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오후 4시, 부산시 사하구의 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상윤이 엄마 안정희 씨(40)는 참혹한 일을 당했다. 발달지체 장애 1급인 이 아무개 군(18)이 두 살배기 상윤이를 3층 복도 끝 난간 밖 9.2m 아래로 집어던져 살해한 것. 순간 상윤이 엄마는 “눈앞에서 내 새끼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꿈이라고 해도 믿기 힘들다…. 상윤이를 보러 1층으로 내려가야 하나, 저 괴물을 죽여야 하나”라는 찰나의 고민을 했다. 결국 상윤이 엄마는 둘째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다.
그녀가 상윤이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만든 블로그엔 충격적인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군은 난간 끝에서 상윤이를 든 채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상윤이 엄마는 “하지 마! 위험해”라고 이 군을 타일렀지만 소용없었다. 이 군이 두 손을 놓자 ‘쿵’하는 소리가 났다. 상윤이가 바닥으로 추락한 것.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너무 예쁜 내 아가였는데 한순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모습이었다. 왼쪽 머리가 함몰되고 이마와 코에서 하염없이 피가 흘렀다.”
상윤이 엄마는 매주 수요일마다 첫째 아들의 심리치료와 인지치료를 위해 복지관을 찾았다. 상윤이도 엄마와 형을 따라가곤 했다. 그날도 그녀는 수업을 받으러 간 첫째를 3층 복도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복도에서 뛰놀고 있는 상윤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군이 나타나 상윤이를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상윤이 엄마는 “말리려 했지만 키 180㎝ 몸무게 100㎏의 거구인 이 군을 제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상윤이 엄마와 이 군의 격렬한 실랑이가 계속됐지만 결국 이 군은 복도 끝 철문손잡이를 돌려 나가버렸다.
다섯 달이 흐른 지금. 이 군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지난 18일, 부산지방법원은 “피고인은 무죄, 이 사건 치료감호청구 및 부착명령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한 근거로 “피고인은 범행 당시 심한 자폐증세로 사고 기능과 이해력 및 판단력 등 전반적인 인지기능의 발달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한 능력에 현저한 장애를 가진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형법 제10조 제1항에 의해 무죄를 선고한 것.
상윤이 사건 방송화면 캡처.
형법 제10조 제1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심신상실 요인으로는 정신병, 정신박약, 심한 의식장애, 중한 심신장애적 이상을 들 수 있다. 이 군이 적법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범죄행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감호청구와 특정범죄자에 대한 전자발찌 부착명령청구도 기각했다. 치료감호는 심신장애를 치료감호시설에 수용하여 치료를 위한 조치를 행하는 보안 처분을 말한다.
현재 정신감정의 대부분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산하 국립법무병원에서 이루어진다. 국립법무병원 관계자는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이 정신적인 문제로 범죄를 저지른 것 같다는 판단을 했을 때 정신감정을 의뢰한다”며 “환자들이 입소하면 주치의가 한 명씩 배정된다. 정신과 의료진은 외부와 격리된 환자를 한 달 동안 종합적으로 관찰해 감정서를 사법기관에 보낸다. 판검사가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참고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재판부의 판단이 ‘형사법’적으로 납득될 수 있어도, 피해자는 물론 대다수 국민들의 ‘상식’과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판결 직후 상윤이 엄마는 “우리 아기는 왜 죽은 건가요? 무엇 때문에요? 사람을 죽인 이 군이 무죄라니요?”라며 “상윤이가 죽은 것도 억울한데 가해자는 장애인이라 죄도 없고, 죄책감도 없고 가해자 가족들은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며 분노했다. 여론도 격앙된 모습이다.
일각에선 “있어서는 안 될 사건 두세 번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겠다. 피해자 가족 가슴에 대못박는 심각하게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인 판결”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강의 구주와 변호사도 “이 군이 처벌되지 않고, 계속 사회생활을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추가적인 문제도 고려됐어야 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며 “재판부가 과실치사죄를 인정해 일반인의 법 감정, 유가족들에 대한 배려, 피고인의 잘못에 대한 법적 책임 등을 따질 필요도 있었다. 이번 판결은 피고인의 입장에 치우쳐 있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리는 정신질환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범행 당시 피고인의 피해망상, 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하면, 법원은 형법 제10조 1항을 근거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어 피고인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다. 국립법무병원 관계자는 “의사는 정신분열증과 발달장애 감정을 따로 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한다”면서 “피고인이나 피해자를 한 달 동안 격리해 치료하는 방식은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는 1989년. A 씨는 부산 소재 S 교회의 백 아무개 담임목사의 설교를 듣고 결혼도 못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1989년 8월, 이 집 뒷산에서 산상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A 씨는 “백 목사는 사탄이고 큰 자이므로 작은 자(자신을 지칭)가 살아남는 길은 큰 자인 백 목사를 죽이는 것이다”며 “공자, 맹자도 천당에 못 갔다는데 나도 천당에 못갈 것이 분명하므로 백 목사를 죽여야만 내가 큰 자로 되어 천당에 갈 수 있다”고 결심했다. A 씨는 백 목사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부엌에서 사용하던 식도를 허리춤에 넣었다.
그날 새벽 5시경, A 씨는 S 교회 예배당에 도착해 신도 1000여 명을 모아놓고 단상에서 설교하고 있는 백 목사에게 접근했다. 곧바로 허리춤에서 식도를 꺼내 오른손에 들고서 백 목사 오른편 가슴을 힘껏 찔렀다. 백 목사는 칼이 들어오던 순간에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범인을 말렸다고 한다. “아버지여!”라고 두 번 외치는 백 목사의 음성과 함께 20㎝의 칼은 그의 가슴에 완전히 박혔다. 앞줄에 앉아있던 청년들이 A 씨를 덮쳤으나 그는 꽂은 칼을 다시 뒤틀어 백 목사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사건 당시 부산지역 전체가 들썩거렸다. 백 목사는 평소 소탈하고 겸손한 인격으로 수십만 교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아왔기 때문이다. S 교회 교인들은 백 목사의 죽음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법원의 판단은 민심과 동떨어져 있었다. 1심과 2심 법원은 피해자를 살해한다는 의식이 명확했고 범행 경위를 소상히 기억했다는 점을 인정해 A 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범행 사실의 인식이나 기억능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심신상실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며 A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한 신문은 “범인은 정신질환이 없었다. 백 목사를 증오한 배후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백 목사의 유족도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여전히 찝찝한 마음이 든다. A 씨가 치료감호처분만 받고 빠져나갔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A 씨는 절대 정신병자가 아니다. 당시에도 살해의 배후 세력을 확신했지만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구주와 변호사는 “국민들은 아무래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반면 법원은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며 “책임능력 판단 여부와 일반 국민의 법 인식 차이가 심한 이유이다”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