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인기종목을 넘어 ‘생소종목’에 들어갈 만한 세 팍타크로 경기장면 | ||
그러나 정작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지금의 관심과 성원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들을 내보인다. 항상 그러했듯이 이 분위기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번 대회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대회 당시에는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찬란한 꿈과 희망을 키우다가 폐막과 동시에 관심과 지원이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던 전례가 반복되는 것일 뿐이라고 믿는다.
<일요신문>은 지난 8일과 9일 이틀 동안 선수촌의 국내 대표팀 선수들을 대상으로 비인기종목의 현실과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에 응해준 선수들은 모두 89명으로 사이클 요트 세팍타크로 양궁 역도 육상 체조 배드민턴 복싱 레슬링 여자농구 여자축구 등의 선수들이 주를 이뤘다. 다음은 설문 결과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다.
먼저 98방콕아시안게임과 2000시드니올림픽 이후 비인기 종목에 대한 대우나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전과 동일하다’가 58%, ‘조금 나아졌다’가 22%, ‘더 나빠졌다’가 11%로 나타났다. 한 여자 역도 선수는 “신문에서 아무리 우리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대회 끝난 뒤 일주일을 넘지 못한다. 소속 체육단체에서 보너스나 축하금을 받는 게 고작이다. 그것도 메달을 딴 선수한테만 적용된다. 메달 하나 챙기지 못한 선수는 찬밥 신세다. 지난 선수촌 파동을 보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 설문조사 표 | ||
또한 응답자의 83%가 부산아시안게임 이후도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과 대우가 전과 동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메달리스트들의 연금 제도에 대해 응답자의 대부분은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78%가 ‘연금제도가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나타냈고 11%는 ‘금액은 적당하지만 메달 적용 점수가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연금제도는 금메달이 10점 은메달이 3점 동메달이 1점으로 계산되어 있다. 메달 합계가 20점이 넘어야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은 은메달과 동메달의 해당 점수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96kg급 레슬링 그레코로만형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박명석(32)은 아깝게 연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만약 금메달만 목에 걸었어도 남은 운동 생활의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설문조사 표 | ||
현행 연금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 방안으로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을 제외한 여타 영향력 있는 국제 선수권 대회에서 획득한 메달도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의견이 주종을 이뤘다(82%). 다른 응답자는 연금 액수의 상한선 폭을 넓히자(11%)라는 소수 의견 제시.
이번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의 엉성한 선수촌 운영은 역시 선수들의 비판 대상이었다. 선수촌 문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선수 식당과 배차 문제. ‘식당 운영과 음식의 질에 문제가 있었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68%가 넘었고 여러 차례 문제점을 지적하고 건의했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 선수가 다수였다. 나머지 23%는 배차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했다. 선수들의 스케줄이 조직위가 예상했던 것보다 들쭉날쭉한 탓도 있겠지만 기동성이 떨어지는 대형 버스만을 고집하는 등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대회 기간 중 선수들이 가장 아쉽게 느낀 부분은 선수들에 대한 차별대우가 47%, 선수촌의 불편하고 비경제적인 운영 32%, 부산 시민들의 아시안게임에 대한 무관심 21% 등으로 나타났다. 교통 문제는 이번 대회 최대의 골칫덩어리였다. 울산, 양산, 마산, 창원 등 부산 시내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경기장 위치에다 열악한 수송난까지 겹치면서 선수단과 취재진들의 불편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선수들이 말하는 차별 대우는 전자제품이나 침구 등을 사용하는 데 따른 불편함보다도 유독 북한 선수들에게만 각종 편의가 제공됐다는 사실 때문. 주객이 전도된 상황들이 지속되면서 자국에서 대회를 개최하는데 대한 자긍심도 사명감도 사라졌다는 게 국내 대표 선수들의 이구동성이었다.비인기 종목에 대한 사회적인 무관심은 선수들의 장래 문제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응답자 중 84%가 ‘만약 당신의 아들이나 딸에게 같은 운동을 시키겠느냐’라는 질문에 ‘시키지 않겠다’고 답변했던 것. 그 이유가 눈에 띈다. 즉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과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각각 44%, 39%를 차지, 과반수 이상이 선수 생활에 대한 회의를 나타냈다.
그러나 선수촌에서 대표팀 생활을 할 정도면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체육 엘리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진로를 지도자쪽으로 잡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응답자들은 스포츠 관련 사업을 하고 싶다거나 다른 직업을 택할 것이라고 대답하는 등 은퇴 후 전업할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설문조사를 마친 한 체조 선수는 “사실 프로만큼 재미있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추어 종목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기대하는 게 무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우린 다만 선수들이 안정된 운동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물질적 지원이라도 제대로 해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폐막을 눈 앞에 둔 아시안게임 선수촌은 미리 퇴촌한 선수들로 인해 한산하고 썰렁한 분위기만 맴돌고 있었다. 비인기 종목의 현실과 선수촌의 폐막 전 분위기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