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지방이전으로 혼자 사는 직원들을 의미하는 신조어도 탄생됐다. 이들이 공공연히 내뱉는 ‘혁신기러기’는 남녀를 불문하고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외로움이 길어지면 그만큼 빈틈도 많아진다. 그 자리는 어김없이 ‘이성’이 빼앗는다. 혁신기러기들이 불륜으로 빠지는 이유다. 이렇다보니 지방으로 이전한 기관들은 감사실이 편할 날이 없다. 서울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가족들이 불륜에 대한 감시를 해달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기관은 사내 불륜이 도를 넘어서고 있지만 통제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방이전 공공기관마다 사내 불륜이 도를 넘어서고 있지만 제대로 통제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내부와 전경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해 11월 지방으로 이전한 정부산하기관 A 과장은 최근 현지에서 만난 이성과 만남이 잦아졌다. 주말에는 가족을 보러 서울에 가지만 평일에는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이다.
A 과장은 불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주변 동기나 선·후배들은 이성 친구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눈치다. 이제 술자리에 가면 ‘애인’ 얘기가 안줏거리로 올라오는 일이 다반사다. A 과장은 “지방으로 내려온 직원들 대부분이 주말부부다. 외롭다는 것이 핑계로 보이겠지만 젊은 시절 자취하던 생각과는 다르다”며 “오죽하면 사내 불륜이 늘어나겠나. 서로 의지할 데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시작된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수많은 ‘혁신기러기’를 양산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전순옥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빛가람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한전KPS, 한전KDN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4개 기관 이주 직원 3217명 중 77.6%가 혼자 이주했다. 전체 인원 가운데 2498명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셈이다. 미혼, 기혼 할 것 없이 이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실정이다. 오죽하면 지방이전 공기업만 노리는 전문 ‘꽃뱀’이 기승을 부린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불륜의 온상은 사내 동호회…기관들은 골머리
A 과장은 지난 2월 한 댄스동호회에 가입했다. 일을 마치고 직장동료들과 매일 술을 마시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여기 저기 흥밋거리를 찾다가 사내 댄스동호회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사내 댄스동호회는 A 과장이 생각했던 분위기와 달랐다. 사내동호회는 어느 순간부터 이성을 찾는 이들의 집합소로 전락한 것이다.
사내 불륜행위를 강력하게 징계하겠다는 엄포도 놨다. 본보기로 지난달에는 지방 이전 후 처음으로 인사위원회에서 사내 불륜행위로 적발된 두 명을 퇴직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이 기관 관계자는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가뜩이나 고급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큰 잘못이 없으면 퇴직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사내불륜은 다르다. 자칫 회사 전체를 연애장소로 인식할 수 있는 우려가 높다. 사기진작 차원에서도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를 결정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숨어서 연애도 못한다…정부세종청사 미혼자들
지방이전 공기업들의 불륜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지난 2012년 12월에 세종시로 이전한 정부부처 역시 불륜과 꽃뱀 사건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지난 2년간 정부세종청사는 불륜 사건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또한 세종청사는 여전히 미혼자들의 ‘무덤’이다. 오죽하면 ‘숨어서 연애도 못 한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그만큼 세종시는 미혼자들이 마음 놓고 연애할 수 있는 동선이 좁다. 데이트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세종청사 입주 부처의 B 사무관(여·36세)은 세종시로 내려와서 6개월간 우울증에 시달렸다. 한창 연애를 해야 할 시기에 주변 눈치 보느라 제대로 이성을 사귀지도 못했다.
B 사무관은 “과천 시절에는 강남이나 종로 이외에도 데이트 장소도 많고 이성을 만날 기회도 잦았는데 세종시는 동료 직원 얼굴밖에 볼 수 없다”며 “주변에서는 매일 보는 얼굴이니 사내 연애도 해보라고 하지만 워낙 소문이 빨라서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세종청사 입주부처 가운데 미혼 여직원이 자취방에서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건도 발생했다. 세종청사 이전으로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원인이었다. 기획재정부 여 사무관도 작년에 자살을 했는데 세종시에 원룸을 얻어 두 집 살림 하던 도중 서울에 있는 남편의 불륜 소식을 접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편 불륜과 전쟁을 선포한 세종청사관리사무소는 매달 성희롱과 불륜에 대한 예방 교육을 추진 중이다. 더 이상 불륜으로 인해 발생하는 가정파탄을 지켜 볼 수 없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세종청사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아무래도 혼자 떨어져 살다보니 이성 문제로 인한 사건과 사고가 많은 것으로 본다”며 “지속적인 교육과 강의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