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정수근과 현대 정수성(오른쪽) 형제는 외모와 플레 이 스타일이 판박이라는 평가다. | ||
하지만 이들만의 비애 또한 남다르다. 서로 다른 팀으로 만날 경우 상대를 꺾어야만 사는 묘한 운명에 놓이게 되고, 한 팀에서 한솥밥을 먹을지라도 포지션이 같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치열한 주전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런 까닭에 이들을 자식으로 둔 부모의 심정이 배는 더 복잡해지게 마련이다.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형제 선수로는 정수근(26•두산)-수성(25•현대) 형제를 꼽을 수 있다. 외모는 물론, 포지션(외야수)까지 같은 이들은 초등학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같은 학교를 다닌 판박이다.
야구명문 덕수상고(현 덕수정보산업고)를 졸업하고 나란히 프로에 직행한 형제는 마르고 작은 체구답게 짧게 끊어 치는 스타일로,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 수비를 흔드는 것이 주특기다. 그러나 프로 입단 후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렸다.
형 수근이 고졸신화를 창조하며 승승장구, 팀의 주전 외야수 자리는 물론 국내 최고의 톱타자로 성장한 데 반해 동생 수성은 아직까지 대주자나 백업요원으로 출전하는 후보 선수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두 선수 모두 동시에 경기에 출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늘 작은 아들 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어머니 김영자씨는 “비록 처지는 서로 다르지만 두 아들의 우애가 매우 깊다”고 말한다. 동생은 형집에 자주 드나들고, 형은 그런 동생에게 코치노릇을 해준다는 것.
학창시절에는 동생이 형과 같은 학교에서 훈련하는 것이 든든했지만, 프로에서만큼은 자립심을 키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다른 팀에 보냈다는 김씨는 자식 둘이 서로 다른 팀에 있다 보니 두 팀이 맞붙는 날엔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할지 자신조차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고 한다.
현대 응원석에 있다가 정수근(두산)이 안타 칠 때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거나 두산 응원석에 앉아 있다가 정수성(현대)이 타석에 나오는 것을 보고 환호하다가 흠칫 놀란 적이 있었다는 것. 마치 동화 속 ‘나막신과 고무신을 파는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을 보는 듯하다.
▲ 조상현(왼쪽)-동현 형제 | ||
이들 역시 형 상현이 대학 최고의 3점 슈터 출신으로 동생에 비해 기량면에서 앞섰지만 동생 동현이 프로무대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어느새 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똑같은 키(188cm)에, 포지션(포워드)까지 같은 이들은 서로의 장단점을 훤히 꿰뚫고 있어 맞대결 때마다 한치의 양보 없는 플레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대학시절 같은 날에 맹장이 터졌던 데 이어, 프로에 올라와서도 같은 시기에 부상을 당하는 등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쌍둥이 특유의 놀라운 ‘교감’은 두 사람이 특별한 혈육임을 실감케 한다. 공교롭게도 SK계열의 ‘형제’구단에서 뛰던 이들 형제는 서울 SK 소속이던 상현이 올 시즌 상무에 입대함으로써 당분간 맞대결을 펼칠 수 없게 됐다.
왕년의 축구선수들 중에도 쌍둥이 형제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80년대 초반 유공과 대우에서 활약했던 김강남(49•중경고 감독)-성남(49•홍익대 감독) 형제. 이들은 70년대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형 김정남(60•현 울산 감독)과 함께 한국축구의 대표적인 형제선수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이들 ‘김트리오’는 고교-대학-프로에서 각각 사령탑을 맡고 있어 ‘형제 감독’으로 불리기도 한다. 심판출신인 둘째 복남씨와 포철선수 출신인 막내 형남씨까지 더하면 5형제 모두가 축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역시 지금은 은퇴했지만 차상광(40•성남 코치)-상해(38) 형제도 축구계의 대표적인 형제선수로 기록돼 있다. 경기도 이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연스레 축구를 접하게 됐다는 차씨 형제는 89년 럭키금성, 92년과 93년 포항제철, 96년 안양 등에서 한솥밥을 먹었지만, 팀 이동이 잦았던 탓에 그라운드에서 서로 적으로 만나는 일도 많았다.
골키퍼와 공격수로 포지션이 서로 달라 같은 팀에 있을 때는 경쟁상대가 되지 않지만, 다른 팀 선수로 경기에 임할 때면 상대를 꺾어야만 내가 살 수 있는 묘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엔 상대가 동생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오직 경기에만 집중했다는 차 코치는 “지나고보니 상해에게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더라”며 미안해했다.
오히려 동생의 주 공격루트와 플레이스타일에 대해 수비수들에게 귀띔해줬다는 차 코치는 프로에서는 피보다는 승부가 우선임을 보여주고 있다. 은퇴 후 이들은 나란히 지도자로 나서 형은 국내 프로팀을, 동생은 일본의 중학교 팀을 각각 지도하고 있다.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역시 축구선수로 뛴 차 코치의 막내동생 상훈씨(36)는 은행직원으로 근무중이다. 한재성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