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사랑니>의 한 장면.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베드신의 경우 종종 등급 문제가 자체 검열의 잣대로 작용된다. 최근 전국 관객 1백20만 명을 돌파하며 순항중인 멜로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감독 민규동, 제작 두사부필름)은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맞추기 위해 윤진서-정경호 커플의 진한 베드신에 손을 대야했다.
극중 예비 수녀와 스타 가수로 나오는 이들은 같은 병실에서 지내던 중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되고 병원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설정으로, 애초 노출의 수위가 상당했다. 민 감독은 두 배우에게 간단한 설정만을 던져주고 자유롭게 촬영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상당히 쑥스러워하던 두 배우가 프로 근성을 발휘해 완성한 베드신은 분량만 5분이 넘어섰다. 분위기 또한 상당히 야했던 것.
그러나 결국 극장에서 관객들은 1분30초 분량의 몽환적인 베드신밖에 만나지 못한다. 둘의 사랑을 상징적으로만 보여주는 이 장면에선 노출 수위가 사실상 고작 ‘초등학생 관람가’ 수준이다. “편집 과정에서 이 장면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눴다. 이들 커플이 너무 야하면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는데 지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민규동 감독의 설명이다.
한편, 러브신 수난사(?)를 겪은 또 다른 톱스타는 김정은. 영화 <사랑니>(감독 정지우, 제작 시네마서비스)에서 극비리에 농도 짙은 베드신 촬영까지 했지만 90% 이상이 잘려나갔다. 김정은은 영화 막바지 무렵 서울의 한 모텔에서 첫사랑을 닮은 자신의 고교생 제자 이태성과 사랑을 확인하는 문제의 장면을 꼬박 이틀에 걸쳐 카메라에 담았다.
그 내용은 학원 강사 조인영으로 나오는 김정은이 장난스럽게 자신의 행동을 따라하라며 이태성에게 애정신을 유도하는 설정이었다. 둘 사이의 숨 막히는 터치가 6분여 동안 이어지는 롱테이크 신으로, 둘 다 이불을 덮은 채 촬영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온 몸에 땀이 흠뻑 배는 가운데 아슬아슬한 감정 표현을 해야 했으니, 촬영장 수은주가 확 올라갔음은 당연한 일. 극소수의 스태프들이 참여하긴 했으나 두 배우 모두 민망해하는 상황 속에서도 감정에 몰입하느라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이번 베드신 또한 영화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됐다. 전체 편집을 진행하면서 검토해본 결과 문제의 베드신이 영화가 목표로 하는 15세 관람가 등급 이상의 수위를 보인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쉽게도 본편은 물론 예고편과 뮤직비디오 등에도 사용하지 않고 과감히 ‘폐기처분’한 것.
▲ 위부터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외출>, <달콤한 인생>에서 ‘가위’를 피해 살아남은 장면들. | ||
첫 촬영 장면이 배우자의 교통사고 소식을 접한 손예진이 병실 앞에서 배용준과 조우하는 장면. 서로 배우자의 불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이 커플의 운명적인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이다 보니 촬영에 특별히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다양한 버전으로 울어야했던 손예진은 “약도 쓰지 않고 촬영 내내 울고 나니 나중에 호텔에 돌아갈 때는 머리가 텅 비는 것 같더라”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장면 또한 아주 심플하게 처리가 됐다. 마지막 결론 또한 둘의 결별, 만남 등 다양한 설정을 한 다음 촬영했는데, 물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은 단 하나다. 이러니 배우들도 정작 영화 속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다고 우스갯소리로 토로할 정도.
한편, 가장 힘든 장면 중 하나인 액션신도 촬영을 다 끝내놓고는 인정사정없이 잘려나가곤 하는데, 칸 국제영화제 진출작인 <달콤한 인생>에서 물고문에 구타 등등 다양한 형식으로 괴롭힘을 당한 이병헌도 이중 상당부분이 편집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특히 감기가 걸린 상태에서 밤새 3톤 분량의 물을 맞아가며 우중 구타신을 찍기도 했던 이병헌은 이후 “감독이 일부러 나를 괴롭힌 거 아니냐”는 농담으로 기자회견장에서 폭소탄을 터뜨리기도 했다.
최근 영화 <강력3반>에서 건망증 심한 형사 ‘문봉수’ 역을 맡아 열연한 허준호도 15년간 수백 명의 범죄자들을 검거한 베테랑 형사로 나와 다양한 액션신에 도전했다. “촬영 내내 온몸에 타박상을 달고 살았다”는 허준호는 “출연한 장면이 많이 삭제돼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다”라고 후일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래도 이쯤 되면 사건도 아니다. 현장 장악력이 현격히 떨어진 모 신인 감독의 경우 아침에 촬영을 시작했으나 계속 OK사인을 내지 못해 밤까지 촬영을 계속하게 된 일화가 있다. 우유부단한 이 감독은 끝까지 시간을 끌다가 결국엔 아침으로 된 설정을 밤으로 바꿔 다시 날밤을 새우면서 촬영을 했다. 중요한 신마다 아침 버전, 밤 버전을 되풀이해서 찍어야 했던 배우들이 나중에 파업 일보 직전까지 가는 바람에 촬영 중단 위기를 겪기도 했던 것은 충무로의 유명한 뒷얘기다.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것은 물론이다.
김수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