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당의장 시절의 정동영 장관. | ||
그러나 여권을 대표하는 대선주자인 정 장관측의 활동영역 중 일부는 아직도 ‘정치 1번지’인 여의도에 남아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 D빌딩 내에는 정 장관의 개인연구소로 알려진 한 사무실이 있다. 그동안 이 사무실엔 정 장관의 측근인사들이 주로 드나들었다.
그런데 이 사무실에 최근 들어 정계와 학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사무실을 거점으로 ‘나라비전연구소’란 조직이 만들어져 활발한 연구·토론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나라비전연구소엔 정치인 교수 등을 비롯해 정 장관 측근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일종의 ‘정동영 사조직’인 셈이다.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 연구소에 대해 차후 정 장관의 대선레이스를 뒷받침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나라비전연구소는 지난해 말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각계 학자들이 모여 2주에 한번꼴로 토론·발제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이 모임의 멤버인 한 인사는 “말 그대로 나라의 비전을 연구하기 위한 모임”이라며 정 장관을 위한 정치적 모임 성격은 아니라고 밝혔다. ‘나라비전연구소가 정 장관의 대선 아젠다 개발을 위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정 장관의 한 측근인사는 “그냥 개인 사무실일 뿐”이라며 잘라 말했다.
그러나 나라비전연구소 구성원을 보면 이 조직이 정 장관의 정책 브레인 역할을 해주는 기능을 한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이 연구소의 소장은 권만학 경희대 국제경영대 학장이다.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정 장관은 자신이 꿈꾸는 나라에 대해 ‘신발전국가’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정 장관이 예전부터 주장해온 ‘신발전국가’ 개념을 제안한 인사가 바로 권 교수다. 2002년 경선 당시 권 교수는 정 장관 캠프의 정책·기획 총괄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정 장관 자문그룹의 대표적 인사로 알려진 권 교수는 정 장관과 서울대 동기이기도 하다. 권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열린우리당 산하 열린정책연구원 통일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다.
나라비전연구소 활동에 대해 권 교수는 “요즘 학장직을 맡고 있어서 연구소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한다”며 “연구소에 대해선 이사장님에게 묻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권 교수가 ‘이사장님’이라 지칭한 인사는 바로 남궁석 국회 사무총장(장관급)이다.
삼성SDS 대표이사, 제5대 정통부장관을 거쳐 16대 의원을 역임한 남궁 총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 논란으로 지난 17대 총선에 불출마했다. 대신 당살림을 담당하는 사무처장·총무위원장을 맡아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과 손발을 맞췄다. 나라비전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남궁석 총장은 정 장관의 당의장 시절부터 정 장관측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나라비전연구소 멤버 중 주목할 만한 또 한 명의 인사는 바로 채수찬 의원이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전국 최다 득표를 기록한 인물로 여권 내부에서 ‘정동영 장관 대리인’으로까지 불린다. 정 장관의 전주고·서울대 후배이기도 한 채 의원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정 장관에게 경제부문 조언을 해주었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 2003년 1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자 대신 정 장관이 다보스 포럼에 참석할 때 동행해 주목받기도 했다.
정 장관과 오랜 친분을 유지해온 채 의원은 현재 나라비전연구소에서 경제 분야를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그밖에 당의장 시절 정 장관을 보좌했던 측근인사와 현재 열린정책연구원에서 활동중인 정 장관 측근인사 등이 나라비전연구소의 행정·조직 분야를 맡고 있다고 한다.
차기 대선을 위한 준비에 대한 질문에 정 장관의 핵심측근들은 “대선 위해 준비하는 것 없다. 성공적인 장관직 수행에 충실할 뿐이다”고만 답해왔다. 당의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정 장관 이름이 여권 내 역학구도에 거론되는 것을 두고 확대해석을 경계해오기도 했다. 정 장관이 통일부장관직을 맡았을 때 기존 보좌진을 통일부에 데려가지 않은 것도 ‘정치인’ 이미지를 털어내고 장관직 임무에만 충실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나라비전연구소의 라인업 역시 통일부장관직 수행에 대한 자문기구 성격이 강해 보인다. 현재 이 연구소엔 외교·안보·경제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15명 안팎의 교수들이 모여 연구·토론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 장관의 세종로청사행에 대해 여권 인사들이 ‘대권 수업’이라 입을 모았을 만큼 정 장관은 조만간 ‘정치1번지’ 여의도에 ‘컴백’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다.
이번 전당대회 기간 동안 장영달 의원에 의해 ‘정 장관의 10월 재보선 출마를 통한 당 복귀’ 주장이 불거졌는가 하면 문희상 신임 의장 체제의 주요 라인업이 정 장관 계보 인사들로 채워지는 등 정 장관의 정치권 복귀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평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나라비전연구소의 역할이 향후 정 장관의 ‘대권 싱크탱크’로 발전할 것이란 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