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희섭은 주전을 확정하기 위해 컴팩트 스윙을 만들고 있다. | ||
맏형인 박찬호(30·텍사스 레인저스)는 지난해의 부진이 일시적인 것이며, 에이스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줘야하고 김병현(24·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도 선발 투수로 전업한 후 MLB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최희섭(23·시카고 컵스)의 경우는 다르다. 25명 로스터(벤치에 들어갈 수 있는 등록 멤버)에 진입한다면, 올해가 첫 빅리그 시즌이 되므로 보여줘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즉 박찬호와 김병현은 시범 경기에서 잠시 주춤거려도 자리 걱정은 없지만, 최희섭은 일단 시범 경기에서부터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눈에 들어야 하는 부담감이 작용한다. 시범경기를 통해 나타난 코리안 3인방의 성적표를 통해 이들의 올시즌 메이저리그 생존법칙을 알아본다.
최희섭의 시작은 일단 합격점이다. 초반 두 경기에서 3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의 성적을 올렸고 스윙폼이 훨씬 부드러워져 더욱 기대를 걸게 한다.
최희섭의 경쟁자는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진 노장 에릭 캐로스. LA 다저스에서 박찬호와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캐로스는 지난 2년간 부상에 시달리며 성적이 계속 저하돼 결국 트레이드됐다. 올해 연봉이 8백만달러나 되기 때문에 구단에서는 벤치에만 앉혀놓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희섭으로선 캐로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주전 1루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빅리그 투수들의 변화구에 빨리 적응해야 하며, 왼손타자들만 전문으로 상대하는 ‘왼손 스페셜리스트’들과의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면에서 강점을 보이려면 현재보다 스윙을 컴팩트하게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본인도 이를 위해 왼팔이 빠르게 배꼽쪽으로 붙어 내려오는 컴팩트 스윙을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다. 스탠스도 좁히고 자세도 낮췄다. 다행히 최희섭은 왼손 투수들에게 큰 약점을 보이지 않아 주전 자리를 꿰어찰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무엇보다 한방이 있는 거포의 자질을 지녔다는 점이 큰 매력이자 장점이다.
박찬호와 김병현의 시범 경기 스타트는 매끄럽지 못했다. 박찬호는 3일 첫 등판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2이닝 동안 6안타를 맞으며 5실점하고 물러났다. 김병현 역시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첫 선발 등판한 3일 경기에서 2이닝 동안 4안타를 맞고 3점을 내줬다.
▲ 시범경기에서 부진했던 박찬호 김병현(왼쪽부터)은 초반 부터 달라진 모습을 각인시켜야 한다. | ||
경기가 끝난 뒤 박찬호는 비교적 밝은 모습으로 “목표 지점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고, 머리가 흔들리지 않게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을 보완하겠다”며 자신있는 표정을 나타냈다. 역시 강속구의 구속도 향상돼야 하지만, 그보다는 제구력을 가다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시속 150km의 패스트볼이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안팎의 목표물을 찾아든다면, 155km짜리 강속구가 이리 저리 날아드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위력을 지니게 된다.
박찬호로선 한 달 안에 투구폼의 안정을 찾고 시즌 초반에 좋은 성적을 올려주는 것이 필수다. 레인저스는 초반부터 AL 서부조 라이벌들과의 19연전에 이어 동부의 강호 보스턴과 양키스를 불러들여 6연전을 벌인다. 그 초반의 25경기에서 승률 5할을 지켜준다면 레인저스의 올 시즌은 희망이 생긴다. 그 중 박찬호는 5∼6번 선발로 나서게 되는데 4∼5승을 거둬줘야 제 몫을 했다는 말을 들을 것이 뻔하다. 4월을 필승의 투지로 부딪혀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2003년 시즌이 매끄럽게 풀릴 수 있다.
김병현은 빅리그에서 인정받은 마무리 투수면서도 스프링 캠프가 투쟁의 장이 돼버렸다. 마무리 투수에서 선발 투수로 힘겨운 전향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면에서 김병현은 통념을 깨야 한다. 선발 투수가 마무리로 변신해 성공하는 경우는 많아도, 구원 투수가 선발로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MLB에서 사이드암이나 언더스로우는 선발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깨기 어려운 의식의 장벽이 버티고 있다. 그러므로 일단 시범 경기에서 선발로도 충분히 잘 던질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선발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이 나오면 김병현은 셋업맨의 자리를 맡게된다. 마무리는 매트 멘타이로 잠정 결정이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멘타이의 부상이 없는 한 선발 경쟁에서 밀릴 경우 김병현의 보직은 중간 구원 투수다. 그렇게 된다면 본인으로서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내년 시즌이 끝나고 다시 한번 트레이설이 나돌 것이고, 결국은 다른 유니폼을 입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병현이 선발로 확실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투구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첫 등판에서도 김병현은 2이닝 동안 40개의 공을 던졌다. 9이닝으로 따지면 1백80개의 투구수로, 현대 야구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개수다. 한 이닝당 투구수를 15개 이하로 줄이고, 2번, 3번째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다. 또한 잠수함 투수는 왼손 타자에게 약하다는 고정관념을 허물어야 한다.
이렇듯 만만치 않은 장애물과 걸림돌이 메이저리그의 코리안 3인방 앞에 놓여 있지만 아직까지 이들 얼굴에서는 희망과 자신감이 가득하다. 시범 경기가 끝나는 3월 말 정도 돼야 계속 맑고 쾌청할지, 아니면 어두운 그늘이 잔뜩 드리워질지 3인방의 올 시즌 성적 기상도가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