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달이라 불렸던 음력 10월 1일에는 한강변을 비롯해 서울 각지의 여러 당집에서 마을굿이 풍성하게 열렸다.
급격한 도시개발로 마을사람들의 신앙의례이자 잔치였던 마을굿의 전통이 상당수 소멸되었지만, 용산구 용문동에서 남이장군을 모시는 마을굿은 남이장군대제라는 이름으로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 남이장군사당 : 용산구 효창원로 88-19(용문동 109번지)
오는 13일(음력 10월 1일)에 용산구 용문동 일대를 중심으로 열리는 남이장군대제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0호이자 서울 한복판에서 전통적인 마을굿판의 흥을 느껴보고 참여할 수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향토축제이다.
서울의 향토축제가 된 남이장군대제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남이장군을 마을신으로 모시고 마을의 재액초복을 빌던 용산구 용문동의 남이장군당제에서 탄생하였다.
용산구 용문동의 남이장군사당은 약 3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남이장군당이 용산구에 세워진 것을 남이장군이 처음 출진할 때 군졸을 뽑아 훈련시킨 곳이 용산부근이었고, 또 남이장군이 처형된 곳이 용산 부근 새남터였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다.
남이장군이 용산구 용문동의 마을신으로 모셔지게 된 것은 억울하게 죽은 남이장군의 부당한 죽음에 대한 민중의 억울한 심정이 그를 신격화하고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승격화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로써 역사의 비극적 영웅 남이장군이 용산구 용문동을 지켜주는 마을신으로 좌정하게 된 것이다.
▲ 장군출진 행렬
서울시와 용산구청은 1983년부터 남이장군대제를 서울시의 대표축제로 발굴하여, 당제의 명칭은 <남이장군당제>에서 <남이장군대제>로 바꾸고 장군출진이라는 축제적 요소를 추가하여 서울을 대표하는 향토축제로 만들어 오고 있다.
용산구 용문동의 남이장군대제는 걸립과 꽃받기, 유교식 제례, 유가, 마을굿, 사례제의 절차로 이어지는 마을신을 모시는 신앙의례이자 마을잔치로서, 서울의 마을굿 전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남이장군대제의 날짜가 정해지면 부정한 사람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당에는 금줄을 걸고, 당 출입문에는 황토를 퍼다 놓는다. 당에 금줄이 걸리고 황토가 놓아지면 제관 이외에는 출입할 수 없도록 하였다.
남이장군대제의 중요한 준비는 걸립부터 시작된다. 본래 남이장군대제의 걸립은 패를 짜서 당 안에 세워두었던 용기(龍旗)를 앞세우고 풍물을 울리며 당제에 필요한 비용을 거두는 것이다.
걸립패가 오면 소반에 쌀과 실타래, 술을 차리고 촛불을 밝혀 가족의 무병장수를 빌었으며, 소반에 올렸던 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