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상 의원이 내각제 개헌에 대한 ‘심중’을 드러내 파문이 예상된다. | ||
지금까지 여권은 대통령제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가장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또한 개헌이 되더라도 2007년 실시되는 17대 선거는 해당되지 않고 18대에서부터 적용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었다. 하지만 문 의원의 개헌 로드맵은 2007년 대선 전까지 개헌을 한 뒤 17대 때부터 내각제를 당장 실시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고 있고, 차기 여당의 당 의장으로 유력시되는 문희상 의원은 과연 어떤 개헌 로드맵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지 따라가 봤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원은 차기 당 의장 영순위로 거명되는 여권의 유력 인사다. 4월2일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문 의원은 <일요신문>을 비롯한 각종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대세론’을 형성하며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그가 향후 2년 동안 여당을 이끌어갈 ‘지휘자’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 의원이 앞으로 당 의장에 오르게 되면 모름지기 여권의 ‘넘버2’로서 차기 대권을 넘볼 수도 있는 위치에 이르게 된다. 또한 그는 최근 “내년 6월 지자체 선거 이후 개헌론을 공론화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때가 되면 그는 여당의 당 의장으로서 개헌 논의에 대해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동시에 막강한 자기 목소리도 낼 수 있다. 정치권은 향후 2년 동안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가 가시화되고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본격화된다는 점에서 ‘문희상 의장’ 체제 출범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렇듯 정치적 영향력이 점차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문 의원이 최근 A의원에게 개헌 로드맵에 대한 자신의 심중을 드러내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A의원은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의 선거 운동 시작 직전에 문 의원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개헌론에 대한 문 의원의 ‘심중’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문 의원은 A의원에게 개헌론과 관련해 “2002년 16대까지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가 원수를 선출했지만 17대에서 대통령 선거가 또 있겠느냐. 17대 대통령은 없을 수도 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A의원은 이에 대해 “여권에서는 개헌론과 관련해 대통령제 4년 중임제가 일반적 기류였다고 생각했다. 또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정치권의 대체적 공감대는 4년 중임제가 맞다. 그런데 문 의원의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다”고 전하면서 “현재 정치권에서 물밑으로 개헌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17대에서는 5년 단임제로 실시하고 18대 때부터 개헌을 적용하자는 의견이 대세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문 의원의 생각은 내년부터 개헌 논의를 시작해 노무현 정권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헌법 체제를 적용하자는 논리다. 또한 ‘17대 대통령이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는 17대 선거에서 내각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져 대통령이 아닌 총리가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얘기일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한편 문 의원의 발언을 토대로 향후의 개헌 로드맵을 예상해볼 수 있다. 2006년에 개헌 논의가 시작돼 2007년 초에 국민투표가 실시돼 개헌안이 확정될 수 있다. 이때 여야가 합의만 한다면 17대부터 곧바로 개정된 헌법이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내각제로 개헌이 된다면 2007년 12월에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를 총선으로 대체한 뒤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가 돼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18대 총선은 2008년 4월에 실시되지만 개정 헌법에 따라 국회를 몇 달 앞서서 해산한 뒤 내각제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2008년 4월에 치러지는 총선을 통해 새로운 권력 구조가 탄생될 수 있다.
국회 법사위 김대현 전문위원은 이에 대해 “내각제가 합의될 경우 2007년 12월에 총선을 앞당겨 실시할 수도 있고 2008년 4월의 총선에서 승리한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에 취임하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여야가 합의한 뒤 개정된 헌법의 시행 일을 부칙으로 정해 확정해야 한다. 그런데 여야가 그 시행 일을 2007년이나 2008년이 아닌 차차기로 못박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법률적으로 17대에서 대통령이 아닌 총리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과거에도 그런 예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여야가 합의만 한다면 총선을 앞당겨 실시해 개헌 로드맵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사실 문 의원은 꼭 1년 전인 지난해 4월 내각제 선호를 주장해 정가에 파문을 던진 이력이 있다. 비서실장에서 물러나 대통령 정치 특보를 역임하고 있던 문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권력구조 개편 논의에는 중임제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오히려 중임제보다는 내각제 등에 대해서 더 논의해 볼 필요가 있으며 모든 것을 같이 놓고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문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말하는) 원내정당화 주장도 내용상으로는 내각제 주장과 연결돼 있다”고 말하면서 “한나라당은 (전체 의원의) 절반 이상이 내각제 선호고, 열린우리당에도 상당히 있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덧붙여 “(내각제가) 결코 물 건너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2년 후 지자체 선거가 끝나면 정치지형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인 유인태 의원도 문 의원의 내각제 소신과 보폭을 맞추기라도 하듯 “4년 중임제와 내각제적 분점형태 등 크게 두 가지인데 시대 흐름에 맞는 권력분점 방향이 낫지 않을까 본다”라고 말해 정치권에 파문을 던졌다. 당시 한나라당 일부 영남권 중진들도 반기는 분위기였다. 한나라당 임인배 의원은 “내가 당내에서 내각제 깃발을 들어 보려 한다”며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여야가 이렇게 내각제를 위한 한 목소리를 부를 경우 내년을 기점으로 커다란 정계개편도 예상해볼 수 있다. 사실 여권으로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대권을 거머쥐었고, 뒤 이어 노무현 대통령도 2.3%의 근소한 우세로 권력을 차지했기 때문에 차기에는 ‘확실하게’ 권력을 잡으려는 욕구를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정권 재창출은 여권의 최대 이슈다. 장기 집권의 관점에서 향후 내각제를 고리로 야당과 큰 구도의 정계개편 가능성을 상정해볼 수 있다. 이때 여당은 한나라당의 ‘수요모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 세력과의 연합을 가능성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 개혁 성향 의원들은 최근 국보법 폐지 등 여권과 정책적 코드를 최대한 맞추고 있고 노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한나라당의 일부 영남권 보수세력이 외톨이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데 ‘한나라당 잔존 세력이 제2의 자민련이 된다’라는 정치권의 가설과도 일맥상통해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여권에서는 내각제에 대한 공감대가 그리 넓지 않다. 당 의장 경선에 나선 김두관 염동연 한명숙 의원 등은 모두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다. 오직 문희상 의원과 유시민 의원이 내각제도 유력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유시민 의원의 내각제 선호. 유 의원이 노 대통령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는 정치인임을 놓고 볼 때 그가 내각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결코 소홀하게 볼 수 없다.
그런데 문 의원측은 자신의 내각제 발언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대답을 보내 오지 않아 그의 반론을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