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포차로 유명한 삼거리포차 앞 사람들의 대기줄. 20~30분 정도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했다. 왼쪽 사진들은 청춘남녀로 붐비는 홍대 거리 풍경.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상수역 방향으로 넘어가는 길 중간에 자리한 ‘삼거리포차’와 ‘쏠로포차’는 헌팅 포차의 양대산맥이다. 삼거리포차는 연예기획사 YG 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한다. 내부는 복고풍으로 꾸며져 있고, 1990년대 음악이 흘러나온다. 신청곡도 받지만, 2010년 이후 노래나 팝송은 신청할 수 없다. 남성과 여성 비율을 맞춰서 입장하며, 자유롭게 합석 제안이 가능하다. 대신 합석을 할 땐 종업원에게 알려 각자 자리를 계산하고 테이블을 합치는 나름의 ‘룰’이 있다.
쏠로포차는 적극적으로 합석을 주선하는 전략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들어갈 땐 솔로, 나올 땐 커플”이라는 문구를 대문짝만하게 적어뒀다. 합석을 원할 경우 종업원들이 적극적으로 주선에 나선다. 2층에 자리를 잡으면 테이블비 3000원을 추가로 받고, ‘팁’ 명목으로 테이블 당 200원을 받는다. 또 2층에서 2시간 이상 자리를 잡고 있을 경우 안주를 하나 더 시키거나, 1만 2000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어찌 보면 부당한 영업방침에도 다들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다.
실제 기자 일행이 찾은 지난 6월 26일 밤에는 삼거리포차보다 쏠로포차의 줄이 훨씬 길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 쏠로포차의 줄은 건물을 반 바퀴 감을 정도였다. 삼거리포차의 경우 여성은 20분 정도 기다려 들어갈 수 있었고, 남성은 30분 이상 대기를 해야 했다.
두 업소 모두 다른 곳에 비해 술값은 다소 비싼 편이다. 소주 한 병에 4500원. 학생들의 얇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는 인근의 다른 술집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안주 역시 결코 저렴하지 않다. 대부분의 메뉴가 1만 8000원을 넘는다. 맛이나 ‘비주얼’에 비해 높은 가격이다. 그럼에도 ‘목적’이 확실한 이들에게 비싼 술값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대의 놀이터인 만큼 ‘인증절차’는 확실하다. 아무리 노안이라도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입장 불가. 30대로 보일 법한 기자 일행도 한 명이 신분증이 없어 입장을 저지당했다. “아니 누가 봐도 20대 후반인데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며 거세게 항의해봤지만 소용없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은 ‘누나’들의 저항에도 “민증(주민등록증) 가져오라”는 말만 반복했다.
쏠로포차는 나이 상한선도 두고 있다. 만 30세 이상이면 입장 불가다. 쏠로포차의 나이 제한에 겁을 먹은 일행은 삼거리포차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이 아무개 씨(여·28), 귀여운 이목구비의 백 아무개 씨(여·28)와 함께였다. 한 시간에 다섯 번이나 합석 제의를 받았다는 다른 블로거들의 후기를 읽고 갔던 터라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부랴부랴 신분증을 챙겨온 백 씨가 돌아오자 입장해 적극적으로 ‘스캐닝’을 시작했다. 2층까지 올라가 테이블을 주욱 훑었지만 대부분이 20대 초반이었다.
남성끼리 온 테이블은 앉아있는 모습이 다들 비슷했다. 눈동자는 바쁘게 돌아가고, 손에는 술잔을 들고 있지만 고개는 좌우 30도로 돌려 다른 테이블을 훑는다. 화장실을 가는 척 일어서 술집 안을 돌아보며 사냥감을 찾는다. 함께 온 일행들과는 말이 없다. 어쩌다가 한 번씩 다른 테이블을 가리키며 귀엣말을 할 뿐이다.
옆 테이블에 앉은 남성 두 명은 어묵탕이 졸아들 때까지 연신 눈알만 굴려댔다. 한참 ‘간을 보던’ 남성들은 바로 옆에 앉은 두 명의 여성에게 관심을 보였고, 얼마 안가 자리를 합쳐 흥겨운 술자리 게임을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바로 옆에 앉아 있었지만 기자 일행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1시간 30분 동안 소주 두 병을 홀짝이며 기다려봤지만 말을 거는 이들은 없었다. “나이대가 맞지 않다”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며 술집을 나왔다.
불금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새벽 2시다. 인근 클럽들이 가장 북적이는 때다. 자정까지 술을 마시고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을 때 흥을 발산하기 위해 클럽에 몰린다. 물론 기자 일행처럼 짝을 찾지 못한 이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때문에 토요일 새벽 홍대 클럽은 짝짓기에 올인하는, 진정한 동물의 왕국이다.
삼거리포차 옆에 자리한 클럽 역시 문전성시였다. 입장료는 1인당 1만 5000원. 입장 시 채워주는 팔찌로 인근에 있는 다른 클럽도 이용이 가능하다. 팔찌와 함께 주는 쿠폰으로 무료 음료를 한 잔 마실 수 있다. 지하로 내려가자 펼쳐지는 풍경은 ‘지옥도’를 방불케 했다. 자욱한 담배연기와 옴짝달싹하지 못할 만큼 모여 있는 사람들, 몸을 울릴 정도로 큰 음악소리.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고함을 질러야 소통이 가능하다.
메르스가 창궐해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마당에 클럽을 찾은 이들은 더 부대끼지 못해 안달이었다. 친구들끼리 온 이들은 삼삼오오 마주보고 서서 흔들거리고, 짝을 찾기 위해 온 남성들은 저마다 사냥감을 찾아 몸을 밀착시킨다.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만큼 캄캄하지만 그저 여성의 실루엣이기만 하면 남성은 들러붙는다.
클럽에선 적절한 ‘밀당’이 가장 중요하다. 자칫하다간 성추행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허리를 잡으며 몸을 밀착해오는 남성을 초반에 잘 떨어뜨려내지 않으면 ‘수위’가 높아진다. 여성이 살짝 손을 뿌리쳐내면 더 이상의 터치를 하지 않는 게 클러버들의 ‘룰’이다. 하지만 이런 룰을 무시하고 집요하게 따라붙는 남성들도 있다. 클럽을 처음 와봤다는 이 씨와 백 씨는 남성들의 ‘나쁜 손’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 정도의 인구밀도를 이용해 여성의 신체를 만지고 도망가는, ‘만튀’도 많았다. 기자 일행도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엉덩이나 허리에 촉감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범인을 찾기는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백 씨에게 접근해 함께 춤을 추던 남성은 다짜고짜 입술부터 들이밀기도 했다. 집요하게 따라붙던 남성은 “왜 거부하느냐”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음만 맞는다면 언제든 나가 ‘다른 곳’으로 직행할 수 있는 곳이 클럽이기 때문이다.
잠시 열기를 식히기 위해 계단에 서있던 기자에게 20대 초반의 여성이 비틀거리며 다가와 “언니”라고 부르며 안겨왔다. 아는 동생인가 잠시 고민할 정도의 친근함이었다. “오늘 너무 신난다. 아래 재밌어?”라며 풀린 눈으로 물어왔다. 적당히 다독이며 내려 보냈지만, 사자굴 속에 토끼를 보낸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새벽 4시 30분, 여전히 뜨거운 사자굴을 나오니 멀리 동이 터오고 있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