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필자에게는 ‘용산경찰서 담당 기자’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는데, 용산서 관할 연예인 관련 사건에서 특종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고현정의 반지 분실 사건, 싸이, 정찬의 대마초 흡연 사건 등 연예인이 연루된 사건이 용산서 관할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때가 있었다.
용산서 강력계의 한 형사와 대판 싸운 적도 있다. 육두문자가 오갈 정도로 싸웠다. 브리핑을 해주기로 해놓고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일간지에만 브리핑을 한 것이다. 그 일로 싸우다가 결국 그 형사와 친한 사이가 됐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없어도 틈만 나면 경찰서에 들려 이야기를 나누거나 소주를 마시곤 했다.
어느 날 기자와 술을 먹다가 그 형사가 “어디 용한 역술인 없수?”라고 물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살인사건을 하나 배당받았는데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동료 중에는 사건 수사에 나서기 전 역술인의 조언을 받는 형사도 있다는 것이다.
취재원을 서로 연결시켜주며 친목을 다져야 하는 연예기자의 특성상 그에게 여자 역술인 한 명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 후 한 달쯤 지났는데 “형님, 제가 술 한잔 사겠습니다”라고 연락이 왔다. 술자리에서 그는 “큰 도움이 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살인사건을 해결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필자가 보기인 역술인이 어떤 힌트를 주었다기보다는 사건해결을 위해 역술인을 찾을 정도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싶다.
어쨌든 그 이후로 그는 용산서에 연예인 관련 사건이 있을 때마다 먼저 나에게 슬쩍 ‘찔러주곤’ 했다. 한번은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자 연예인 한 명이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가 당직을 서며 알게 된 내용이었다고 했다. 부랴부랴 사진기자를 챙겨 용산서로 달려갔다. 이동하는 중에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으나 “아무 일 없는데요”라며 시치미를 뗐다. 화날 일도 아니다. 매니저는 항상 연예인 편이어야 하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다른 취재진들을 찾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일간지의 경찰기자 역시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제보를 해준 형사에게는 눈인사만 건넸다. 그의 입장 때문이었다. 조사도 아직 받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에 미리 알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해질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심야에 음주운전자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 교통사고처리반의 당직자에게 곧장 달려갔다.
사고경위에 대해 묻자 당황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지금 경찰서로 데려오고 있는 중이니까 기다리세요.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단속한 지 15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수”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라 사고처리반이 있는 용산경찰서 별관에 아예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을 때 비로소 일간지와 TV뉴스 취재팀들이 들이닥쳤다. TV쪽 기자 한 명이 “진짜 빠르시네요”라고 필자를 추켜세웠다. “뭐, 다 아는 법이 있지요”라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얼마 있지 않아 음주운전에 단속된 연예인이 백차를 타고 들어왔다. 나와 전화통화를 했던 매니저와 함께였다. 매니저는 “볼 면목이 없네요”라며 조금 전 거짓말에 대해 사과를 했다.
또 한 번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정찬의 대마초 사건이었다. 오후 4시쯤 문자가 왔다. ‘정찬 대마초 흡연 용산서 압송중. 전화통화 불가. 문자로만’라는 내용이었다. 충격적인 제보였다. 데스크에 보고를 하고 용산서로 향했다. 다른 언론사에서 눈치 챌 가능성이 있어 취재차량도 포기하고, 사진기자도 달랑 카메라 한 대만 들게 했다. 용산서에 도착했을 때 강력반의 철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에게 상황을 이야기해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는 “시인. 현재 조사중. 다른 사람들 눈에 띌 수 있으니까 주취자보호실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술을 많이 먹은 사람을 위해 철창에 스펀지를 댄 주취자 보호실은 강력반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필자는 주취자보호실에서 고개를 돌린 채 숨죽이고 있었다. 4시간쯤을 그렇게 보냈다. 오후 10시쯤 손에 취재수첩과 볼펜을 든 여기자 한 명이 강력반의 문을 두드렸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여기자가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쳤지만 강력반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내 쪽을 봤다. 여기자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거긴 왜 들어가 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술 먹고 난동피우다가”라고 했으나 여기자는 “뭔가 이상해. 뭔가 이상해”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답을 주지 않자 여기자는 “아저씨, 제발 알려주세요. 이거 못 알아내면 저 죽어요”라며 사정조로 이야기했다.
결국 필자는 “어디 가지 말고 여기에 있으면 알게 될 것”이라고 힌트를 주었다. 2시간쯤 흘러 강력계 반장이 밖으로 나왔다. 나를 보자마자 그는 “귀신이군. 귀신이야”라며 사건에 관한 브리핑을 해주었다. 이후 1시간이 지나자 각 언론사의 경찰기자들이 속속 들이닥쳤다. 물론 필자는 1보를 이미 전화로 전송한 상태였다.
아직도 나에게 남다른 배려를 해준 이 형사와는 서로 안부를 묻고 있다. 지금은 연예인 사건과 별 관계가 없는 부서로 옮겨 예전처럼 나에게 경찰정보를 ‘찔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소중한 취재원임에 틀림없다.
노컷뉴스 방송연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