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주간포스트
지난 11월 9일, 일본 효고현 경찰은 “배수구 안에 들어가 여성의 치마 속을 훔쳐보던 A 씨를 불편방지조례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용의자 남성은 일본 인터넷 상에서 일명 ‘배수구남’이라 불리는 유명한 인물이다.
사건은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전 7시 50분, 한 30대 여성이 배수구 철망 위로 보이는 머리카락을 이상하게 여겨 가까이 다가갔다. 처음에는 가발이 떨어진 줄 알았으나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철망 밑 배수구에 누워있던 A 씨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놀란 여성은 경찰에 즉시 신고했고, 결국 A 씨는 덜미가 잡혔다. 경찰에 의하면 “A 씨의 휴대폰에는 치마 속을 ‘도촬’한 영상과 사진이 수십여 장 보관돼 있었다”고 한다.
이번 범행 장소로 쓰인 배수구는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지만, 근처에 여자대학교가 위치해 여성 보행자가 많은 곳이다. 특히 아침 시간에는 등교와 출근하는 여성들로 붐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배수구의 폭은 55㎝, 깊이는 60㎝ 정도로 성인 남성이 들어가기에는 매우 협소한 공간이다. 더욱이 수사 결과 “A 씨는 인적이 드문 오전 3시께 뚜껑을 열고 배수구에 들어가 경찰이 끌어내기까지 약 5시간가량 그 안에서 잠복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토록 엽기적인 행각을 저지른 걸까. 사실 이 남성은 2년 전에도 같은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다. 체포 당시 A 씨는 “100엔짜리 동전을 분실해 찾고 있었던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곧바로 “길을 지나가는 여성의 치마 속을 훔쳐보기 위해 배수구에 들어가 있었다”고 순순히 자백했다.
더더욱 황당한 건 진술 내용이었다. A 씨는 “다시 태어나면 도로가 되고 싶다”는 후세에 길이 남을(?) 말을 남겼다. 이에 수사 관계자들은 “마치 명언을 읊조리는 듯했다”며 기막혀 했다. 그의 소망은 즉각 인터넷에 퍼져 화제가 됐는데 “철학자 같은 변태남이 등장했다”고 한동안 시끄러웠다. 어느새 그에게는 ‘배수구남’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그로부터 2년 뒤. 배수구남이 또다시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석방 후에도 지속적으로 배수구에 숨은 채 여성의 치마 속을 훔쳐봤으나 2년 만에 들통 났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연간 80번 정도 배수구에 들어갔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무엇을 위한 집념인지 경멸을 넘어 감탄스럽다”면서 “그 열정으로 다른 것에 도전했다면 충분히 노벨상도 수상했을 것”이라는 비아냥이 뜨겁다. 속옷을 보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범죄 심리학자 기타시바 켄 씨는 “A 씨가 일본 경찰과 법을 얕잡아 보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배수구 안에 숨어도 경찰에게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상습적으로 범행을 이어왔다”는 분석이다. 또 “구미에서는 음란 목적의 범죄가 무거운 죄에 속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경미한 수준의 벌칙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A 씨가 또다시 범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쯤 되면 배수구남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주간포스트>에 따르면 “A 씨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범행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급 주택가에 살고 있다”고 한다.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경제적으로 꽤 부유한 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A 씨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해 “상냥하고 착한 청년”이라고 입을 모은다는 점이다. 이웃 주민들은 “2년 전 사건도 알고 있지만, 얌전한 청년으로 도저히 그런 짓을 할 것 같지 않다”며 놀라워했다.
요컨대 어머니의 설명에 의하면 “A 씨는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해 배수구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본래 배수구를 좋아했으며, 나중에 성적인 욕망과 결부됐다”는 얘기다. <주간포스트>는 “과연 ‘배수구남’으로 불릴만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건이 워낙 황당한 탓인지 일본 인터넷에서는 ‘기묘한 순위 매기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른바 변태남 순위 매기기다. 이 명단은 일본 커뮤니티 사이트 니찬네루(2ch)에서 시작된 것으로 익명의 네티즌들이 일본에서 발생한 변태 사건 중에서 ‘요코즈나(스모 선수의 서열에서 최고의 지위)’라 불릴만한 최강의 변태남을 가리는 자리다. 우리나라 씨름에 비유하자면 천하장사와 비슷하다.
수많은 변태남 가운데, 이번에 체포된 ‘배수구남’은 연간 80회나 몸을 사리지 않았다는 점과 “다시 태어나면 도로가 되고 싶다”는 유행어를 남긴 것이 높이 평가돼 단숨에 요코즈나로 등극했다. 현재까지 요코즈나에 이름을 올린 변태남은 배수구남을 포함해 단 4명뿐이다.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17년간 500명에 가까운 소녀의 타액을 모아온 ‘침 뱉어 아저씨’를 필두로, 여중생의 실내화를 수십 켤레 훔친 뒤 편의점에서 복사하다가 체포된 남성, 여고에 침입해 여학생의 학교수영복에 대변을 본 남성 등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도 남자 중학생들에게 “자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1000원을 주겠다”며 덤벼든 83세 할아버지가 요코즈나 후보군에 머물렀다.
단, 변태남 순위라고 해도 성폭행이나 아동성범죄에 해당하는 이들은 제외되며 단순한 노출증도 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강력 사건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날 경우 ‘파문’이라 하여 요코즈나 자격을 박탈하게 되니 심사기준이 꽤 까다로운 편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