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이 20년 넘게 둥지를 튼 왕십리 건물(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현재 화성시의 통큰 제안을 받고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왼쪽 작은 사진들은 왕십리 이전 관철동 시대 회관의 준공식과 건물 모습.
한국기원은 TV방송 설립에 관해 사전 정지작업으로 자문위원회를 만들고 회의도 몇 차례 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8월 13일(목)에는 TV방송 설립의 발대식을 갖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자리에서 이런 저런 사안들을 공식적으로 밝힐 것 같은데, 들어봐야 일겠지만, 일단 크든 작든 논란과 진통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TV 바둑방송은 둘이 있다. CJ E&M의 ‘바둑TV’와 투원미디어의 ‘K-바둑’이다. 한국기원이 따로 TV방송을 만들면 셋이 된다. 우리 바둑 시장이 세 개의 TV방송이 공존공생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되는지, 프로기사 전원이 소속되어 있고, 기보사용 독점권을 갖고 있는 한국기원의 방송과 지금도 한국기원에 정보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는 기존의 두 방송이 과연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을는지, 몇 가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런 의문점들에 대해 한국기원이 어떤 묘수를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기원이 이사 가는 것은 거의 확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기원이 지금의 왕십리(홍익동)로 온 것은 1994년 늦여름이었다.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사 가는 곳은 경기도 화성시. 화성은 바둑에 관심이 많은 지자체다. 프로의 한국리그, 아마추어의 내셔널리그, 양대 리그에 팀을 출전시키고 있다. 게다가 1년여 전부터 한국기원 화성 이사를 응수타진하기 시작했고, 이제 바야흐로 결실을 보기 직전이다. 지자체를 바둑으로 특화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바둑계에서 볼 때는 현명하고 탁월한 선택이다.
화성시의 제안은 자못 환상적이다. 회관을 지어 무상에 가깝게 대여하겠다는 것. 동탄 신시가지, 거기서도 가장 번화한 곳의 대지 약 1만 6000㎡. 건평은 1만㎡ 정도로 잡고 있는데, 건축할 때 한국기원과 상의한다는 것. 인천공항에서 버스로 1시간20분밖에 걸리지 않으니 국제대회 유치에도 불편함이 없다는 것. 어쨌든 한국기원 화성 이전은 기원 사무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프로기사들도 압도적으로 찬성하고 있다고 하니 별 문제없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왕십리 회관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한국기원 총재로 있을 때 마련해 준 건물이다. 대우그룹 계열의 의류회사가 있던 건물이었다. 김 회장은 1983년 9월부터 1996년 3월까지, 13년 동안 한국기원 2-3-4대 총재를 연임했다. 고마운 일인 것은 사실이지만, 위치나 환경이 그렇게 흡족한 것은 아니었다. 해 떨어지면 인적이 드물어 썰렁했고 건물 자체가 북향이어서 특히 겨울이면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왕십리 여기서 25년을 보냈고, 이창호와 이세돌이 세계를 제패했다. 왕십리로 오던 1994년은 이창호가 바야흐로 세계 정상을 향해 시동을 걸던 때였다.
왕십리 이전, 종로2가 ‘관철동 시대’의 회관은 1967년에 준공된 대지 100평의 5층 건물이다. 최초의 독자적 바둑회관이었다. 한국기원 초대 총재 이후락 씨의 힘이었다. 지금은 자그마한 노후 건물에 지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관철동 일대에서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1968년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사카다 에이오 9단이 “멋지고 부럽다. 일본에는 아직 이런 바둑회관이 없다”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는 것 아닌가. 조남철 선생에서 시작해 김인 조훈현 서봉수를 거쳐 유창혁 이창호까지가 우리 바둑의 중흥을 이끌었던 관철동 시대의 주인공들이다. 한국기원은 그렇게 유서 깊은 관철동 회관을 2005년에 팔았다. 명분은 ‘새 회관 마련’이었지만, 그 얘기는 슬며시 사라졌다. 아깝기 짝이 없다. 관철동 회관은 우리 바둑의 뿌리요, 요람이었고, 역사의 현장이었다. 남들은 역사와 전통과 문화를 위해 없는 것도 어떻게 만들어 내보려고 애를 쓴다는데, 우리는 스스로 없애 버렸으니까 말이다.
화성 시대가 열리면 그때는 신진서-신민준이 박정환-김지석을 넘어 자신들의 세상을 펼칠까. 아니면 신진서-신민준을 능가하는 또 더 어린 영재들이 등장할까. 이사를 간다고 해도 2018년이나 되어야 한다니 아직 몇 년 남았다. 그때쯤이면 뭐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한국은 예측 가능한 사회가 아니니까. 그래도 기대해 본다. 한국기원이 번듯한 건물에서 갖출 것은 제대로 갖추고 움직이는 모습을.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