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부산영화제 기간에 맞춰 <일요신문>은 한국 영화와 배우에 관한 시민들의 반응을 직접 조사하기 위해 길거리 스티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국내 최고의 남녀 영화배우’와 ‘최고의 감독’ 그리고 ‘한국 영화를 빛낼 유망주’를 묻는 이번 설문조사에 부산을 찾은 수많은 영화팬들은 기꺼이 스티커를 들고 설문에 응했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부산영화제로 화끈하게 달아오른 부산 해운대 일대에서 연인원 3만 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실시된 길거리 설문 조사 결과를 공개한다.
영화 한 편을 성공시키는 데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걸출한 연출력이 필수 요소지만 표면적으로 가장 눈길을 끄는 요소는 단연 출연 배우, 다시 말해 스타다. 그래서 <일요신문>은 ‘최고의 영화배우는 누구’라는 질문을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에게 물었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남녀 배우 10명씩을 후보로 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총 9375명이 참여했는데 이 가운데 총 970명의 지지를 받은 이병헌이 남녀 통합 1위에 올랐다.
이병헌은 멜로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배우 중 하나였지만 영화 <달콤한 인생>에 이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에서 악역을 맡으며 새로운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놈놈놈>을 본 많은 관객들은 “이병헌이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 배우인지 몰랐다” “할리우드에 진출해 벌써 몇 편의 영화를 찍었으니 검증된 배우”라는 등의 표현으로 그의 연기력을 극찬했다.
이병헌의 1위 등극에는 일본 아줌마 팬들의 열렬한 지지도 큰 힘이 됐다. 길을 지나던 많은 일본인 여성들은 기자가 권유하기도 전에 먼저 스티커를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특이한 점은 이병헌과 함께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던 권상우가 5위권 안에도 들지 못했다는 것. 한 일본인은 그 이유를 “겟콘(결혼)”이라 말했고 국내 시민들도 “결혼 후 매력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2위는 송강호(810표)가 차지했다. 송강호는 그동안 꾸준하면서도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관객들의 인기를 얻어 왔으며, 이번 <놈놈놈>으로 그 입지를 더욱 단단히 굳힌 것이 2위 선정의 이유가 됐다.
그 뒤는 690표를 얻은 장동건이 이었다. 최근 할리우드에 진출한 덕에 국내 활동은 뜸했지만 많은 팬들이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각인된 ‘배우’ 장동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시민은 “얼굴도 완벽한 데다 연기까지 잘해 더더욱 존경스럽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 같다”며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4위는 올해 영화 <강철중>을 통해 다시금 ‘강철중’으로 돌아온 설경구(630표)가 차지했다. 늘 변함없는 연기력과 카리스마로 관객의 마음을 충족시켜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5위는 지난해부터 브라운관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배우 이범수(535표)로, 특히 20~30대보다 10대 학생들에게 높은 인기를 차지한 게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온에어>의 연이은 성공과 이번 여름 유일한 공포영화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 <고사>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국내 최고의 여자배우는 누구일까. 단연 지난해 영화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칸의 여왕’ 전도연(765표)이 영예의 자리에 올랐다.
전도연을 선택한 많은 시민들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배우”라며 전도연을 지지했으며, 몇몇 외국인들 역시 칸 영화제 수상 배우라는 이유로 전도연을 선택했다.
김혜수는 740표로 2위에 올랐다. 아역배우로 시작해 영화 <타짜>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김혜수는 이후 영화 <좋지 아니한가> <열한 번째 엄마> 등에서 푼수 이모와 진한 모성애를 간직한 여성 등을 연기했으며 최근 <모던보이>에선 신비로운 섹시녀로 돌아왔다. 한 시민은 “행사 때마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나와 싫었는데 영화에선 누구보다 흡인력 있는 연기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 - 이 감독 영화면 무조건 본다 박찬욱(사진 왼쪽) 22.06% 장진 18.28 류승완 15.1 봉준호 12.54 김기덕 10.12 기타 21.95 - 요즘 뜨는 남자 유망주는 하정우(가운데) 1590표 이천희 555 장근석 500 강지환 485 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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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는 “예쁜 외모는 따라올 사람이 없으며 영화 <싸움>에서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김태희(425표)가 선정됐으며, 5위는 385표로 손예진이 꼽혔다.
일반인들이 볼 때 영화의 주축은 마치 배우들인 양 보이지만 배우들은 하나같이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 부른다. 그만큼 감독의 영향력이 중요하다는 대목인데 차츰 감독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영화팬들도 늘어가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일요신문>은 “이 감독 영화면 무조건 본다”는 제목으로 ‘국내 최고의 감독’을 영화팬들에게 물었다. 이 문항에선 영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을 통해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른 박찬욱 감독이 1위로 선정됐다. 총 3310명의 답변자 중 730명의 지지를 얻은 박찬욱 감독에게 지지자들은 “연출력이 기발하다” “가끔 섬뜩하지만 ‘역시’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등의 이유를 댔다.
2위는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을 오가는 장진 감독이 605표를 얻어 선정됐다.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 <바르게 살자> 등 기발한 소재와 반전으로 마니아 관객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장진 감독은 최근 <공공의 적> 3편 격인 <공공의 적 1-1 강철중>의 시나리오를 담당, 그 특유의 개그를 담아내 다시 한번 자신의 색깔이 담긴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 부산에서 만난 시민들이 <일요신문> 설문조사에 응하고 있다. | ||
마지막으로 <일요신문>은 앞으로의 영화계를 이끌어갈 ‘가장 유망한 신예배우’를 물었다. 남녀 배우 각각 5명 중 하정우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총 5420명 중 1590명이 뽑은 하정우는 “눈빛만으로 연기를 한다” “유망주가 아니라 이미 충무로를 짊어지고 있다” 등의 평가를 받았다. 설문조사를 하다 기자에게 “하정우가 왜 신예배우냐”라고 반문하는 시민들도 다수 있었다.
2위는 SBS 예능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서 ‘천데렐라’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천희(555표)가 선정됐으며, 그 뒤는 현재 MBC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출연 중인 장근석(500표)이 꼽혔다.
여자 배우 유망주로는 영화
이와는 반대로 드라마 덕에 효과를 톡톡히 본 스타도 있다. 630표를 얻어 2위에 오른 차예련이 바로 그 주인공.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워킹맘> 덕분에 30~40대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며 “독특한 마스크가 매력적이다” “드라마에서 연기를 잘했다”는 등의 의견이 많았다.
3위는 조안(300표)이 차지했다. 드라마 <토지>에서 인상 깊은 연기로 주목받았던 조안은 이후 영화에서 활약하며 차세대 유망주가 됐다. 한 시민은 “최민수, 이성재와 출연했던 <홀리데이>에서 선배배우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보여줘 감탄했다”며 조안을 꼽았다.
부산=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