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이 8월 13일 ‘바둑채널(가칭)’ 사업단의 발대식을 열었다. 왼쪽부터 박형우 간사, 유창혁 9단, 양재호 부단장, 박치문 단장, 송필호 총재 보좌역, 김효정 기사회장, 박정상 9단, 강영진 부단장.
발대식 후 사업단을 대표한 박치문 단장이 기자들에게 발대식 전후,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가졌다. 이미 바둑 전문 TV방송이 둘이나 있는 마당에, 구태여 한국기원이 하나를 더하려고 나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지금 우리 바둑계가 위기 상황이라는 것, 또 하나는 기존 바둑TV가 바둑계 발전보다는 사기업으로서의 이윤 추구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
어린이 바둑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젊은 층에서 바둑을 안 둔다. 바둑 동호인 연령층이 어느 시점에서 끊겨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바둑을 좋아하고 경제적 여유도 있어 바둑계를 후원하던 사람들이 60~70대가 되어 현역에서 은퇴하고 있다. 어떤 기업의 대표가 바둑을 좋아해 기전을 주최하고 있는데, 대표가 물러나고 바둑을 잘 모르는 젊은 임원이 오면 기전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다. 또 우리가 지금은 과거처럼 세계 1등이 아니라 중국과 경쟁하는 상황이고, 질 때도 많다. 2013년 시즌에 세계대회 6개 우승컵을 중국이 쓸어갈 때 좀 아찔하지 않았던가.
이런 것들이 말하자면 위기의 내용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는 것 같지만, 아무튼, 그래서 한국기원은 지금 뭔가 자구책을 마련하고, 변화와 혁신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할 시점인데, 바둑계에서 ‘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CJ E&M의 바둑TV가 한국기원과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며 난국 타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으니, 한국기원이 독자적으로 바둑방송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 바둑TV와 6개 항목의 MOU(양해각서)를 맺었다. 그러나 바둑TV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CJ E&M에는 바둑TV 말고도 20개 가까운 채널이 있다. 대기업이다. 바둑TV는 그 많은 채널 중 하나에 불과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언제든 변신이 가능하다. 우리가 시작하려고 하는 ‘바둑채널’은 다르다. 비장의 승부수고, 올인이다. 우리는 실패해서는 안 된다…. 12월 말에는 정보사용, 기전 개최 등에 관한 계약이 만료된다. 우리는 바둑TV와 재계약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9월까지 사람을 다 뽑고, 10월에 제작을 시작해 내년 1월에 개국하는 스케줄이다.”
6개 항목의 MOU는 다음과 같다. 1. 피차 본연의 역할로 돌아간다. 즉, 한국기원은 대회를 주최하고, 바둑TV는 방송을 한다. 2. 기전 예산의 10%가 바둑TV의 방송제작비용으로 할당되던 것을 3%로 축소한다. 3. 3% 축소 조항은, 바둑리그에는 과도기를 두어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4. 바둑TV가 노력해 기전을 창설할 경우 한국기원은 바둑TV에 공로금을 지급한다. 5. 아마추어 기전의 경우 한국기원의 공인을 받는다.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에서 주최·주관하는 아마추어 대회에는 선수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만 참가할 수 있도록 한다. 6. 한국기원과 바둑TV는 바둑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운영협의를 한다.
이에 대해 바둑TV 쪽의 얘기는 좀 다르다. “바둑방송을 하면서 한국기원과 싸울 이유가 있느냐.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 아니냐. 다만 이견조율은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우리가 한국기원의 부설 기관도 아니고…. 그걸 빼고, 우리가 무엇을 지키지 않았는지 거꾸로 묻고 싶다. 우리는 한국기원의 요구를, 방송 일정이나 형편이 여의치 않을 때 의논한 적은 있지만, 들어주지 않은 것이 없다”는 항변이다.
“바둑TV가 그동안 바둑계에서 ‘갑질’을 많이 했다는 지적이 있다. 사안에 따라서, 관점에 따라서 그렇게 여겨질 수 있는 일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둑TV가 속기를 선호해 바둑의 깊은 맛을 희석시켰다는 비판도 받아들인다. 반성하고, 개선하고 있다. 반면에 1995년부터 2012년까지 17년 동안 180억 원 가까운 적자를 보면서 바둑 보급에 기여한 공로도 있지 않은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흑자로 돌아선 것인데, 한국기원은 올해 계약만료 후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방송을 하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
대마싸움이다. 한국기원과 바둑TV는 서로 우리가 약자라고 하지만, 바둑계에서 한국 바둑의 총본산 한국기원이 약자일 수 없다. 더구나 홍석현 총재가 있고, JTBC도 있다. 또 CJ그룹이 어떻게 약자인가. 한국기원이 향후 일정까지를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협상의 여지는 사라졌고 ‘바둑채널’의 탄생은 필지의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바둑TV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바둑채널’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국기원은 40억 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걸로 된다고는 한국기원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중에 가서는, 한국기원은 전 재산 40억 원을 날리고, ‘바둑채널’은 JTBC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 JTBC라는 배경이 없는데, 한국기원이 독자적으로 바둑방송을 만들겠다는 엄두를 낼 수 있었겠느냐.”
과연 어떻게 될지. 끝내 어느 한 쪽이 다치고 끝날지. 아니면 막판에 극적으로 타협하면서 각생의 평화로 마무리되는 그림은 불가능한 일인지….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