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은 아톰즈라는 애칭을 썼던 포항의 옛 유니폼. 오른쪽은 현재의 유니폼. | ||
이처럼 연고지 주민들이 자기 지역 구단의 이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역중심으로 운영되는 프로스포츠의 특성상 이름에도 그 지역만의 고유한 특성이 반영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비단 대구 구단뿐만 아니라, 한국 프로스포츠사에는 팀명과 관련된 적지 않은 해프닝들이 있었다. 미처 로고와 엠블럼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팀명이 바뀐 사례가 있었는가 하면, 팀명을 바꾼 뒤 성적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구단도 있었다.
보통 프로구단들은 팀명을 지을 때 연고지의 정서나 상징물 또는 모기업의 성격을 반영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다. 그러나 아무리 심사숙고해서 지은 이름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부득이하게 변경해야 할 때가 있다. 가장 흔한 것이 모기업이나 연고지가 바뀔 때이지만, 그외에 구단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할 때나 팬들의 요청이 있을 때도 개명이 필요하다.
포항 스틸러스 축구단은 개명과 관련해 사연이 가장 많은 구단이다. 1973년 포항제철 실업축구단으로 창단한 포항은 84년까지 ‘돌핀스’란 애칭을 사용했다. 포항이 동해바다에 인접해 있는 점에 착안, 돌고래를 마스코트로 사용한 것이었지만 프로에 뛰어든 뒤에 성적이 좋지 않자 주변에서 ‘바다에 사는 돌고래가 육지에만 있으니 좋은 성적이 나올 리가 있나?’라는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그냥 흘려버리기엔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던 포항구단으로서는 결국 85년에 애칭과 마스코트를 ‘아톰즈’로 변경했고 신기하게도 이듬해에 프로무대 첫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아톰즈’란 이름이 TV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일본 만화 ‘아톰’에서 따온 것이라는 주장이 거세게 일면서 또다시 팀명이 도마 위에 올려졌다.
결국 97년 현재의 명칭으로 다시 변경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명칭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모기업 포철을 상징하는 ‘스틸러스’가 이번에는 서포터스의 명칭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비판이 인 것이었다. 실제로 포항 서포터스는 95년 결성 당시부터 스틸러스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고 구단이 동일한 이름으로 개명하자 기분이 상한 이들은 ‘마린스’로 명칭을 바꿔버렸다.
포항은 스틸러스로 개명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우승컵을 안아보지 못했다. 역시 포철을 모기업으로 했던 농구의 신세기 빅스(현 SK 빅스)도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다. 대우 제우스를 인수, 99년 출범한 신세기 농구단이 처음 정하려 한 팀 명칭은 ‘BIGS’가 아니라 ‘ZOS’였다.
017을 영어로 표기한 ‘Zero One Seven’의 이니셜인 동시에 공전의 히트작 <조스>를 연상시키는 이중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후보 영순위로 거론되었지만 혹시라도 성적이 나쁘면 축구팀 포항처럼 ‘상어가 육지로 올라오니…’라는 조소를 들을까봐 막판에 제외시켰다고 한다.
프로야구의 SK 와이번스는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로 법정에 의해 개명을 당할 뻔했던 구단이다.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 2000년부터 리그에 참가한 SK는 ‘비룡’을 뜻하는 와이번스가 상표권 침해에 휘말리면서 이듬해 1월 뜻하지 않게 고소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와이번’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한 개인 사업자가 SK구단을 상대로 상표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인데, 사내외 공모를 통해 1천 개 가까운 후보작 중에 선정한 명칭인 데다, 이미 1년이나 사용해 팬들에게 익숙한 애칭이었기 때문에 SK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 다행히 ‘와이번스’가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소송에서 승리했지만, 하마터면 프로스포츠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질 뻔했다.
한편 전북 현대 축구단은 팀명이 가장 자주 바뀐 케이스다. 전북의 개명사연은 참으로 눈물겹다. 93년 완산 푸마로 출범했지만 그해 제우 엑스터로 변경해야 했고, 역시 재정적인 문제로 이듬해 전북 버팔로로 바뀐 뒤에야 프로에 참여할 수 있었다. 또 같은 해 전북 다이노스로 한 차례 더 개명된 뒤 97년 전북 현대 다이노스를 거쳐 2000년에 지금의 전북 현대모터스로 굳어졌다.
96년 나래 블루버드로 출발한 TG 엑써스 농구단도 99년 나래 해커스로 바뀐 뒤 엠블럼 작업도 채 끝나기도 전에 삼보 엑써스로 또다시 변경되는 등 같은 연고지에서 네 차례나 이름이 바뀐 이력을 갖고 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