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 ||
협박 방식도 남다르다. 가해 남성이 피해 남성의 나체 사진을 찍는 다소 엽기적인 방법이 동원됐다. 나체 사진을 이용한 협박 사건의 피해자가 여성이 아닌 남성인 경우는 극히 드문 케이스에 속한다. 과연 A씨를 둘러싼 두 남성이 이런 엽기적인 사건에 휘말린 이유는 무엇일까. 2005년 연말 연예계를 바짝 달군 이들의 기막힌 사연을 살펴보도록 한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월이다. 현직 대학교수인 심 아무개씨가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A씨에게 ‘빌려준 돈 6억원을 갚으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 그렇다면 왜 A씨가 이런 소송에 휘말리게 된 것일까.
A씨와 심씨가 인연을 맺은 것은 대략 5년 전으로 단순한 지인 관계가 아닌 연인 사이였다. 당시 A씨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방송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였고 심씨는 음반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연예 관계자였다. 다만 나이 차가 20세나 된다는 점이 부담이었지만 심씨가 워낙 적극적이라 A씨가 심씨의 마음을 받아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당시 심씨 측근들은 두 사람이 곧 결혼할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나이와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한 가지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었다.
두 사람이 교제중이던 당시 심씨는 A씨가 새 집을 얻어 이사하는 과정에서 주택구입 자금부터 이사 비용까지 총 6억원 상당의 돈을 제공한 바 있다. 하지만 이미 이별 수순을 밟은 상황에서 심씨는 “당시 6억원은 빌려준 돈이니 빠른 시일 내에 갚아 달라”고 요청했고 A씨는 “교제할 당시 내게 호감이 있어 집을 사준 것이니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한때 사랑했던 두 사람이 이별 이후 ‘6억원’의 거금을 두고 다투는 사이가 된 것이다. 심씨는 거듭된 요구에도 A씨가 6억원을 돌려주지 않자 결국 지난 9월 이를 반환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A씨의 모친이 영화사 대표인 김 아무개씨에게 도움을 청하면서부터 확대되기 시작됐다. 김씨는 영화계에서 상당히 주목받는 영화인으로 평소 영화인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사건 해결을 위해 사용한 방법은 평소 이미지와 전혀 다른 파격적인 것이었다.
심씨와의 약속을 주선한 이는 A씨의 어머니였다. A씨의 어머니가 ‘사업 문제로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취하자 심씨가 이에 응한 것. 이때가 10월 중순으로 심씨가 민사소송을 제기한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심씨 입장에선 A씨측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자고 연락해온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자리가 민사소송 해결을 위한 자리였음은 분명하나 그 방식과 대상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이었다.
지난 10월24일 오후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인근 카페에서 양측의 만남이 이뤄졌다. 그런데 약속장소에 나타난 이는 A씨의 모친이 아닌 영화사 대표 김씨였다. 건장한 남성 3명을 대동하고 나타난 김씨는 심씨를 감금한 상태에서 협박을 가해왔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심씨의 옷을 벗긴 뒤 나체사진을 찍는 엽기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심씨를 괴롭혔다. 김씨가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 심씨를 감금·폭행한 이유는 A씨에게 제기한 민사소송 때문이었다. 결국 심씨는 민사소송을 철회하겠다는 각서를 쓴 뒤에 풀려났고 며칠 뒤 이 사실을 경찰에 알린 뒤 김씨를 감금·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서초경찰서의 김성권 형사과장은 “심씨의 고소를 접수해 고소인 조사를 마치고 피고소인인 김씨를 출석시키려 했으나 당시 김씨가 해외 체류중이었다”라며 “최근에 귀국한 김씨가 지난 9일 자진 출두해 모든 고소 사실을 시인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하루 뒤인 10일 양측이 합의하면서 구치소에 있던 김씨는 풀려났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로 송치된 상황인데 합의가 이뤄진 만큼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정도에서 사건이 종결될 전망이다.
김씨가 대동한 세 명의 남성이 조직폭력배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김성권 형사과장은 “김씨가 출두할 때 모두 같이 왔는데 조사해보니 영화계 후배들로 조직폭력배라는 소문은 사실무근”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연예 관계자들 사이에선 ‘A씨와 김씨가 특별한 사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돌았다. 김씨의 해결 방법이 너무 극단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김 형사과장은 “김씨는 A씨가 아니라 A씨의 어머니와 친분이 있었고 이번 일을 부탁해온 것도 A씨의 어머니였다고 진술했다”며 더 이상의 추측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심씨는 지난 1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합의가 이뤄진 과정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반응만 보였다. 기자가 “돈을 되돌려 받는 걸로 합의가 된 것이냐”고 묻자 “돈을 받아 합의해준 것으로 이미 모두 끝난 일”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꺼렸다. 김씨 역시 이 사건에 대해선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한편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미스코리아 출신 A씨는 계속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만 A씨의 한 측근 인사는 “두 사람이 합의해서 일이 마무리됐으면 좋은 일 아니냐?”는 말로 파문이 진정되기를 바랐다.
연예계 데뷔 과정부터 지금까지 이미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 바 있는 A씨는 이번 사건으로 또 다시 연예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게다가 이번 사건이 지난 몇 년 새 달라진 연예계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심씨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연예계의 가장 막강한 세력이었던 음반업계 관계자이고 김씨는 요즘 가장 각광받고 있는 영화계 관계자로 두 사람 모두 업계를 대표할 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영화 관계자가 음반 관계자의 나체사진까지 찍어가며 감금 협박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는 음반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민섭 기자 ksim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