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정치인의 섹스 스캔들과 관련된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정부 고위층의 한 자제가 자신의 여성편력을 위해 매니지먼트사까지 설립해 여자 연예인들을 농락했다. 물론 그로부터 투자를 받은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자신의 소속사 여자 연예인을 호텔방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데려오며 정성스럽게(?) ‘그분’을 모셨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하지만 당시 1주일간 이와 관련된 기사를 게재하면서 겪은 외압과 평가는 실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밝힐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그 실명은 공개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보자는 바로 ‘그분’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한 매니저였다. 어느날 평소 안면만 있던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 음식점에서 만났는데 그의 첫마디는 “쓸 수 없고 게재가 안 된다면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였다. 나 역시 책임감 없이 “알겠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 자리에서 세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는데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분’의 위치뿐만 아니라 그의 여성편력에 동원된 여자 연예인 역시 이름만 대면 금세 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들은 얘기를 토대로 데스크한테 간략하게 보고하며 “신문에 게재할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손을 떼겠다”고 선언을 했다. 당시 필자는 “그의 말을 100% 신뢰할 수 없어 보충 취재를 했는데 정황 증거들이 너무나 일목요연하다”고 말했다. 데스크는 “그렇다면 당시에 들은 것으로 기사를 쓰지 말고 호텔방을 잡아줄 테니 그곳에서 녹취를 해라”는 것이었다. 기자와 데스크 그리고 신문사가 빠져나가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결국 신문사 근처에 있는 호텔방을 예약하고, 모 방송국 후배 기자에게 이른바 취재용 카메라(몰카)를 지원받았다. 가방으로 가장된 것이었는데 녹음이나 녹화 품질에서 귀신도 곡할 정도였다. 이 역시 미덥지 못해 녹취용 IC레코더까지 호텔방에 장착해놓았다. 한발 더 나아가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할 경우를 대비해 사진부 기자에게 부탁해 망원렌즈를 단 카메라로 호텔 객실에 대화를 나누는 제보자와 나를 함께 촬영해줄 것을 부탁했다.
일부러 약간 어두운 시간에 만났다. 호텔 객실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호텔에 함께 들어가지도 않고 서로 따로 들어갔다. 내가 먼저 들어가 있었는데 뒤에 들어온 그의 모습에선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는 내게 “신문에 게재되기 전에 원고를 보여줄 것”과 “제보자에 대해선 무덤에서도 발설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제보자 보호는 당연한 것이었고 첫 번째 부탁은 기자로서 꺼림칙했지만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역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가 들려준 내용은 첫 번째 만남에서 들려준 것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웬만한 일에는 충격을 받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뒤통수를 뭔가로 맞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분’이 상대한 여자연예인은 모두 10여 명이었는데 그는 한 명, 한 명이 그와 동침하게 된 사연을 자세하게 들려줬다. 결혼을 앞두었던 여자 연예인, 미성년자였던 신인 유망주(그녀는 결국 이로 인한 충격으로 연예계에서 은퇴하고 현재 화류계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예계에서 조연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등 알만한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그분’이 여성편력에 빠져들게 한 주변 사람들의 아부와 그분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분’의 독특한 성적 취향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회사에 출근도 하지 않은 채 호텔방에 머물며 기사를 작성했다. 4일간 1면 특종기사로 연재를 했다. 그동안 내 휴대폰은 불이 났다. 전원을 끄지 않은 상태에서 받을 전화만 받았다. 어떤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몇 사람과 통화를 하고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중에는 조폭자금으로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한 사람도 있었다. 그는 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그분이 누굽니까? 말하지 않으면 시골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 올라올지 모릅니다”라고 협박을 했다. 물론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에 한 매니저는 “그 기사에 언급된 S양이 저희 S양은 아니죠?”라고 물었다. 나는 ‘맞다’라거나 ‘아니다’라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그 매니저는 돈줄이 막혀 회사를 문닫았고 그가 언급한 S양은 1년 6개월 정도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밝히지만 그가 언급한 S양은 필자의 기사에서 언급한 S양이 아니다. 한 마디로 그 매니저는 제발이 저렸던 것이다. 또 정치권 관계자 역시 신문사의 고위 간부와 내 친구들을 수소문해 ‘기사 내용’을 확인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거짓기사’라는 소문이 조직(?)적으로 나돌았으나 하늘을 우러러 ‘조작기사’는 절대 아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소한 ‘그분’의 실명만큼은 공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예계와 연예인을 타락시키는 것은 연예 관계자만이 아니다. 권력을 미끼로 한 캐스팅 제안, 경제인과의 교류를 통한 CF모델 발탁, 얄팍한 돈 몇 푼 쥐어주면서 자존심을 사는 이들이 어쩌면 더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물론 스타로 성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연예인한테도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CBS <노컷뉴스> 연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