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 ||
전통적인 텃밭인 영남에서 최근 소속 의원들이 잇달아 각종 사고와 추문에 연루되면서 지역 내 민심이 등을 돌릴 조짐을 보이면서다.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 김무성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가 그야말로 ‘영남 일색’인 한나라당으로선 해석하기에 따라 존립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지점이다. “이상한 날갯짓에 바람이 일어나지 않도록, 토네이도(회오리바람)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중자애해 달라”(강재섭 원내대표)는 당부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그만큼 영남권에서 ‘죽을 쑤는’ 일들이 빈발한 데 따른 것이다.
곽성문 의원(대구 중·남구)의 ‘맥주병 투척사건’(6월4일)은 한나라당 영남 의원들의 ‘오만’과 ‘특권의식’이 그대로 드러난 상징적 사건임과 동시에 지역 내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을 표출한 사례란 것이 당내 분석이다.
지역 상공인들과의 골프회동에서 후원금을 적게 낸다고 시비가 붙어 폭력사태를 야기시킨 것은 전적으로 곽 의원의 잘못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상공인들이 “한나라당이 그동안 뭐 한 게 있냐”며 정면으로 맞서는 사태는 3~4년 전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곽 의원 이전에도 물의를 일으켜 당 지지율을 ‘갉아먹는’ 영남의원들은 적지 않았다. 골프장에서 벌어진 일이란 점에서 이번 사태와 유사한 케이스도 있다. 김태환 의원(경북 구미 을)은 지난해 9월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장 식당에서 술을 마신다 ‘건방지다’며 60대 경비원을 폭행해 말썽을 일으킨바 있다. 김 의원은 이 일로 국회 윤리특위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다.
남녀 간에 ‘납득하기 어려운’ 관계로 구설에 오른 경우도 있다. 당내 대표적인 보수인사인 정형근 의원(부산 북·강서갑)은 지난 2월 서울 한 호텔 방에서 한 여인과 머물다 한 케이블 방송사 카메라에 잡혀 옥신각신하는 소동이 방영돼 본인은 물론 당의 이미지에도 먹칠을 했다. “외국에서 사온 묵주를 받으러 호텔방에서 만났다”는 본인의 해명이 있었지만 당내 일각에서조차 “설득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금뱃지를 유지하기 위해 부인을 ‘생고생’시키는 ‘비정의 남편’도 있다. 김정부 의원(경남 마산 갑)은 선거법 위반혐의를 받고 있는 부인을 1년 넘게 도피생활을 시키는 등 당당하지 못한 처신으로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지역 유권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특히 김 의원은 부인과 함께 “국회의원의 배우자가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받으면 당선을 무효화하는 선거법 조항이 연좌제를 금지한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내 양식 있는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이밖에 동료 의원을 ‘간첩’으로 몰아붙였다가 국회 윤리특위에 징계안이 계류중인 주성영 김기현 박승환 의원도 모두 영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이중 주 의원은 윤리특위 소위에서 15일 출석정지란 중징계가 결정된 상태다.
한나라당 내에선 영남권 의원들의 이 같은 행태를 두고 “한나라당이면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오도된’ 자신감과 수십년 동안 품고온 특권의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막판까지 패색이 짙었던 4·30 영천 재선거를 통해 영남 민심이 예전과 다름을 깨달아야 했는데 오히려 ‘영남 불패’란 고정관념만 더욱 굳힌 것 같다. 이러다간 안방이라던 영남에서 당의 위기가 촉발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영남권 내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비주류 3선 중진은 “현재 영남권 국회의원 78명 중 한나라당이 71명이고, 광역지방자치단체는 100% 장악하고 있다. 독점구조는 당을 속으로부터 곪아들게 만들고 있다. 당의 체질을 건강하게 개선시키려면 영남권에선 다이어트를 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중진은 또 “일부 영남 의원들의 특권적 권위주의적 행태도 문제지만 사단이 벌어져도 당 지도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더 심각하다. 지금처럼 온정적으로 잘못을 마냥 감싸기만 해서는 정권탈환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주목되는 것은 영남권의 민심 이반 조짐에 대한 당내 우려가 점차 박근혜 대표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이 당내에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근거없는 낙관과 자만을 불러오고 있다는 얘기다. 한 당직자는 “박 대표 주변 측근들이 재보선 이후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당내에 적지 않다”며 “대세론에 안주해 벌써부터 권력에 취한 듯한 측근들의 행태가 당에 부담을 주고 있어 문제”라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당내에서는 곽 의원의 골프장 난동 사건에 대해 박 대표가 대 국민 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서도 뒷말이 많다. 강재섭 원내대표가 대신 사과를 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응당 박 대표가 나서야 함에도 묵묵부답이란 것이다. 당장 비주류와 소장파들 사이에선 “곽 의원이 측근이라는 점을 의식해 박 대표가 감싸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