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컬하게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여기에는 팬들에게 투자하지 않는 인색한 구단, 롯데에 대한 분노가 숨어 있다. 이런 치욕적인 기록이라도 당해야 구단에서 정신을 차리고 구단 재건에 나설 거라는 팬들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져 있는 것. 롯데가 최근 구단 매각설로 도마에 올랐다. 당일 반박 보도자료를 돌릴 정도로 구단 프런트는 민첩하게 대응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롯데 매각설의 가능성을 따라가 봤다.
지난 82년 프로야구 탄생 이래 팀명을 그대로 유지해 오고 있는 구단은 삼성(라이온즈)과 롯데(자이언츠)뿐이다. 대부분 구단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춘 가운데 이 두 구단은 20년 전통의 국내 프로야구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여기에는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단단하게 깔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영원한 우승후보 삼성이 지나칠 정도로 돈 보따리를 푸는 데 비해, 롯데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인색한 투자로 묘한 대조를 이뤘다. 그 결과, 결국 롯데는 구도(球都) 부산팬들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꼴찌라는 성적표를 기다리고 있다.
롯데의 올 시즌 성적을 보면 더욱 비참하다. 5경기를 남겨놓고 있는 16일 현재, 33승1무94패라는 2할6푼의 승률로 1위와 승차는 무려 47.5게임차다. 팀 사상 처음 한 시즌 전 구단 상대 10패라는 치욕도 보너스로 받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팬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 롯데의 간판인 박정태는 팬들을 등돌리게 만든 구단의 인 색한 투자에 일침을 가했다. | ||
결국 이런 롯데가 구단 매각설로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12일 모 스포츠신문에서 ‘롯데, 프로야구단 매각 검토…팬들 분노’라는 기사를 1면에 올린 것. 그룹 고위층이 비서진에게 야구단 매각을 검토하도록 지시했었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즉각 롯데 구단에서는 ‘야구단 매각검토 사실무근’이라는 반박 보도자료를 당일 날짜로 냈다. 그리고는 ‘기사 유감’이라는 제목으로 향후 구단의 중장기 계획을 설명하며 매각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구단 프런트의 대응이 너무나도 민첩하게 이뤄지다 보니 오히려 보도한 언론사와 팬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이 점에 대해 구단의 한 관계자는 “사안이 그만큼 중요하기도 했지만 보도가 나간 주말에 마침 구단의 중장기 계획과 세부 프로그램을 상부에 보고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그 보고서를 급하게 보도자료에 인용한 것뿐”이라며 “해당 언론사에는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보도처럼 롯데 구단의 매각 검토가 사실일까?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의사와는 별도로 비서실에서 야구단 매각에 대한 손익을 검토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보고서는 즉각 폐기되어 신 회장의 책상까지는 올라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부산에서 불었던 ‘사직 야구장 안 가기 운동, 롯데 불매운동’에 대한 대응책 가운데 하나로 검토되었고 바로 없던 일로 마무리되었다는 후문.
구단의 발빠른 대응 덕분에 이번 사건은 더 이상 확대될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중장기 계획이라는 것이 워낙 추상적이어서 팬들을 설득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롯데가 돌린 보도자료에는 △전용구장 추진 △대형선수 수급 △아마야구 지원 및 개방 △외국인선수 영입 △지옥훈련 등 다방면으로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롯데는 전용구장 추진을 위해 김해와 양산을 후보지로 택했지만 땅 주인과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또한 FA선수와 유망주들을 조건만 맞으면 모두 영입한다는 방침인데 과연 어떤 기준으로 조건을 맞출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롯데로서는 이번 매각설이 팬들의 구단에 대한 기대와 애증을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향후 구단에서 가시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구단 매각설이 팬들로부터 분노가 아닌 환영을 받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