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은 남편(선수)이 제공하게 마련이지만 이 기묘한 싸움을 키우고 끊는 주도적인 역할은 아내가 담당한다. 즉 남편을 통해 전해 들은 선수의 활약도, 선수단 내부에서의 생활, 경기장 밖에서의 사생활 등이 아내들의 입을 통해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무시 못할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 때론 선수 아내들끼리 일으킨 치맛바람이 사소한 다툼으로 번지다가 급기야 선수들 사이의 팀워크를 깨는 ‘주범’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98프랑스월드컵 대표팀을 맡았던 차범근 전 감독은 한때 국민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황금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해가 지면서’ 아내 오은미씨에 대한 이상한 소문들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했다. 차 전 감독이 감독이라면 오씨는 ‘총감독’이라는 표현을 해가며 오씨의 ‘내정 간섭’을 빗댄 비판 기사들이 줄을 이었던 것.
그 당시 축구계에는 교육계에서 떠돌던 ‘치맛바람’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었다. 그런데 이 ‘치맛바람’이 지금도 프로 스포츠계의 선수 아내들 사이에서 시시각각 강도를 달리하며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 지방 축구팀 감독의 아내 A씨도 ‘총감독’으로 대변되는 사람이다. 선수와의 재계약 여부와 팀 이적 문제는 물론 선수의 밤생활까지 조직적인 ‘정보보고’를 통해 수집해서 남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A씨의 ‘조직원’은 남편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의 아내들. 그들은 주로 ‘비조직원’인 다른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접 취재를 통해 A씨에게 일러바치는 일을 담당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조직원’에 속하는 한 선수가 ‘비조직원’ 선수에게 자신이 한턱 낼 테니 술 한잔 하자고 제의를 했다. 두 선수는 1차, 2차에 이어 룸살롱까지 거치며 거나하게 유흥을 즐겼다. 이른 아침에서야 귀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조직원’ 선수는 밤새도록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꼬치꼬치 캐묻는 아내에게 ‘비조직원’ 선수가 술 산다고 해서 지금까지 끌려다니다가 들어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분기탱천한 아내는 곧바로 ‘총감독’에게 보고를 했고 그 사실을 전해 들은 감독은 다음날 ‘비조직원’ 선수를 불러 훈련중에 술 먹고 돌아다닌 책임을 지라며 벌금을 부과했다. 사태를 파악한 선수는 전후 사정을 설명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미 감독은 그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한 수도권 팀의 고참급에 속하는 B선수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평소 자신의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을 기울였던 후배 C가 자신을 봐도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선수들에게 자신이 밤마다 술 마시고 다니며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고 거짓말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B는 처음에 소문의 진원지가 C라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조용히 ‘내사’를 벌이다가 나중에서야 전모를 알게 된 후 큰 충격을 받았다.
C가 B를 ‘씹고’ 다닌 것은 B의 아내 때문이었다. 즉 B의 아내가 C의 아내를 불러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키고 식사 대접과 선물을 요구하는 등 정도를 벗어나는 일이 자주 연출되면서 C의 아내가 남편에게 속상함을 호소했던 것. 그동안 아내가 겪었을 심적 고통을 생각하며 B와 그 아내에게 반감을 갖게 된 C는 B의 사생활을 거짓 선전하는 것으로 앙갚음을 대신했던 것이다.
반면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아내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으로 진출한 홍명보의 아내 조수미씨다. 월드컵 이후 매스컴의 집중적인 취재 공세로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전에는 전화 인터뷰에만 응할 뿐 사진 촬영조차 부담스러워 할 만큼 남편 뒤에서 숨어 지내는 생활을 즐겼다. 이러다보니 대표팀 선수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씨의 얼굴을 몰라서 몇 차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번은 월드컵 4강 진출을 기념하기 위해 선수와 가족들을 초청한 가운데 시내 한 호텔에서 축하 파티가 열렸다. 홍명보는 인터뷰에 응하느라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했다. 바쁜 남편을 지켜보며 혼자 식사하기가 쑥스러웠던 조씨는 다른 아내들이 있는 자리로 옮겼지만 조씨를 알아보지 못한 아내들은 금세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입장이 난처해진 조씨는 결국 박지성의 부모님 옆으로 또 자리를 옮겼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식사를 하는데 박지성의 아버지가 이렇게 물었다. “혹시 남편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