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블 방송 CGV에서 방영되고 있는 <색시몽>의 한 장면. 좀 더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에로 배우를 섭외해 성추행 당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 ||
한 여성이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탄다. 여성이 술기운에 잠이 들자 이를 본 택시기사는 한적한 곳으로 차를 몰고 가 여자를 성추행한다. 택시기사에게 성추행당하는 여성은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케이블TV 채널 CGV <색시몽>의 한 장면이다. <색시몽>은 사회에 만연한 성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미녀삼총사가 나선다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파격적인 노출 장면 때문에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2회 ‘택시 강간범’ 편에서는 여성이 택시기사에게 성추행 당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에로배우를 캐스팅했다.
이처럼 에로배우들이 케이블TV로 진출하고 있다. 주로 소수 성인채널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tvN, OCN, 슈퍼액션 등 각종 케이블TV의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에로배우들이 소속돼 있는 곰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최근 케이블에서 섭외 전화가 쇄도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드라마 단역부터 프로그램 게스트, 영화까지 다양한 곳에서 소속 배우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원래 에로배우들의 제1의 전성기는 9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에로비디오와 ‘엔터채널’ ‘노브라TV’ 등 인터넷 성인방송이 성인콘텐츠를 접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성인영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정세희 엄다혜 등 에로업계의 스타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초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을 나서면서 성인 콘텐츠 시장이 급격히 축소됐고 에로배우들의 설 곳이 없어졌다.
그 후 에로배우들이 눈길을 돌린 건 모바일 쪽이었다. 모바일 성인 콘텐츠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자 에로배우들도 모바일 성인영화를 찍기 시작한 것. 연예인 누드에서부터 일반인 누드까지 선보이며 주가를 올린 모바일 성인콘텐츠 시장은 에로배우들의 유일한 돌파구인 듯했다.
그러나 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2006년 SK가 자사의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통해서 제공되고 있는 성인용 콘텐츠 공급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에로배우들은 또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하루에 2~3편, 한 달에 30~40여 편가량 쏟아지던 성인영화는 한 달에 1~2편 제작하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고 당시 100명이 넘었던 에로배우들은 현재 15명 정도가 남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얼마 전부터 케이블TV 프로그램의 섭외가 늘어나면서 에로배우들에게 재기의 발판이 되어주고 있다. 비록 아직까지는 주인공의 친구로 1회성에 그치는 단역이 대부분이지만 여러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봇물처럼 쏟아져 이들의 숨통을 틔게 하고 있다. 또한 케이블TV뿐 아니라 영화, 연극, 지상파 드라마 등에서도 에로배우들을 찾는 제작진이 많아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에로배우 엄다혜는 연극 <미란다>, 영화 <색즉시공> 등에 출연하며 에로배우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얼마 전 화제를 모은 영화 <해부학교실> 포스터의 반라 주인공도 엄다혜였다.
그렇다면 케이블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에로배우들의 출연료는 얼마일까. 업계 관계자는 “성인영화 출연료는 편당 100만 원지만 케이블TV는 회당 150만~200만 원을 받고 있다”며 “영화에서 전라 대역을 할 경우 300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케이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레이싱 걸들이 회당 15만 원을 받고 있는 것을 감안했을 때 파격적인 금액. 게다가 이들이 케이블TV를 통해 적지 않은 인기를 누리면서 앞으로는 드라마 단역이 아닌 주연급으로 출연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물론 에로배우들에게 케이블TV 진출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촬영장에서 에로배우들이 주연급 배우들과는 달리 낮은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에로배우 소속사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촬영장에 갔는데 그쪽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우리 배우가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있었다”며 “지금 케이블TV로 진출하고 있는 우리 배우들은 업계에서 7~8년 된 베테랑인데 (에로배우라는 이유로) 메이크업도 정성들여 안 해주고 막 대하는 걸 느꼈다”고 분개했다.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