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정희 의원
국회 전정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전북 익산을)이 ‘지역 속으로’를 외치며 가녀린 여자 몸으로 익산시에서 택시 운전을 해 온 지 만 1년이 됐다. 비록 한 달에 한 차례 전일근무(12시간 연속 운전)할 뿐이지만, 그간 12차례 ‘가로수를 누비며’ 택시를 몰았던 전 의원은 그 사이 자신도 모르게 인식의 지평이 훨씬 넓어진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익산에서 택시기사가 된 전정희 의원을 의원회관에서 직접 만나 초선의원의 당찬 정치적 포부를 들어봤다.
-택시 운전하면서 공부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사례가 있다면.
“하루는 새벽에 어느 할머니가 탔다. 어디 가시느냐고 물었더니 아들네 집에 간다고 하더라. ‘아니, 새벽부터 며느리 괴롭힐 일이 있나?’ 싶어 왜 가느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오늘이 며느리 생일이어서 그 아이 미역국 끓여주러 간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미역국 끓여준다는 소리는 들어 봤어도, 시어머니가 새벽에 댓바람으로 며느리에게 달려가 미역국을 끓여준다는 소리는 그날 난생 처음 들었다. 꼬치꼬치 물어보니, 며느리가 아침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미역국도 못 먹고 나갈까봐, 며느리가 출근 준비하는 동안 시어머니인 자기가 미역국을 끓여서 생일을 맞은 당사자를 대접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이토록 변한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요즘 시어머니가 이토록 개방적이고 너그럽다. 이런 것을 택시 안에서가 아니면 어떻게 관찰하겠는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나라가 둘로 쪼개져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아버지에 대한 신원(伸冤), 아버지 치적(治績)의 부각이 국정화의 목적이 아니겠는가. 국정 교과서를 쓰는 곳은 이슬람권, 북한, 방글라데시 정도다. 우리나라의 이런 움직임을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도 우려한다. 우리나라 국격을 북한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폭거다. 민주주의는 다양성 존중이 생명인데, 역사를 한 가지 관점에서만 가르치는 것은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성경도 네 가지가 있는데 역사 교과서를 한 가지로 하면 되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정화는 역사를 퇴행(退行)시키는 일이다. 조선시대에도 역사는 왕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역사기록에 있어 조선시대만도 못한 사회가 되었다.”
-초선인데 하필 힘든 정치를 업으로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정치가 이렇게 힘들 줄 사실이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국민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 나부터 반성하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정치가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은 사실 아닌가?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내가 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라는 비정부기구(NGO)의 대표를 맡으면서부터 절감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직접 나서서 정치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랬는데 익산의 정치판이 너무 혼탁하다는 판단이 점점 굳어졌고, 그렇다면 내가 이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욕이 생겨났다. 그래서 뛰어들게 된 것이다.”
-전력분야는 전문성이 필요한데, 의정활동에서 ‘전력 박사’로 통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아마 지난 2011년 9월 15일 발생한 광역 정전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전력계통 분야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것이 그런 평가를 받은 것 같다. 내가 소속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따지게 되었는데, 전력분야는 문외한이어서 처음에는 막막했다. 그런데 사안을 꼼꼼히 따져보니 9.15 정전사고와 관련한 허점이 눈에 들어오더라. 당시 정전사고는 단순한 수요예측 실수나 공급부족에서 생겼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 싶어 계속 공부를 했다. 그런데 마침 입법조사처에서 9.15 사고 관련 보고서를 냈는데, 그것을 보니 전력계통 운영시스템 운영상의 문제점이 지적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인재(人災)가 아닌가?’ 싶어 그 보고서를 계기로 깊이 파고들었다. 그랬더니 마치 고구마 줄기가 달려 나오듯 지난 15년에 걸친 전력계통 운영의 문제점이 줄줄 드러나더라.”
-정치외교학 박사로서 조직 운영과 관련한 문제를 캐는 데 실력을 발휘했다는 말인가.
“그 문제 하고 정치학 박사학위 하고는 상관이 없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데, 내가 딱 그런 경우다. 2012년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의 운영상의 문제를 제기했을 때, 전력계통 전문가들이 뜨악해 하더라. ‘전력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감히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식이었다. 하지만 내가 운영 관련 문제를 들고 나오자 그간 조용했던 전력분야에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력 마피아는 워낙 강고해 나 같은 선무당이 일으킨 파동 정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더라. 자기들에게 위기가 올 수 있다 싶었는지 이전보다 더 공고한 결속력을 발휘하더라. 이런 기득권층을 상대로 3년을 부딪히면서 내 스스로 의지를 키워 나갔다. 야당의원, 그것도 여성 초선의원으로 전력마피아의 아성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첫 술에 배부르랴?’하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계속 밀어붙였다. 그 덕분에 지금은 자부심을 느낀다. 누가 뭐래도 내가 시스템 비정상이라는 문제를 처음 제기했고, 전문적이라고 누구나 기피했던 분야에 파동을 일으킨 것만도 성과라면 성과다. 지금까지 주변에서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전력분야를 다루면서 ‘누군가 지켜보는 눈이 있는 한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사진=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에 나선 전 의원.
-4년 동안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만 활동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처음에는 배우겠다는 의욕 때문이었지만,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힘자라는 데까지 종자돈을 마련해야겠다는 욕심이 강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밑바닥에 깔고 의정활동에 임한 결과 역대 국회의원들이 상상하기 어려웠던 지역경제 활성화 기반을 구축하는 데 나름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든다면.
