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산 감독은 ‘문화간첩’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종현 기자jhlee@ilyo.co.kr | ||
러시아에서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던 정성산 감독은 지난 95년 한국으로 건너와 96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면서 한국영화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97년 KBS 드라마 극본 공모에 응시하면서 잠시 ‘방송작가’의 일을 하기도 했던 그가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98년 임권택 감독 밑에서 연출스태프를 맡으면서부터였다. 당시 그가 쓴 시나리오를 보고 태흥영화사에서 관심을 표현했던 것.
당시만 해도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쉬리>의 제작팀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가 북한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 덕분. 당시 그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 북한 관련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말투와 행동 등의 실상을 알려주는 자문 역으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정 감독은 “처음 한국에 와서 방송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북한 사람들의 말투를 보고 황당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흔히 ‘북한 말투’로 흉내 내는 ‘와 기럽네까?’와 같은 말도 북한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라고.
▲ (위에서부터)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 ||
<공동경비구역JSA>에서도 그는 북한 병사를 연기했던 송강호와 신하균에게 북한말을 가르쳤다. 당시 두 사람의 캐릭터는 정 감독이 직접 만들었는데, 실제 개성에서 군 생활을 보낸 그의 상사였던 ‘분대장’과 자신이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공동경비구역 내의 북한군 초소에서 벌어졌던 에피소드들은 모두 정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또 애초에는 송강호의 대사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배우로서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는 송강호는 북한사투리까지 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 송강호는 북한말투를 똑같이 하기 위해 정 감독에게 대사를 캠코더에 녹화해 달라고 부탁해 이를 보며 수도 없이 반복 연습했다고 한다.
<실미도>에서 특히 주목을 끌었던 684 부대원들이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 또한 정 감독이 낸 아이디어였다. 영화 속에서 부대원들은 북한 침투시 북한군인처럼 보이기 위해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로 시작되는 적기가를 부르는데, 실제 이 노래는 북한 군대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영화에서 북한 군가를 부르는 장면을 넣는다는 것은 다소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정 감독은 “실은 그 장면 때문에 조사를 받기도 했었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장면이었지만 이젠 예전과 달리 북한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정성산 감독의 데뷔작이 될 <빨간 천사들>. 과연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