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다저스 시절의 박찬호 | ||
사실 크루터는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만 메이저리그 25명 로스터에 포함될 수 있다. 현지에서도 이미 그가 박찬호의 전담 포수가 될 것이라는 점을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지만, 이미 계약한 후보 포수 토드 그린이 있기 때문에 떼논 당상만은 아니다.
그러나 박찬호의 부활이 올 시즌은 물론 앞으로 3∼4년간 레인저스의 재건에 아주 중요한 관건임을 감안하면 크루터가 그린보다 유리한 입지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크루터가 후보 포수로 한 자리를 차지해 전담 포수가 된다면 박찬호에게는 100% 도움만 되는 것일까. 물론 많은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부정적인 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정신적으로 박찬호가 편안하게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고무적인 재회가 된다. 지난 7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 중에 박찬호가 가장 뛰어난 성적을 과시했던 것이 바로 크루터와 호흡을 맞춘 2년간이었다. 2000년 개인 최다승인 18승을 거뒀고, 2001년에도 허리 통증이 있었지만 15승을 일궈냈다. 투수를 편안하게 만들고, 타자들의 약점을 파악해 투수를 리드한다는 면에서 예민한 성격의 박찬호와는 아주 잘 어울리는 배터리 메이트다.
그러나 부작용으로 전담포수제의 폐단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저스 시절 이미 타격이 뛰어난 주전 포수 로두카를 제치고 크루터를 기용하는 것에 대해 구설수가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레인저스가 주전 포수로 영입한 디아스의 타격이 썩 좋은 편이 아닌 이상, 그리고 포수라는 자리가 가끔씩은 휴식이 필요한 고된 자리인 만큼, 크루터가 5일마다 포수 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작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은 크루터의 볼 배합이다. 사실 박찬호는 155km가 넘는 불같은 강속구를 앞세운 정통파 투수였다. 1997년과 1998년 당시, 라소다 감독에게 전수받은 커브가 상당히 물이 올랐지만 잦은 사용을 꺼렸고, 체인지업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한 가운데서도 14승, 15승을 거푸 거둔 것은 타자들을 윽박지르는 강속구의 위력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 LA다저스에서 박찬호와 황금배터리를 이뤘던 채드 크루터. | ||
1999년의 슬럼프를 거치며 흔들리던 박찬호에게 크루터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크루터는 과감한 변화구 구사를 요구했고, 볼카운트에서 절대 불리한 지경에서도 커브 사인을 냈다. 반신반의하던 박찬호는 적절한 변화구 배합으로 큰 재미를 보기 시작하면서 한 단계 올라선 기량을 선보이며 최고 투수의 대열에 이름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1년 5월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왼쪽 엉치뼈 위쪽의 허리 통증을 가져오면서 서서히 문제가 발생했다. 종전 크루터의 볼 배합이 위력을 떨친 이유는 박찬호의 변화구가 좋았기 때문이지만 역시 강속구의 위력이 살아나야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당시 전매특허이던 파워 커브는 초반에 강속구처럼 날아들다 급격히 떨어져 타자들에겐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허리 통증, 러닝 부족, 하체 파워 부실로 이어지면서 강속구의 위력이 예전만 못하게 되자 크루터의 볼배합에 익숙해진 박찬호는 더 이상 무서운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부상이 큰 원인이기는 했지만, 2002년 시즌에는 박찬호의 강속구가 스피드도 많이 떨어지고, 제구력도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올 겨울 어느 때보다 혹독하고 과학적인 훈련을 쌓고 있어 박찬호의 강속구는 제자리를 많이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만약 크루터가 박찬호의 전담 포수가 된다면 과거와는 또 다른 볼배합의 패턴을 연구하고 만들어나가야 한다. 강속구 구사율을 더욱 높이고, 제구력에도 보다 세심한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변화구 위주만으로는 메이저리그에서 생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루터의 전담 포수 문제도 결국 열쇠는 박찬호가 쥐고 있다. 이번 겨울 훈련에서 좋은 성과를 얻어 강속구의 구속이 꾸준히 150km를 지키면서 예리한 공끝을 보여 줄 경우 크루터와의 재결합은 큰 성공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겨울 훈련을 하면서 자신에 찬 박찬호의 목소리는 기대를 걸 만하다. 본인의 위력적인 강속구를 되찾고, 거기에 편안한 안방 마님 크루터가 공을 받아준다면, 2003년 박찬호의 부활을 알리는 청사진이 마련되는 셈이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