지만 당시 이 사건은 그동안 갑을 관계로만 치부되던 방송사와 특정 기획사가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일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SM은 소속 가수인 동방신기에서 이탈한 세 멤버로 꾸려진 JYJ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두고 또 다시 관심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방송사들이 SM의 눈치를 보느라 JYJ를 출연시키지 못하는 것이란 소문은 업계를 넘어 팬들 사이에도 파다하게 퍼졌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물론 SM은 이 같은 이야기를 인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정황을 놓고 봤을 때 방송사들이 SM의 눈치를 살핀 것으로 판단된다”며 “수많은 스타를 보유한 연예기획사가 특정 방송사에 자사 스타들을 출연시키지 않기로 한다면 경쟁 관계에 놓인 방송사에 뒤처질 수밖에 없으니 이제는 방송사들이 대형 연예기획사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그리 새롭지 않은 시대가 됐다”고 전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