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핑크 레이디’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이수나는 가슴 아픈 인생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연륜 있는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자는 그들의 인생을 보고 삶의 이치를 배우기도 한다. 삶에 대한 정의가 한두 가지가 아니듯 배우들의 삶도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이수나의 삶은 다른 이들의 그것보다 더욱 파란만장했다. 이수나와의 인터뷰는 많은 것을 듣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이 바로 한편의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이수나는 ‘봄’을 입고 나타났다. 의상뿐만이 아니었다. 립스틱 매니큐어 머리핀, 심지어 휴대폰과 휴대폰 줄에 달린 인형까지 죄다 핑크색이었다. 인기리에 종영된 MBC <안녕 프란체스카> 속의 ‘핑크레이디’ 이수나는 평소에도 핑크색을 좋아한다고 한다. 눈에 띄는 옷차림과 화려한 화장을 즐기는 이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옷중 3분의 2가 핑크색이에요. 핑크색을 입다가 입다가 질리면 가끔 다른 색을 한 번씩 입어주지”라며 웃음을 보인다.
알고 보니 ‘핑크레이디’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도 이수나 때문이었다고 한다. 첫 회 출연에서 평소 즐겨 입는 ‘꽃분홍’ 의상을 입고 촬영했는데 담당 작가가 “옷이 너무 예쁘고 잘 어울린다”며 다음 회부터 아예 대본에 ‘분홍색 의상을 입고 등장’이라고 써넣었다는 것. 그래서 줄곧 핑크색 의상을 입고 출연하다보니 자연스레 ‘핑크레이디’라는 닉네임이 붙게 됐다고 한다.
“시트콤에는 <세 친구>를 통해 처음 출연했어요. (안)연홍이가 많이 먹는다고 때리고 그러는 엽기적인 엄마였는데 그게 반응이 좋았는지 다음에 <형사>에서 (이)혜영이 엄마로 출연했었고, 그 다음에 <안녕 프란체스카>가 세 번째였지. 근데 시트콤이 더 재밌어요. 어린 팬들도 많아졌고 참 좋아요. 오늘도 오는데 여고생들이 서로 쿡쿡 찌르면서 ‘핑크 아줌마’라고 그러더라구(웃음).”
▲ 위에서부터 이수나의 대학 졸업식 때, <장희빈>, <전원일기>(맨 왼쪽), <안녕 프란체스카> 출연 모습. | ||
“우리끼리 보통 사극은 정통 클래식에 비유하고 시트콤은 뽕짝이나 트로트에 비유하거든. 난 사극도 많이 해봤지만 시트콤이 가장 힘든 것 같아. 처음에는 어려워서 많이 헤맸어요. 대사를 할 때 가벼우면서도 팡팡 띄어주는 액센트가 필요한데 그게 잘 안돼서. 근데 내 얼굴이 우리의 전통적인 엄마 상이 아니잖아. 그래서 그런지 튀고 코믹한 시트콤에 잘 맞는 것 같더라구요(웃음).”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 넘는 세월 동안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 <전원일기>는 ‘부녀회장’ 이수나에게도 남다른 작품이다. <전원일기>는 시청자들뿐 아니라 출연자들에게도 역사와 같은 드라마였다고 한다. 뒤늦은 이야기지만 이수나는 <전원일기>에 대한 애착과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내가 그거 하면서 애 둘을 다 낳았어.(웃음) <전원일기>는 왜 갑자기 종영됐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4대가 함께 모여 사는 가족드라마가 없지. 참 교과서 같은 드라마예요. 지금도 간혹 그 식구들이 모이면 1년에 한 번씩이라도 특집극으로 만들자고 얘기해요.”
이렇듯 이수나의 생기 넘치고 쾌활한 모습 뒤로는 가슴 아픈 인생사가 담겨져 있다. 기자도 지인을 통해 그녀의 인생사를 전해 듣기 전까지 이수나에 대해 그저 마음 편히 살아온 부잣집 아주머니 정도로만 여겼던 게 사실이다. 얼마 전 방송을 통해 처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짝 공개했지만 이수나는 “내 얘기는 전부 털어놓을 수가 없다. 어떻게 그 얘기를 다 하겠느냐”며 쓸쓸한 눈빛을 보였다. 이수나의 대학 시절로 거슬러가 보자.
