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왼쪽), 고소영 | ||
우선, 일찌감치 <못된 사랑>에 출연하기로 계약한 비측에선 이번 사태에 대해 도의적으로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못된 사랑>의 제작사인 DNT측과 비의 출연 계약 당시 ‘2월28일까지 비의 동의를 얻는 수준의 여배우를 확정짓겠다’는 부속합의서를 명시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제작사측에서 이렇다 할 여배우를 캐스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말로만 ‘고소영’을 잡았다고 하고 실상은 전혀 진척된 게 없어 비를 실망시켰다고 전해진다. 항간엔 제작사측에서 비를 캐스팅하기 위해 ‘고소영’을 협상 카드로 내밀었다는 뒷얘기도 전해진다.
그런데 막상 계약을 하고 보니, 고소영뿐만 아니라 그에 비견되는 여배우를 캐스팅하지 못한 상태였고, 비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선 제작사인 DNT에 대해 점차 신뢰를 할 수 없게 된다. 비측은 잡음이 일 수 있는 드라마에 출연했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것보단 차라리 출연을 포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제작사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요즘 영화사건 방송사건 스타급 배우를 잡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 제작사측에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접촉을 했던 여배우마다 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우선 제일 먼저 거론됐던 고소영의 경우 대본이 문제였다. 가까스로 고소영과 접촉한 제작사는 일단 대본을 검토한 뒤 출연을 결정하겠다는 고소영의 의견에 따라 대본을 보냈다. 그러나 대본을 검토한 고소영은 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대본에 이의를 제기하며 수정을 요구했다.
이건 상대 여배우로서 당연한 요구이자 영화사나 방송국에서 캐스팅할 때 공공연히 배우들이 요구하는 오랜 관행이기도 하다. 그런데 <못된 사랑>의 집필 작가이자 <불새>로 일약 유명작가 대열에 오른 이유진 작가가 이를 거부했다. 이유는 작품의 흐름상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중간에서 괴로웠던 건 제작사였다. 이유진 작가의 의견과 고소영의 캐스팅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결국 제작사는 비와 비슷한 또래의 여배우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비의 ‘연상녀’에다 ‘이혼녀’ 역할인지라 비와 비슷한 또래의 스타급 여배우들은 강행군으로 이어질 해외촬영으로 인한 체력부담을 들어 모두들 고사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중간에서 비 역시 출연결정을 번복하게 됐고, 이에 다급해진 제작사는 MBC측에 SOS를 청해 비를 ‘잡아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미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라 비측은 ‘코 수술’과 ‘체력 고갈’ 등의 이유를 들어 <못된 사랑>에 출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게 됐다.
이에 황당해진 MBC측에선 ‘계약파기’라며 법정 소송을 거론했고, 비측에선 제작사와 계약할 당시의 ‘부속합의서’가 있음을 분명히 해 ‘출연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드라마 왕국’의 부활을 꿈꾸기 위해 호화 캐스팅을 꾀했던 MBC의 <못된 사랑>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가장 상처를 받은 측은 제작사인 DNT다. 오랫동안 영화 제작과 수입을 해왔던 DNT의 모회사인 동아수출공사는 이번 작품으로 드라마 진입을 시도하려다 그 계획이 무산될 위기를 맞은 것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이유진 작가와 비를 캐스팅했던 DNT측으로선 어떻게든 이번 프로젝트를 성사시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됐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유진 작가가 준비한 다른 드라마를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방송 관계자는 말한다.
결국 MBC는 <못된사랑> 대신 <이별의 빨간 장미>(가제)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못된 사랑>의 무산은 스타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현 드라마의 제작관행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