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 마옥저수지에서 발견된 피라니아와 레드파쿠의 포획을 위해 합동조사반이 7일 저수지 물을 빼낸 뒤 수색작업을 펼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렇게 저수지 물을 완전히 뺀 적은 처음이네요.”
지난 7일 오후 3시 30분,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마옥리 마옥저수지 입구에서 <일요신문>과 만난 환경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수지 쪽을 가리키며 “물이 다 빠지면 전문가를 투입해 피라니아를 잡을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그의 손길을 따라 눈을 돌리자,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저수지는 이미 밑바닥을 드러냈고 움푹 팬 웅덩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갈색 빛의 흙탕물은 그 안을 가득 메웠다. 굴삭기의 선명한 바퀴 자국이 웅덩이 사이를 지나갔다. 저수지인지 갯벌인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역주민의 웅성거림도 간혹 들렸다.
“물고기가 없었는데 누가 집어넣었는지 몰라, 고기가 있으면 팔딱거려야 되는데….”
환경당국은 양수기와 굴삭기를 동원해 사상 초유의 ‘저수지 물 빼기 작업’을 벌이는 중이었다. 무모해 보이지만 상대는 식인물고기 피라니아와 콜로소마 레드파쿠다. 지난 3일, 환경당국은 15~19㎝ 크기의 피라니아 세 마리와 30㎝ 크기의 레드파쿠 한 마리를 그물로 잡았다. 아마존 식인물고기가 강원도 산골 저수지에 버젓이 살고 있었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그날 당국이 낚시로 피라니아 유사 어종을 네 마리를 낚았지만 날카로운 이빨로 낚싯줄을 끊고 달아난 놈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당국은 마옥저수지 언덕 한쪽에서 피라니아 한 마리와 레드파쿠 한 마리의 사체를 공개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지만 ‘툭’ 삐져나온 날카로운 이빨 때문에 한 눈에도 피라니아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자가 피라니아의 입 속에 손가락을 넣어 보자 주변 전문가들은 “다친다”며 만류했다. 황급히 손을 뺐지만 잠시 고통이 이어졌다. 몸통은 다른 민물고기에 비해 벽돌처럼 단단했다. 대략 손가락 한 뼘 크기는 돼보였다. 새끼 피라니아는 분명 아니었다. 레드파쿠의 이빨은 사람 입 모양과 똑같았다. 직사각형으로 과연 ‘인치어’다웠다.
포획 시도 3일째, 원주지방환경청은 저수지의 일반인 출입을 금지하고 그물망을 설치했다. 하지만 피라니아를 잡지 못했다. 결국 환경청, 강원도내수면연구센터, 횡성군, 강원대 어류연구센터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반은 포획을 위해 저수지 물을 전부 빼내기로 결정했다. 저수지 깊은 곳에 피라니아 떼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일요신문> 취재진이 도착 했을 무렵, 합동조사단의 막바지 물 빼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자원봉사자는 “전날부터 밤새 빼고 있다. 곧 피라니아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에에에엥, 스크루루룩… 후루룩.” 양수기의 굉음이 저수지 작업 현장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 쪽에서 굴삭기가 물길을 내면, 10여 명의 전문가들이 족대를 펼쳐 그 물길을 좇았다. 저수지 유입구 쪽엔 현장 작업 요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오른쪽 발을 위 아래로 흔들며 질척거리는 진흙을 퍼냈다. 혹시라도 진흙 틈에 피라니아가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환경청 관계자는 “저분들 연구원들이고 다 생태학 박사들인데…. 피라니아들은 복 받은 거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강원대학교 어류연구센터 A 연구원은 “피라니아 입속 에 주머니칼을 넣어보면 오도독 오도독 쇠 깨무는 소리가 난다. 웬만한 식물 줄기는 싹둑 잘라서 정말 위험하다”며 “처음에 그물 설치해서 걔네들 건진 사람이 나다. 레드파쿠는 경계심이 없는데 피라니아는 겁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B 연구원은 “어제 물 빼는 작업하고 새벽에 투입됐다”며 “일단 물을 다 빼고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면 좋겠다”고 피로감을 호소했다.
작업이 본격화할수록 저수지를 찾은 주민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이미 인근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구경꾼들은 저수지 위쪽 능선을 따라 줄지어 앉았다. 그러다 연구원들이 “족대 하나 가져와!”라고 소리치면 우르르 몰려가 그곳을 뚫어져라 지켜봤다. 마치 골프대회 갤러리들처럼. 한 지역 주민은 “저수지 낚시만 30년인데, 얘네들이 여기서 발견되나 안 되냐는 문제가 아냐”라며 “섬진강에 밤낚시 가보면 황소개구리가 두려움이 올 정도로 엄청 울어, 피라니아가 변종해서 토착화되는 문제지”고 우려했다.