어릴 적부터 공부를 곧잘 했던 이수나는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뒤로는 끼를 숨겨둘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릴 적부터 막연히 배우의 꿈을 가졌던 그는 부모님 몰래 연극반 활동을 하다가 혼도 많이 났다고 한다. 보수적인 아버지는 이수나에게 “판사나 변호사가 되라”고 강조해 왔다.
당시로선 큰 키(167cm)에다가 늘씬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던 이수나는 학교 내에서도 퀸카였다. 고려대와 연세대 축제 기간엔 고대는 물론 연대 학생들까지 그녀를 보기 위해 교문 앞에 ‘줄을 섰을’ 정도. 이수나가 직접 가져온 대학시절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렇게 대학시절을 ‘누비던’ 이수나가 법관의 길을 가지 않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MBC <대원군>의 기생 역에 캐스팅돼 방송 데뷔를 하게 된 것. 이수나는 “기생역, 마담역을 나만큼 많이 한 사람도 없을 거야. 담배도 못 피웠는데 그땐 왜 그리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많았는지 NG도 숱하게 냈어”라며 웃음을 보였다.
“그때가 권태기였던 거 같아요. 남편이 여자들한테 워낙 인기가 많은 건 알았지만 결혼하고는 딱 정리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때부터 가끔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부부싸움도 참 많이 했죠. 우리 남편은 화가 나면 날 때리지 못하니까 집안 유리창을 골프채로 다 깨 부셨어요. 집을 나가도 3일 정도 후면 들어오고 그랬는데, 한번은 나가더니 몇 달 동안 연락이 없더라구요.”
석 달 만에 남편의 친구로부터 날아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남편의 위암 말기 판정이었다. 남편을 보기 위해 병원을 찾았던 이수나는 병실에서 낯선 여자가 간병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는 “그때 느꼈던 배신감이란 하늘이 알고 땅이 알 거다. 가슴이 무너지고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수나는 그 여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이런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것도 인연인 것 같다. 지금은 저 양반 간병을 당신이 해주면 더 나을 것 같으니 좀 부탁한다”고.
방송을 통해서 고백한 바 있듯 이수나는 당시 우울증에 빠져 한동안 약에 의존해서 지내야 했다.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고 분을 풀지 못해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곳이 바로 계룡산에 있는 한 수련원. 친구의 차에 실려 가는 동안에도 맥주를 마시면서 울분을 삭혀야 했던 이수나는 그곳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수련을 받으며 차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뒤 이수나는 건강해진 마음으로 다시 남편을 만났다. 서로 맺혀있던 마음이 북받쳐 두 사람은 한 시간 동안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때 이수나는 남편에게 “당신은 몸의 병을 얻고 나는 마음의 병을 얻었는데 길지도 않은 한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자연스레 화해를 하게 됐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남편은 그곳에 집을 구해 요양을 하고 있다. 아들, 딸과 함께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수나는 틈틈이 그곳에 내려가 남편을 만나며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한땐 미칠 듯이 미웠지만 이젠 그런 남편의 모습이 애처롭다는 이수나는 “나도 돌이켜보니 남편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았다. 처음엔 남편 탓만 했는데 내 잘못을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핑크레이디’ 이수나의 화려한 외모는 그 안에 까맣게 타버린 마음을 안고 있기에 밝게만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젊은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누구보다 자신한테 솔직해지려는 이수나이기 때문에 ‘핑크레이디’란 타이틀에 절대 공감이다. 숱한 조연과 단역으로 연기자 인생을 엮어온 이수나한테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이 뭐냐고 물었다.
“다른 건 없고 왜 그 있잖아, 조폭들을 아우르는 ‘우두머리 조폭’ 말이야. 난 그 역할 한 번 꼭 해보고 싶어. 아주 신날 것 같아. 정말이야.”
조성아 기자 zzang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