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화해 사실을 발표하는 박승대 대표와 <웃찾사> 개그맨들. | ||
노예계약 파문으로 시작해 지난 1주일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개그계 최대 파문은 이날 기자회견으로 일단락됐다. 화해가 가능하게 된 과정과 원인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 없이 박 대표와 24인의 개그맨이 서로 포옹하고 어깨동무하는 퍼포먼스로 마무리된 이날 기자회견은 일종의 ‘개그쇼’였다. 막판까지 기자들은 “기자들도 이해가 안 되는데 시청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냐”며 자세한 언급을 요구했지만 이는 답변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과연 이들의 지난 1주일 동안 선보인 ‘대립과 화해’라는 주제의 개그쇼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그리고 이들이 화해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면을 들여다본다.
여론 갈려 모두 불리
역시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여론의 향배였다. 지난 11일 오전 개그맨 12인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여론은 ‘박승대 때리기’로 집중됐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열린 박 대표의 기자회견이 여론의 향배를 뒤집었다. 우선 문제가 된 이면계약이나 15년 장기계약에 대해 박 대표는 사죄의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계약금 없는 계약을 체결한 데 대해 “법적 효력이 있는 정식 계약이 아닌 ‘평생 함께하자’는 약속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중계약에 대해서도 “계약 기간 표기에서 생긴 착오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기자들은 ‘인기 개그맨의 계약서만 골라 착오가 생겼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발했지만 박 대표는 “그들이 현재의 인기를 얻기 전에 체결한 계약”이라고 맞섰다.
양측의 기자회견 내용이 모두 공개된 이후 여론은 양분됐다. 박 대표의 ‘착취’와 개그맨의 ‘배신’으로 양분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렇게 여론이 양분된 상황에서 양쪽 모두 자유롭지 못했다. 여론의 힘을 얻어야 승리가 가능한 싸움에서 양측 모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지 못한 것이다.
목적은 개그맨 추천권?
이런 시점에서 배후세력 논란이 불거졌다. 박 대표는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계약 파기를 주장한 개그맨 뒤에 굉장히 큰 배후세력이 있다”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박 대표는 “거대자본을 갖고 있는 누군가”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결정적인 사안은 개그맨과 배후세력을 연결한 중계자에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우리 회사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던 매니저 몇몇이 회사를 그만둔 뒤 배후세력에게 회사 내부사정과 회계사항 등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얘기했다.
사실 이번 개그맨의 계약파기 주장은 다소 무모한 측면이 있었다. ‘그동안 착취당했고 강제로 장기계약을 체결했다’는 그들의 주장이 사실일지라도 그들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개그맨 24인은 박 대표의 계약이 파기될 경우 <웃찾사> 출연 역시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이는 박 대표가 갖고 있는 <웃찾사> 출연 개그맨 추천권이라는 ‘절대반지’ 때문이다.
<웃찾사>에 출연할 수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이들이 계약파기를 주장한 데 대해 스마일매니아의 송장헌 팀장은 “이런 내부 정황을 잘 아는 이들이 이미 사전조율을 끝내 <웃찾사> 출연에는 문제가 되지 않도록 준비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얘기했다. 다시 말해 박 대표의 추천권과 상관없이 <웃찾사>에 출연할 수 있는 방법을 확보한 뒤 기자회견을 가졌다는 것.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히 개그맨 몇몇의 스마일매니아와의 계약 파기가 핵심이 아니라 박 대표의 ‘절대반지’를 깨뜨리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배후세력이 누구인지에 대한 소문이 횡행했다. 대형 연예기획사 가운데 몇몇 곳이 그 후보로 거론됐고 심지어 박 대표의 ‘절대반지’가 깨진 이후 새롭게 형성될 개그계 구도에 대한 예측이 난무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양측이 화해했다. 20여 분 동안 진행된 화해 기자회견에서 양측은 화해 사실만 알렸을 뿐 합의 과정과 계기 등에 대한 언급은 회피했다.
화해 기자회견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계약 관련 부분은 스마일매니아-SBSi-개그맨의 3자 계약이 유효한 2007년 2월까지 현재 방식으로 활동하며 그 이후 기간과 관련된 모든 계약은 전면 취소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화해는 기자회견 하루 전인 17일 정오에 만나 10분 만에 이뤄졌는데 이를 위해 변호사를 비롯한 실무자가 계속 접촉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화해를 결심한 이유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회피했다. 다만 개그맨 김형인은 “박 대표를 만나러 갈 당시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만났다”고 얘기해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양측의 만남을 주선한 3자 계약의 또 다른 주체인 SBSi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에 대해 스마일매니아측 대리인인 표종록 변호사는 “SBSi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지만 어떤 역할이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SBSi는 SBS의 자회사로 결국 방송사가 중재에 나섰음을 알 수 있다. 역시 핵심은 박 대표의 출연자 추천권과 해당 개그맨의 <웃찾사> 출연 여부로 이에 대한 결정권은 방송국이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박 대표 측이나 개그맨측 모두 SBS의 결정이나 중재안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인 셈이다. 결국 SBSi측이 내놓은 중재안에 따라 양측은 급격히 화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이나 중재안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함구했다.
손해 최소화 마무리
결과적으로 이번 화해를 통해 양측은 모두 손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립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부분이 문제점이다. 날카로운 대립을 보여준 만큼 화해 과정을 명확히 밝혀 시청자들의 신뢰를 되찾았어야 하는 게 순서이나 이들은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만을 남겼을 뿐이다. 또한 SBSi의 중재안이 박 대표의 <웃찾사> 출연 개그맨 추천권을 현행 그대로 유지해줬는지의 여부도 앞으로의 행보에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