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열린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영화인들은 “영화인의 밥그릇 지키기가 아닌 문화주권 수호를 위한 투쟁”이라고 밝혔다. | ||
과연 이번에도 영화계가 스크린쿼터를 사수할 수 있을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역시 민심의 향배다. 한국 영화 시장의 급성장을 이유로 정부가 ‘스크린쿼터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고 여론 역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 2일 열린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도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가 영화인의 밥그릇 지키기가 아닌 문화주권 수호를 위한 투쟁”이라며 여론을 가장 먼저 챙겼다.
분명 ‘98~99년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당시와 달리 한국 영화 시장은 급성장했다. 이로 인해 정부의 ‘무용론’이 힘을 얻고 여론도 요동치고 있지만 더욱 가장 무서운 적은 밖이 아닌 영화계 내부에 있다는 지적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문제는 판이 커진 영화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대기업들이다. 현재 영화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세력은 단연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다. 대기업 계열의 두 회사는 배급사로 출발해 지금은 대규모 극장 체인을 운영하는 동시에 영화 제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투자사’의 모습까지 갖추고 있다. 여기에 최근 롯데엔터테인먼트까지 가세한 상황. 순수 충무로 기반의 배급 제작·투자사였던 시네마서비스 역시 CJ의 자회사로 편입된 상황이다.
이들 4대 메이저 업체는 배급과 극장운영, 그리고 제작투자에 걸쳐 영화계 전방위에서 활동중이다. 그만큼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스크린쿼터 축소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우선 배급과 극장 운영을 중심으로 볼 때 스크린쿼터 축소가 분명 호재다.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일수가 줄어들면서 배급과 극장 운영에 좀 더 탄력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과 달리 ‘98~99년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당시에는 배급사와 극장주, 그리고 제작사가 각각 독립된 영역을 지켜 구분이 명확했다. 스크린쿼터 축소로 치명타를 맞게 되는 제작사와 배우들, 그리고 스태프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던 데 반해 배급사와 극장주는 비록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축소에 동조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각각의 영화 주체들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다. 다시 말해 배급과 극장운영의 주체인 대기업이 축소 방침에 찬성할 경우 대기업의 투자를 받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에 대해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 오기민 정책위원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경우 스크린쿼터 축소로 인해 한국영화 시장이 위축되면 엄청난 손실이 예상돼 축소에 찬성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국 영화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남기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도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스크린쿼터 축소로 인해 FTA 체결이 난항을 겪게 된다는 게 문제다. 영화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4대 메이저업체는 모두 대기업의 자회사다. 결국 모그룹인 CJ그룹, 오리온그룹, 롯데그룹 등이 FTA 체결로 인해 얻는 이득을 계산해 영향력을 발휘할 경우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FTA 체결로 인해 실질적으로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검증된 사안이 아니다. 다만 대기업의 경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는 오기민 정책위원은 “영화계에 진출해있는 대기업이 이런 이유로 스크린쿼터 축소 찬성 입장을 표명할 경우 어려운 싸움이 예상된다”고 얘기한다. 다만 아직까지는 이런 가능성에 대한 대책까지는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아직까지 4대 메이저업체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입장을 표명할 사안이 아니다” “한국영화가 잘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길 바란다” 등의 원론적인 답변만 들려줄 뿐이다.
신민섭 기자 ksim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