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장사’로 일컫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대신 동메달로 쓸쓸히 한 달간의 평지풍파를 마무리해야 했던 박항서 감독(45)은 모든 경기를 끝낸 13일 새벽녘까지 같이 고생한 코칭스태프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울산에서 경기를 치르자마자 부산으로 이동, 시상식에 참석했다가 숙소를 구하지 못해 다시 울산으로 가는 희한하고 씁쓸한 경험을 한 박 감독은 이란과의 준결승에서 승부차기패를 당한 뒤 줄곧 언론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은 터라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차갑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정이 많고 마음이 약해 간혹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박 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 엄한 지도자보다는 형처럼, 선배처럼 정을 주고받으며 가족 같은 팀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감독으로 선임되기 전부터 정해성 월드컵대표팀 코치와 자리다툼을 하는 인상으로 비쳤던 부분도 항상 찜찜한 앙금으로 남아 있었고 남북통일축구대회를 전후로 해서 불거진 축구협회와의 갈등 또한 운신의 폭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박 감독은 나름대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의 좋은 성적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구구절절한 변명보다도 성적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 했던 것.
“시간이 너무 짧았다. 대회 시작 3주 전에 소집된 선수들을 내 스타일대로 몰고 가기란 어려움이 따랐다. 감독을 보좌하는 일과 감독이 돼서 선수단을 이끌어가기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시행착오를 겪을 만한 여유도 없었고 감독 겸 코치로, 코치 겸 감독으로 선수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날 끝까지 믿고 따라준 선수들이 너무 고맙고 기특하다.”
▲ 박항서 감독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현재 박 감독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축구계에선 박 감독의 거취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기자들도 정몽준 축구협회장에게 박 감독 거취를 직접 물어볼 만큼 유임과 사퇴 쪽에서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거취 문제에 대한 결정은 곧 소집될 기술위원회로 넘어갔지만 무엇보다 박 감독의 의중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지 박 감독은 그 부분에 대해선 정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한다. 확실한 것은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 스스로 사퇴하느냐, 아니면 사퇴를 당하느냐, 그것도 아니면 2004아테네올림픽 때까지 유임되느냐 하는 세 가지의 길만 남아 있을 뿐이다.
솔직히 박 감독은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치명적인 상처를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코치에서 감독으로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후 목표를 이루지 못해 그만두는 스토리는 앞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는 데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 그렇다고 자리에 연연해 있다가 기술위원회의 ‘예상치 못한’ 결과를 접수할 경우, 그 또한 모양새가 좋을 수는 없다.
13일 태국과의 3·4위전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테네올림픽에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8강이라고 대답한 부분은 박 감독의 심경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것이다. 언론에선 이란과의 준결승전 이후부터 박 감독을 사퇴 쪽으로 몰고 갔지만 정작 당사자는 오기와 미련이 남아서라도 ‘버티기 작전’에 돌입할지도 모른다.
거취 여부와 관련된 질문에서는 여전히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되게 밀고 가는 것도 속내의 혼란스러움을 짐작하게 한다.박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앉은 이후 가장 마음 상했던 것은 언론에서 박 감독의 지도 스타일을 ‘어설픈 흉내내기’로 비아냥거렸던 부분. 히딩크 감독 밑에서 코치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히딩크 스타일이 배어 나오는 게 당연했고 월드컵대표팀 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이 구성됐기 때문에 히딩크의 지도 방식을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박 감독이 히딩크 감독의 후임으로 내정된 부분도 다른 감독이 대표팀을 맡을 경우 선수들이 혼란스러워할 수 있을 거란 우려도 내포돼 있었다.
“진정한 ‘프로’가 되지 못한 것 같다. 초보 감독으로서 보고 느끼고 겪고 인내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실감했다. 다시 도전하고 싶다. 인정받을 수 있을 때까지.”진로 문제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던 박 감독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