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 체육계에 대한 정부 인사권의 폭은 상당히 좁아 보인다. 농림부 산하기관인 한국마사회와 문광부 산하의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을 직접 인사대상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국민생활체육협의회 등 체육단체와 각 경기단체의 수장들도 사실상 정부의 입김에 영향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따라서 새 정부의 체육정책과 인사의 향방에 각 단체는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선 ‘물 좋은 자리’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한국마사회장이 가장 주목된다. 연매출 6조원이 넘는 마사회는 인사와 경영 문제로 역대 정권에서 ‘복마전’으로 불려 왔다. DJ 정권 때도 어김없이 마사회장에 정치인들을 ‘낙하’시켰다. 그런 까닭에 노무현정부가 마사회장에 누구를 낙점하느냐도 주요 관심사로 떠올라 있다.
▲ 거취가 주목되는 체육계 기관단체장들.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윤영호 마사회장, 엄삼탁 생체협회장,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 ||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결심’에 따라 마사회장이 조기에 바뀔 가능성도 있다. 현재 정계에서는 마사회장에 전문 CEO가 임명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점치고 있다. 투명한 경영을 위한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마사회장은 전문가에게 맡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역대 마사회장 가운데 유일한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마사회의 획기적인 개혁을 추진하다 여권인사들의 압력에 의해 조기 퇴진했던 서생현 전 회장의 복귀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체육계에 적잖은 영향력을 지닌 ‘체육 3단체’로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 그리고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꼽힌다. 이 중 대통령이 직접 인사권을 행사하는 곳은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인 국민체육진흥공단뿐이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협의회도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문화관광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현 이종인 이사장은 지난해 9월 취임, 3년 임기 중 6개월 남짓을 보냈을 뿐이지만 새 정부 인사태풍의 영향권 안에 들어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이사장은 전임인 최일홍 전 이사장이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수뢰혐의로 구속되면서 생긴 2개월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임명된 ‘대타’의 성격이 짙다. 게다가 현 정부가 인수위 시절 밝힌 체육진흥공단 산하의 경정 및 경륜사업본부의 독립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장을 앉힐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할 때 개혁성이 짙은 의외의 인물이 체육공단의 수장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50개 가맹경기단체를 거느린 ‘거대조직’ 대한체육회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의 체육조직으로 이연택 회장이 지난해 5월, 임기중 사퇴한 김운용 전임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회장의 임기는 김운용 전 회장의 잔여 임기인 2005년 2월까지다. 대한체육회장은 가맹단체장들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정부의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는 쉽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체육부문 개혁정책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단체가 대한체육회와 가맹단체들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노무현정부가 인수위 시절에 제시한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분리 및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협의회의 통합 안’에 대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인수위의 제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대한체육회가 이연택 현 회장에 대해 갖는 생각도 남다르다.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대한체육회 80년 역사상 처음으로 체육행정전문가가 수장에 앉았다. 이제 재정자립 등 획기적인 사업을 추진하려는 시점에 있다”는 말로 비전문가의 영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국내 체육계의 또 다른 한 축인 국민생활체육협의회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실상 존폐위기의 기로에 섰다. 지난 1991년 창립된 국민생활체육협의회는 그 동안 단체의 업무와 효율성 때문에 ‘옥상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치인 출신으로 씨름협회장을 지낸 엄삼탁 현 회장은 지난 1998년부터 협의회를 이끌고 있다.
각 경기단체도 새 정부의 개혁정책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는 마찬가지다. 주로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기업인이 경기단체장을 맡아왔던 것이 지금까지의 관행. 기업인 단체장 이외에 기관장이나 정치인이 겸임했던 경기단체들은 이미 인사평이 난무하는 상태다.
강동석 한전사장은 지난 13일 대한배구협회장 자리를 내놓았다. 유용겸 경륜운영본부 사장도 지난 1월27일 대한펜싱협회장직을 사임하는 등 회장자리가 공석인 경기단체가 늘고 있다.
단일 경기단체로는 가장 큰 규모와 예산을 자랑하는 대한축구협회의 ‘운명’도 초미의 관심사다. 새 정부의 개혁방안에는 축구협회에 관련한 부분도 자세히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인수위는 대한축구협회를 법인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혁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축구협회 개혁방안이 추진될 경우 축구협회는 심각한 내홍을 앓을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 4백억원이 넘는 거대 예산을 집행하면서도 법인화를 늦춰 일부에서 자금 운영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난 대선 때 정몽준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공조하다 결별한 전력 때문에 더욱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러나 문광부의 한 관계자는 “축구협회의 법인화로 투명성을 꾀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현재 분위기를 전했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