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김병현. | ||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김병현의 내면의 변화는 과거를 돌아보면 더욱 실감난다. 지난 2001년 11월29일의 일이다. 당시 김병현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비록 월드시리즈에서 홈런 2방을 맞고 쓰라린 좌절을 맛보기도 했지만 ‘꿈의 무대’에서 김병현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김병현은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귀국 당시 공항에서만 잠깐 기자회견에 응했을 뿐 광주 본가에 철저히 칩거한 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러다 ‘모교 무등중학교를 방문한다’고 예고가 됐으니 웬만한 국내 언론이 모두 광주에 내려가 학교에 진을 치고 그를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막상 무등중학교에 도착한 김병현은 플래시를 펑펑 터뜨리는 엄청난 언론의 ‘관심’에 놀라 교무실 바로 옆으로 차를 댄 채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이어 교무실 안에서는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뒤따라온 카메라 기자들이 김병현을 향해 플래시 세례를 퍼부었던 것. 나이트클럽의 조명을 방불케 할 정도로 현란한 불빛 공세에 당황한 김병현은 교무실 한곳에 처박혀 벽을 바라본 채 울 듯 말 듯한 묘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 사이에 만나고자 했던 은사가 그곳에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김병현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운동장을 잽싸게 가로질러 뛰어가 택시를 타고 사라져버렸다. 불과 2∼3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병현이 오기만을 잔뜩 별렀던 언론과의 실랑이로 교무실은 순식간에 폭격 맞은 듯한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그 뒤로 김병현이 아예 언론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한 것은 물론이다.
그로부터 15개월이 흐른 지난 2월16일, 김병현은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한국의 방송 3사와 인터뷰를 하며 “저는 폐쇄공포증이 있으니 가급적이면 촬영시간을 줄여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인정하며 상대의 양해를 구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이같은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날 김병현의 말이 힌트다. 김병현은 “지금까지 전 너무 불쌍하게 언론에 비쳐졌어요.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맞을 때도 그랬고, 지난 겨울 트레이드설에 휩싸여 맘 고생을 할 때도 그랬죠”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김병현의 말을 되새김질해보면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이나 다름없었다. 즉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을 홍보하고 나이와 연봉에 걸맞은 행동을 하겠다는 설명이다.
김병현의 ‘변심’에는 그가 활동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풍토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메이저리그는 나이로 위치가 자리매김되는 한국과 달리 연봉으로 팀내 선수의 위치가 결정된다. 다시 말해 돈을 많이 받는 선수가 팀의 리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10년간 2억5천2백만달러(약 3천24억원)에 장기 계약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나이로는 20대 후반에 불과하지만 팀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병현은 올 시즌 연봉으로 3백25만달러(약 39억원, 인센티브 60만달러 별도)를 받는다. 객관적으로 볼 때 메이저리그에서 김병현의 나이에 그 정도의 몸값을 받는다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미국 진출 5년째라는 걸 상기한다면 박찬호가 그 당시 받았던 연봉보다 많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가난한 구단 살림으로는 아주 큰돈이다.
트레이드설로 혹독한 가슴앓이를 겪은 후 올 시즌 연봉 재계약을 마친 김병현은 그 동안 자신이 찾아야 할 위치를 깨달은 것이다. 더욱이 마무리가 아닌 선발 투수로 새로운 시험대에 오를 예정이 아닌가.
사실 김병현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극적인 행동으로 인해 팀내에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국내 언론은 이런 부분에 대해 밝히길 꺼렸지만 냉정한 현실이었다. 경기 도중 덕아웃 한구석에서 꾸벅꾸벅 졸지를 않나, 동료들과의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두려워 하질 않나…. 이런 행동들이 결국 ‘따돌림’을 자초한 계기가 됐다. 봅 브랜리 감독이 김병현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것과 지난 겨울 그가 트레이드 대상으로 검토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김병현은 이제 변화를 다짐하고 나섰다. 과연 얼마나, 어떻게 변할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시시각각 유쾌하게 변할 김병현을 기다릴 뿐이다.
국경선 스포츠서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