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자칫 개막 직전까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할 경우 대회 팸플릿을 찍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가 하면, 대회명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구단과 언론사의 성화도 감당해야 한다. 또한 용품 공급업체와 계약을 미처 체결하지 못한 구단은 팬북에 실을 선수단 단체사진을 찍지 못해 안절부절 못 한다.
이처럼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스폰서’ 속에 숨어 있는 비화들을 추적해 보자. 축구•야구•농구 등 인기스포츠는 많은 기업들로부터 마케팅 타깃이 되기도 하지만 홍보 효과를 면밀히 검토한 뒤 후원 여부를 결정하는 업체들의 특성상 ‘앉아서 돈을 챙기는’ 일은 드물다.
한 시즌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시즌 스폰서를 물색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야 하는 것이 프로리그 사무국 관계자들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애환. 특히 프로축구의 경우 국내 축구팬들의 지나친 ‘A매치 편식’으로 인해 타이틀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 사례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98년 정규리그.
프랑스월드컵이 끝난 직후인 7월17일, 정규리그 개막을 불과 하루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타이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연맹은 정몽준 회장이 현대그룹 기획조정실에 SOS를 쳐 그룹의 4개 계열사에게 각각 대회 후원금을 갹출토록 함으로써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 프로축구 정규리그의 스폰서를 구하는 것은 ‘하 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해 K리그 올스타전 모습(위쪽)과, 프로농구 경기 모습. | ||
하지만 이 역시 스폰서 확보 작업이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는 비인기 종목에 비하면 행복한 편에 속한다. 배구협회는 2001년 3월 프로화 전단계로 추진했던 V-코리아리그가 대회 스폰서 확보 실패로 창설 위기에 빠지자 9개 실업구단 단장회의를 긴급소집해 구단별로 3천만원씩 투자하는 ‘비상약’을 처방해 말썽을 빚었다.
또 볼링협회는 99년 스폰서로 참여하기로 했던 한 음료업체가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기도 했다. 이상이 타이틀스폰서에 얽힌 비화라면, 구단의 물품 공급업체인 ‘키트 서플라이’에 얽힌 에피소드도 있다.
‘튀는 골키퍼’로 유명한 김병지(당시 울산)는 소속팀의 스폰서 때문에 막대한 벌금을 문 인물로 유명하다. 한때 부인이 손수 제작해준 야광유니폼을 입어 벌금을 물기도 했던 그는 2000시즌 팀이 공식적으로 지정한 축구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줄곧 다른 신발을 신고 출전했고, 이것이 연맹의 규약 위반에 걸려 경기당 30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했다. 그렇게 다른 축구화를 신고 2년동안 약 45경기에 나선 김병지는 끈질긴 고집 하나로 결국 약 1천3백여만원의 축구발전기금(?)을 헌납한 셈이었다.
특정브랜드만 선호하는 얄궂은 개성으로 정평이 나 있는 또 다른 선수는 프로농구의 현주엽(상무)이다. 현주엽 역시 팀의 공식스폰서가 공짜로 지급한 신발을 마다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신발을 버젓이 신고 출전했으며, TV중계가 있을 경우엔 해당로고를 떼고 뛰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지나친 협찬계약이 간혹 물의를 빚는 경우도 있다.
99년 프로야구 LG는 타 구단보다 4배나 많은 구단 임직원용 출입증을 한국야구위원회에 신청했는데, 당시 최고 인기구단으로서 타구단보다 월등히 많은 스폰서 수확을 올린 구단측이 후원업체 직원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전국 통용 공짜표’를 신청한 것이었다.
프로축구도 지난 시즌 구단마다 유니폼 등번호 위에 후원사의 광고를 달아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시즌 초반에 선수들이 이름 대신 기업체명이나 상품명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뛰었는데 공교롭게도 월드컵의 후광으로 많은 ‘초짜 팬’들이 경기장을 찾은 것이 화근이었다.
선수들의 얼굴을 잘 모르는 이들이 11명의 이름이 모두 똑같은 데 대해 어리둥절해 했는가 하면, “삼정톤이 제일 공을 잘 찬다”는 우스개가 나돌기도 했다. 한재성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