저수지 물을 빼내기 위해 장비를 동원해 물길을 내는 모습.
A 연구원은 “현재까지 피라니아는 나오지 않았다. 밀어, 미꾸라지, 버들치 세 종류가 나왔다. 원래 저수지에 많은 종”이라며 “여기는 떡붕어랑 베스가 많아서 낚시꾼들한테 유명한 곳이었는데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4월 말에 저수지를 넓혀 생태계 구성 초기 단계”라고 밝혔다. 이들이 작업을 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구경꾼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피라니아는커녕 까만색 빛을 띤 민물고기만 넘쳐났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저수지가 완전히 맨 바닥을 드러냈다. 황계영 원주지방환경청장은 “피라니아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피라니아가 살 수 있는 수초도 없고 배수로도 굉장히 작고 많지가 않아 외부 유출 가능성도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낚시줄을 끊고 도망친 피라니아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환경청에 따르면, 마옥저수지는 올해 4월 저수를 시작했다고 한다. 가뭄으로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이 160㎝, 얕은 곳은 20∼30㎝로 평균 수심이 1m에 못 미쳐 생태계가 완전히 갖추어 지지 않았다. 작은 민물고기만 있었을 뿐 원래 물고기가 거의 없었던 저수지다. 더구나 수심은 배수로의 높이보다 낮았다.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합동조사단의 화두는 단연 ‘돼지비계’였다. 합조단 관계자들은 “일요일에 돼지비계 요만한 게 발견됐다. 방송보고 일부러 잡으러 오는 거다. 낚시꾼들이 금토일 다 들어왔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낚시꾼들에게 포획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틀간의 물 빼기 작업이 끝나자 작업 인원들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마무리를 위한 굴삭기 한 대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번에 저수지에서 퍼낸 물만 무려 3000t에 달한다고 한다. 어느 한 사람의 양심 없는 행동으로 수백 명의 인력과 예산이 낭비된 셈이다. <일요신문> 취재팀이 현장을 떠날 무렵, 굴삭기는 아직도 저수지 밑바닥을 집요하리만큼 파헤치고 또 파헤쳤다. 피라니아 대소동은 잠시 막을 내린 듯했지만 아름다웠던 저수지는 점점 더 흉물스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강원 횡성=최선재 기자 sun@ilyo.co.kr
피라니아 & 레드파쿠 레드파쿠는 ‘고환’ 사낭꾼 마옥저수지에서 발견한 피라니아 사체. 피라니아는 ‘이빨이 있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날카로운 이빨로 물고기는 물론 큰 포유동물들도 잡아먹는다. 레드파쿠 역시 피라니아의 일종이다. ‘볼커터’라는 별명답게 남성의 고환을 집중 공격해 뜯어먹는 사냥꾼으로 악명이 높다. 16세기 에스파냐 침략자들이 남아메리카 여행을 했을 당시에도 피라니아가 순식간에 말을 물어뜯어 백골로 만들어버린 장면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4년 전엔 브라질 북동부 피아우이주 해변에선 피서객 100여 명이 피라니아 떼에게 살점을 물어뜯기는 사고가 일어났다. [선] |
피라니아가 강원도로 간 까닭 “누군가 어항서 키우다 방사” 황계영 원주지방환경청장이 피라니아 수색 결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아마존의 식인물고기들이 왜 하필 강원도 산골마을 저수지에서 발견됐을까. 환경부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만나 “우리나라는 피라니아나 레드파쿠, 이런 애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며 “특히 강원도 지역은 날씨가 춥기 때문에 수온이 매우 낮다. 아마존의 열대어류가 추운 지역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합동조사단에 따르면, 피라니아가 산란하는 데 적합한 수온은 23~24℃라고 한다. “한 번에 최대 3000개 정도의 알을 낳는데 그것도 불가능하고 수초가 없는 곳에선 살 수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환경당국은 누군가가 피라니아를 관상용 외래어로 키우다가 방사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누가 어떤 의도로 방사했을까. 저수지 주변에는 CCTV가 없어 파악이 불가능했다. 한 수족관 운영자는 “피라니아는 다른 어종과 합사가 안 된다. 공격력이 강해 다른 어종을 공격한다. 비닐포장을 해도 이빨로 그걸 찢어버릴 정도다”며 “피라니아를 키우다 질려 다른 어종을 키우려면 피라니아를 처분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그럴 때마다 변기에다 버리기도 하고 방생을 시키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위험성’ 때문에 수족관에 처분을 맡긴다고 한다. 이번에 당국은 피라니아와 레드파쿠, 총 4마리를 포획했다. 크기도 비슷하다. 누군가가 한 어항에서 같이 기르다가 죽일 수는 없어 ‘자연스럽게 죽겠지’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방사했다고 볼 수 있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