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즈 일반 개인 모임’ 소속 팬들이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열린 목동구장에서 근조화환을 설치하고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히어로즈 프런트는 송지만 코치의 은퇴식을 일반 팬들에게 전혀 공지하지 않았다.”
7일 오후 4시 무렵 목동 야구장 앞에서 기자와 만난 넥센 팬 A 씨는 이같이 말했다. A 씨는 “프런트는 은퇴 일정을 특정 팬클럽에게만 알려줬다. 제가 구단에 전화를 해봤지만 날짜는커녕 어중간한 답변만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 씨를 포함한 20명 정도의 팬들은 경기장 밖에 흩어져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이들은 넥센 구단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히어로즈 일반 개인 모임’ 소속 팬들이었다. 타 구단의 팬들도 있었다. 10년째 롯데 팬이라는 B 씨는 “우리도 프런트의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모른 척할 수 없어 찾아 왔다”며 수십장의 전단지를 들고 오목교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게다가 이들은 ‘모든 팬은 야구 앞에 평등하다’는 글이 적힌 근조화환까지 준비했다. 축제 분위기 가득한 경기장의 함성소리와는 대조적인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로 인해 경기장 밖에서 마찰이 빚어지면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넥센 팬들을 위한 모두의 ‘축제’로 남아야 할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근조화환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히어로즈 일반 개인 모임’의 회원들은 모든 일반 팬들을 대신해 나섰다고 했다. 전단지에는 “넥센 구단은 자칭 ‘서포터즈’라 칭하는 특정 사조직에게 여러 혜택을 제공했다”며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여기서 ‘서포터즈’란 슈퍼 히어로즈, 영웅신화, 히어로즈 사랑 영원히(히사영)이란 세 군데 넥센 팬클럽이다. 히사영은 회원수 약 4300명의 다음 카페, 영웅신화는 회원수 약 1900명의 네이버 카페다. 또한 슈퍼 히어로즈는 페이스북(SNS) 계정을 기반으로 하는 모임이다. 넥센 구단이 이 3개의 팬클럽 카페에 가입한 팬들과 ‘일반’ 팬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 ‘히어로즈 일반 개인 모임’의 주장이다.
넥센 구단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티켓을 넥센 팬클럽인 히사영과 영웅신화, 슈퍼 히어로즈 카페의 회원인 ‘시즌권 소지자(개인자격의 연간회원)’들에게 먼저 배정해 논란을 키웠다. 지난 4일 넥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상대가 SK로 결정되자 넥센 구단은 저녁 7시 무렵 이들 3개의 팬클럽에 속하지 않은 일반 연간회원들에게 “와일드카드 결정전 티켓에 대한 접수는 받지 않겠다. 일정이 빠듯하다”며 “대신 준플레이오프 선매매 접수를 도와드리고자 한다”고 문자 공지를 보냈다. 과거엔 모든 연간회원들에게 포스트시즌 티켓을 우선 제공했지만 유독 올해만 달랐던 것.
‘히어로즈 일반 개인 모임’ 소속 팬들이 팬 차별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연간회원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를 포함해 올해에도 시즌권을 구입한 장 아무개 씨(여·29)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해에도 시즌권자들에게 포스트시즌 티켓은 일괄적으로 나갔다”며 “근데 갑자기 이런 문자가 와서 화가 치밀었다”고 밝혔다. 장 씨는 약 한 시간 뒤 넥센 구단이 이미 3개의 팬클럽의 연간회원들에겐 와일드카드 티켓 우선 배정을 위한 접수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 씨가 구단의 문자를 받았을 당시 영웅신화 등 3개의 팬클럽 카페 게시판엔 “와일드카드 결정전 관련 티켓 신청 관련 긴급 공지사항” “준PO 단체 신청 공지” 등의 게시글들이 올라온 것.
당시 각종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정경유착보다 더 심한 넥팬유착이다” “말도 안 된다”는 등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팬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넥센구단은 8시 무렵 “와일드카드 티켓도 추가로 접수 진행한다”며 “금일 자정 전까지 입금 완료된 건에 한해 티켓을 배부한다”고 세 곳의 팬클럽 회원이 아닌 일반 연간회원들에게 재공지문자를 보냈다. 물론 문자에는 특정 팬클럽에 와일드카드 티켓을 우선 배정했다는 내용은 물론 구단 측의 사과 내용조차 없었다. 장 씨는 “4시간 안에 입금을 하란 거였다”며 “너무 화가 나서 직관을 포기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게다가 넥센 구단은 일반 연간회원과 특정 팬클럽 회원 연간회원을 대상으로 와일드카드 티켓 예약 ‘입금마감시간’도 차별을 둬 논란을 더욱 거세게 했다. 결국 지난 6일 넥센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구단이 와일드카드전 티켓을 서포터즈에게만 우선 배정했다”며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해명했다.
송지만의 ‘은퇴식 별도 공지 논란’도 마찬가지다. 넥센 구단은 송지만의 은퇴식 일정도 3개의 특정 팬클럽의 회원들에게만 알렸다. 일반 팬들은 은퇴식 사흘 전까지도 송지만의 은퇴식 일정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9월 말 송지만의 팬들이 구단 프런트에 은퇴식 일정에 대해 문의 했지만 구단 측은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았다”는 답변만을 반복했다. 9월 28일이 돼서야 언론보도를 통해 “10월 1일 송지만의 은퇴식이 열린다”는 소식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넥센 구단은 팬들에게 은퇴식 시간을 구체적으로 공지하지 않았다.
반면 히사영 팬클럽에는 언론보도 전부터 송지만의 은퇴식 일정이 공지됐다. 히사영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문기사가 나오기 전에 연락받은 건 맞다”며 “구단 측에서 송지만 은퇴식을 하는데 혹시 준비를 할 것이 있냐고 물어봤다”고 전했다. 넥센 구단도 “팬 서포터즈 측에서 은퇴 기념품 전달이 있을 걸로 예상했다”며 “전달식을 행사에 포함시키기 위해 팬클럽에 미리 알린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3년째 넥센을 응원중인 윤 아무개 씨(27)는 “송지만은 레전드다. 은퇴식의 일정이 알려지지 않아 그 어떤 유명 선수보다 초라한 은퇴식을 치러야 했다”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전단지를 배포하러 나온 이 아무개 군(17)은 “올 시즌 목동야구장의 총 8번의 매진은 특정 팬클럽 회원들의 힘이 아닌 대다수의 평범한 넥센 히어로즈 팬들과 원정팬 때문”이라며 “넥센 프런트는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최종 관중 7469명, 목동 야구장 만원 관중 1만 5000여 명에 한참 부족한 숫자였다. 성난 팬심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