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은(26•삼성생명)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제가 원래 곱창을 좋아하거든요.” 기자의 눈길이 심상치 않았음을 느꼈는지 곧바로 자신의 기호 음식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결국 서울 서초동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원조 곱창집에 들어가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먹는데 식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여자 선수들은 뭐든지 잘 먹어요.” 묻기도 전에 궁금한 점들을 먼저 선수쳐서 대답하는 게 특기인가 보다.
지난 9일 여자농구 올스타전을 앞두고 실시한 인기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박정은(26•삼성생명)이 이번 취중토크의 주인공이었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시즌 중이라 평소와는 달리(?) 소주잔을 앞에 두고 ‘제사’를 지낼 수밖에 없었지만 시원 털털한 성격에 탄력을 받아서인지 어떤 질문에도 속사포같이 거침없는 태도로 분위기를 잡아갔다.
고1 때 술을 처음 입에 댔다고 한다. 선배의 강요에 못이겨 맥주 한 모금 마시고 혼절했던 기억 때문에 술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박정은의 술 실력은 ‘진실의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한창 마실 때는 소주를 맥주잔에 마신 적도 있었어요. 한 일곱 잔 정도? 물론 원샷이죠. 운동을 해서인지 주량이 좀 센 편이에요. 술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해요. 팀 회식 때는 주장이다보니 후배들 챙기느라 술 취할 겨를이 없어요. 사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죠.”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삼성화재 배구팀의 김세진, 신진식 등이다. 박정은한테는 ‘오빠’들이지만 그들과 음주가무를 벌여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실력과 ‘끼’를 갖췄다.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자 친구보다는 남자 친구가 많은데 노는 자리에서 빼지 않고 화끈하게 놀 수 있어야 ‘코드’가 잘 맞는다고 한다.
농구를 선택해서 직업으로 삼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가끔은 운동만 알고 지내온 시간들이 답답하고 힘들 때도 있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갇혀 지내는 기분이에요. 주말에 잠시 외출하는 일 빼곤 나머지 시간을 모두 운동에만 쏟아부어야 하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농구만 하다보니까 사람이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 받을 땐 시즌 중에 술도 마시고 나이트클럽에 가서 신나게 춤추며 풀고 싶지만 다음날 운동에 지장 받을까봐 꿈도 못꾸죠. 그럴 땐 남자 선수들이 부러워요. 술 마시고도 운동 잘하는 선수들 말이죠.”
여자 선수들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 남자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 지난 9일 열린 올스타전에서 활약중인 박정은. | ||
한때는 돈 때문에 농구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4년 전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신 뒤엔 실질적으로 집안의 가장이 된 터라 농구가 그야말로 직업인 셈이었다. 그러나 돈에 연연해 하다보면 농구를 좋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론 돈과 농구를 연관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연봉이 8천만원. 남자 선수들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액수이지만 여자 선수들 중에는 고액 연봉자로 꼽히는 톱 클래스다. 그녀에겐 유난히 고정팬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남성팬들의 인기는 전주원(현대건설)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다.
“주원 언니가 결혼해서 그래요. 결혼 후 그 팬들이 조금씩 나한테로 몰린 거죠. 아마도 내가 결혼하면 또 다른 미혼 선수한테로 관심이 옮겨질 걸요.” 박정은은 이미 알려졌다시피 축구선수인 박진섭(울산 현대)과 2년간 교제했다가 3개월 전에 헤어졌다.
처음 만남은 태능선수촌에서였다. 당시 5년 전부터 박정은의 팬이었다고 고백하는 박진섭을 전주원의 소개로 만나 가벼운 데이트를 즐겼는데 모 스포츠신문에 두 사람의 열애설 기사가 1면 톱에 실린 후 오히려 본격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사실 신문을 통해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남자 친구 이상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기사가 나온 후엔 아예 만나지 않으려고 했죠. 그러다가 우연히 사귀게 된 거예요. 사실 운동 선수는 별로였거든요. 같이 힘들게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무슨 얘길 할까 싶었어요. 참, 농구 시작한 이래 신문 1면에 내 얼굴이 나온 건 처음이라는 거 모르시죠? 엄마는 열애 사실 여부보다 당신 딸이 1면에 나왔다고 스크랩까지 했었다니까요.”
두 사람의 만남은 울산과 서울이라는 지리적인 거리감이 결국 마음까지 멀게 한 케이스였다. 한동안 심한 가슴앓이를 하며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그 멍울이 가신 상태라고.
최근 농구 기자들 사이에서 나돌았던 신인 탤런트 H와의 교제설에 대해 물었다. 박정은은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가로막는다. 친구의 선배이고 H도 농구를 좋아해서 몇 번 만났을 뿐인데 어떻게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 한다.
박정은의 이상형은 키 크고 귀여우며 평범한 직업을 가진 남자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는 순간 앞에 앉아있는 사진기자를 쳐다보며 굉장히 미안해 한다. 사진기자가 그 눈빛의 의미를 읽었는지 “내 아내는 나보다 크다”고 말하자 “원래 키 작은 남자가 키 큰 여자 좋아한다”며 되받아친다.
박정은한테는 186cm의 훤칠한 키에다 잘생긴 외모가 돋보이는 ‘남친’이 존재하고 있다. 사랑을 잃은 아픔을 새로운 사랑으로 치유받았다고나 할까. 소원대로 평범한 회사원을 만났는데 유머 감각이 보통이 아니라고 자랑한다.
“경기 중 상대 선수의 팔꿈치에 눈을 맞아 ‘밤탱이’가 된 적이 있었어요. 저녁에 그 사람을 만났는데 빵집에 가더니 밤식빵만 한아름 안겨주는 거 있죠. ‘밤탱이’ 됐으니까 밤빵 먹고 기운내라면서요.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농구스타 박신자씨의 친조카이기도 한 박정은은 출산 휴가로 빠진 정은순의 뒤를 이어 삼성생명의 대들보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연일 피말리는 순위 다툼을 벌이는 와중에도 곱창과 수다로 긴장감을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박정은.
그녀의 노래방 18번은 예상외로 트로트 가수 한혜진의 ‘갈색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