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우석 감독(왼쪽)의 개런티 발언에 실명이 거론된 최민식 송강호가 지난 6월29일 반박 기자회견을 가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강우석 vs 최민식 누가 이겼나
과연 누가 이긴 것일까. 외면적인 형태만 놓고 보면 공식사과를 한 강 감독의 패배다. 하지만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양측 모두 패배자다. 사실 강 감독을 비롯한 제협측의 애초 의도는 ‘스타권력화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계 위기 요소에 대한 여론의 환기’였다.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는 “스타권력화도 중요한 문제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문제점이 있다”면서 “외화와 방화의 극장 수익 배분율 차등화 철폐, 불법복제 단속 등 영화계 전반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게 제협의 입장”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양측의 대립구도로 인해 여론 환기라는 본래의 목적 대신 ‘밥그릇 싸움’에 대한 반발감만 키우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영화계에서는 결국 승자는 ‘삼순이’(드라마 업계)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사실 영화계 위기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드라마 시장의 확대에 있다. 한류 열풍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 시장의 확대로 인해 스크린 스타의 브라운관 복귀가 줄을 잇고 영화계 투자금도 상당부분 드라마 업계로 흘러갔다. 영화와 드라마는 스타를 공유하고 있다. 결국 영화계 단독으로 ‘스타 몸값 불리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얘기. 드라마 출연료 관련 내용이 빠진 영화 개런티 논의는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영화계 내분이 스타의 충무로 이탈을 가속화해 투자금의 충무로 이탈까지 촉진시킬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영화계를 떠난 스타와 투자금이 갈 곳은 결국 드라마 시장. ‘삼순이가 이겼다’는 자조적인 표현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드라마 업계와의 공동 대응을 얘기하기에는 아직 영화계 내부 문제도 정리되지 않았다”는 제협 김형준 이사장은 “드라마 외주제작업체들 역시 스타권력화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 대응책 마련을 위한 모임을 가질 예정으로 알고 있다”고 전한다.
강우석은 왜 실명 거론했나
강 감독은 실명거론의 이유를 “‘과거에 이런 예들이 있었으니 앞으로 조심해야 된다’는 취지에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를 준비하던 제협측의 공식통로가 아닌 강우석 감독이 개인적으로 기자들을 만나 이런 취지를 밝혔는지의 여부에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보스기질’이 다분한 그가 스타권력화에 대한 대안 마련이 한창인 제협의 움직임에 여론의 힘을 실어주기 위해 스스로 총대를 멘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효과는 있었다. 영화계 위기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 유발에 성공한 것. 하지만 역효과가 더 심각했다. 최민식과 송강호의 ‘강우석 감독의 인터뷰 내용에 대한 해명 및 반박 기자회견’이 있은 뒤 여론은 ‘영화계 위기’보다 ‘영화계 밥그릇 싸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사안은 이런 대화가 오간 자리가 술자리였다는 점이다. 강우석 감독은 “사석에서 개인적으로 한 얘기가 실명으로 나와서 안타깝다”는 얘기로 그 자리가 ‘사석’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당 기자가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개인적인 얘기를 기사화하는 우를 범한 것일까.
그런데 당시 그 자리에 참석했던 기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스타권력화 등에 의한 영화계 위기에 대해 얘기하고자 기자들을 불렀다는 것. 결국 술자리에서 오간 얘기지만 분명 ‘취재’를 목적으로 온 기자들 앞에서 한 얘기이기 때문에 이를 ‘사석에서 오간 개인적인 얘기’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표준제작규약 실효성 있나
제협측은 영화계에 팽배한 위기론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표준제작규약’을 내세웠다. ‘표준제작규약’은 제작 시스템의 합리화와 투명한 회계 처리 기준의 제도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배우의 개런티와 지분요구의 한계점을 명시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오기민 대표는 “영화 참여자들이 매년 ‘단체협약’을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최민식은 “기본적으로 찬성하나 다른 배우들의 입장을 알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배우들의) 어떤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표준제작규약’ 마련은 분명 의미있는 작업이지만 과정은 험난해 보인다. 배우와 제작자 양측이 개런티 수준 합의에서 상당한 의견대립을 벌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 이런 과정에서 ‘권력화’됐다는 얘기까지 듣고 있는 매니지먼트사가 노조로서의 힘까지 얻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히려 더 큰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