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도 다큐도 사실은 ‘드라마’다?
방송국 초년병 시절, 꽤 충격으로 받아들인 사건이 있었다. 그 때 뉴스에도 NG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프로그램에 필요한 방송 자료 화면을 검색하던 중 이상한 장면이 나타났다. 피의자를 체포해서 경찰서에 들어오는 장면이었는데, 갑자기 “다시!”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의자들이 고개를 숙이지 않아 NG가 난 것이다. 결국 피의자들은 카메라기자가 시키는 대로 ‘피의자’라는 역할(?)에 걸맞게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왔다.
‘논픽션’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찍는 다큐멘터리의 경우 ‘NG’는 기본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인물 다큐’의 경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최소한 3~4번은 같은 동작을 되풀이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과일을 깎아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고 치자. 이 때 과일도 몇 번 NG가 나서 교체되거나 새로 깎이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경우 ‘자연스럽지 않다’ ‘좀 더 화목하게 보이게 웃어 달라’는 등등의 요구에 따라 마치 드라마를 찍는 탤런트처럼 여러 차례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나중엔 출연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다시 할까요?” 하거나 “NG! NG! 다시!” 하며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찍자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양심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어떤 경우엔 일부러 상황을 연출해서 찍기도 하는데, 원시상태를 찍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다큐멘터리의 경우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요즘은 이런 다큐멘터리가 유행에 밀려 많이 사라졌지만, 한동안 이런 류의 다큐멘터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제작진들은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원시풍습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라 원시부족을 찍는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장면을 원하는 방송국의 요구에 의해 옷도 현대적으로 입고 콜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원시적으로 사는 것처럼 옷도 벗기고 일부러 돈 주고 찍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런 류의 프로그램의 경우 대부분 외주제작사들이 나갔는데, 방송사로부터 받은 제작비는 부족하고 방송사에선 그런 장면을 원하고 어떻게든 방송은 찍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런 기막힌 상황들을 연출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돈 주고 찍으려 해도 원주민들이 옛날 풍습대로 산 지가 이미 오래 전이라 멧돼지 한 마리 잡는 것도 쉽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원래는 들소나 산양을 사냥하는 모습을 찍어야 하는데도 사냥법을 잘 몰라 겨우 닭 한 마리 놓고 찍는 경우도 있다.
돈을 주고 찍고 싶어도 못 찍는 경우도 있다. 분명히 존재하는 인물이고 존재하는 사건이지만, 관계 당사자가 인터뷰를 꺼릴 경우 제작진들은 편법을 동원한다. 만일 고학력 실업자로 고생하는 사람을 인터뷰해야 하는데, 도저히 그 인물이 섭외가 안 될 경우 제작진들은 고육지책으로 자신들이 인터뷰 대상자가 된다. 분명히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런 인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건 없다는 의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방송 윤리의식의 결여는 비단 방송 제작진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몇 년 전 한 여성 출연자가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와 파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더 기막힌 것은 이 여성 출연자가 한 방송국에만 출연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송국에도 출연해서 양쪽 방송국에서 난리가 났었다.
그녀가 유부녀임을 아는 지인들과 그녀의 시댁 쪽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뒷수습을 하느라 양쪽 방송국에서 혼쭐이 난 적이 있는데, 일반 출연자들이 만일 악의적인 의도를 갖고 출연을 할 경우 그 의도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어 프로그램 당사자들이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많다.
특히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경우 정도가 심한데, 갑자기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 PR을 하거나 토론회 프로그램에 자신이 평소 싫어하던 사람의 이름으로 전화신청을 해서 이상한 멘트로 당사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일은 물론 방송국의 의도된 조작은 아니지만 어쨌든, 시청자이건 제작진이건 더 이상의 편법은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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