“익산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지 40년 만에 전통·지식, 산업·문화 융합을 통한 도시형 첨단 산업단지로 거듭나도록 내가 새 사업을 유치했다. 익산 국가산업단지는 지난 7월 국토해양부와 산업통상부가 주관하는 노후 산업단지 경쟁력강화사업 대상 공동단지로 선정됐다. 그 덕분에 노후 산업단지 내 국토부의 재생사업과 산업부의 혁신사업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향후 익산 국가산단은 전통산업(주얼리, 자동차·기계 부품, 식품, 석유 등)과 미래형 서비스산업(3D프린팅, 디자인, 지식서비스, ICT 등)의 화학적 융합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북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간 생산과 수출 목표는 각각 8조원과 15억 달러다. 130여개 기업 유치를 통해 2조원의 직접투자와 1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기대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익산이라면 귀금속 산업이 유명하지 않은가.
“그렇다. 익산 국가산업단지는 지난 1974년 귀금속 수출업체의 집단화를 위해 영등동 일대 133만 6,000㎡(약 40만평) 부지에 조성됐다. 이후 수십 년간 대한민국 귀금속 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해 왔으나, 2000년대 들어 노동집약적 산업 쇠퇴로 인한 단지공동화와 업종의 사양화, 입주기업의 영세화 등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특히 조성된 지 30여년이 경과하면서부터는 기반시설 노후화에 따른 리모델링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던 중 이번 조치로 귀금속 2단지에도 2만평 규모의 ‘융복합집적지’가 구축된다. 2025년까지 기업지원 시설 건립 및 기반시설 정비 등을 위해 총 2,576억 원 규모의 국비와 지방비, 민간자본이 투입되는데, 이 사업이 완료되면 익산 산단은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다.”
-현지의 숙원사업을 마침내 유치해 뿌듯하겠다.
“익산 국가산단은 지난 2009년 정부의 구조고도화 시범사업 대상으로 지정됐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2억2000만원을 들여 낡은 펜스를 철거하고 방범 및 안내시설을 설치한 게 전부였다. 낡은 산단을 기필코 젊은이들이 되찾는 혁신과 창의의 공간으로 바꿔보겠다는 일념 아래 노력해왔는데, 이렇게 좋은 결실을 맺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지난 19대 총선 때 익산을 지역구선거는 종교전쟁을 방불케 했다. 종교는 화합을 지향하는데 선거전 와중에서 분열이 심했다. 다가올 이번 총선도 걱정인데, 예방책이 있을까.
“지난 19대 총선에서 익산의 경우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치열했다. 상대편 후보 쪽에서 네가티브 선거전술의 한 방편으로 우리 집안이 원불교라는 것을 이용해 기독교와 대립전선을 조장했다. 지금 생각하면 여당에서 선거 때마다 이념논쟁에 불을 지피는 것과 똑같은 전략을 구사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현실 정치의 치열함을 배우게 되었다. 다가오는 20대 총선에서는 그런 일(종교 대리전)이 없기를 바라지만, 인력으로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제발 역사교과서 국정화문제로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여당과 똑같은 전술을 구사하는 후보가 없기를 기원한다.”
익산은 어느 지역보다 종교색이 짙다. 원불교의 본산으로 해당 종교 신자가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고, 이와 맥을 같이 하는 원광대학교의 힘은 선거의 승패를 가를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전 인구의 15% 가량이 기독교 신자로 파악되고 있는 만큼, 교회의 힘도 엄청나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경선 과정에서 기독교 신자인 조배숙 후보 진영과 원불교 신자인 전정희 후보 진영 사이에 적지 않은 종교적 마찰이 일었다. 전 의원의 간절한 바람처럼 내년 총선에서는 당내 경선이든 본선이든 가릴 것 없이 종교 갈등이 표출되는 일이 일절 발생하지 않아야 익산 주민이 원숙한 정치의식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대 고질병이 계파갈등인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참 아픈 부분이다. 원래 보수진영보다 진보진영이 시끄러운 법이다. 다수의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계파간의 갈등이 더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여당이라고 계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 간에 정당에 대한 선호가 있고 지역구에서도 대표자에 대한 선호가 있듯이 정당 내에서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대다수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의견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 당의 계파갈등이 더 크게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당이 분열과 이견을 매끄럽게 조정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1야당으로서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선거 때만 반짝 야권연대 운운하며 단일대오를 호소하는 방식에는 국민들도 식상할 거란 생각이 든다. 국민들은 진정한 정당 내의 소통과 화합을 원하고 있다. 지금 우리당의 절체절명의 과제는 수권이다. 전략은 수권을 위한 통합전략을 세우는 것이고, 각 분야별로 계파 간 충돌 지점을 찾아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결국 통합을 위해 계파의 기득권을 양보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끝으로,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정말 지역민들을 위해 진심으로 열심히 일한 사람이었다, 정직하고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었다고 기억되고 싶다. 정치인이라면 표리부동하고 거짓말에 능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런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나 내 본성을 지켜가고 싶다. 지역구민에게도 ‘할 수 있는 한 노력하겠다’라고 하지 무턱대고 장담하지 않는다. 진심의 정치인이 내 본분이다.”
고진현 기자 koreamedianow@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