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 와이번스의 엄정욱이 시속 160km의 직구를 선보이면서 국내 프로야구의 ‘속도 경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기아의 김진우(아래 왼쪽) 와 삼성 노장진도 이에 가세했다. 제공=SK | ||
엄정욱은 지난 3월 초 오키나와 캠프 자체청백전에서 시속 160km의 직구를 던졌고, 시범경기에서도 150km대 직구를 잇따라 선보였다. 마운드에서 포수 미트로 빨랫줄같이 내려꽂히는 통쾌한 강속구의 매력에 야구팬들의 흥분이 고조되고 있다.
엄정욱이 지난 3월3일 기록한 160km의 직구 구속은 연습경기에서 기록된 것이라 비공인이긴 하지만 1백년 역사의 한국야구에서 처음으로 150km의 한계를 뛰어넘은 대기록이다. 엄정욱은 지난 시즌에 156km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 현재까지 국내 무대에서 기록한 최고 구속이다.
엄정욱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어쩌다 한 번 기록하는 스피드가 아니라 던지는 직구마다 150km를 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추세라면 공식시즌에서 엄정욱이 160km의 직구를 팬들에게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스피드건을 이용한 구속 측정이 일반화된 1990년대 이후 국내 최고구속은 국보급 투수 선동열이 갖고 있는 155km였다. 공식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최동원도 비슷한 구속을 던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찬호도 한양대 재학 시절 156km의 강속구를 선보인 뒤 메이저리그로 향했다.
엄정욱의 광속구 시위에 국내 마운드의 다른 강속구 투수들도 한껏 스피드를 올리고 있다. 기아의 차세대 에이스 김진우도 시범경기에서 150km대 초반의 투구를 펼쳤고, 삼성의 이정호도 153km를 기록하며 강속구 경쟁에 합류했다. 이밖에도 LG의 신윤호, 삼성 노장진 등도 150km대의 강속구를 선보일 준비를 끝낸 상태다.
▲ 기아의 김진우(왼쪽)와 삼성 노장진 | ||
이론적으로는 160km대의 강속구를 타자가 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구가 된 160km대의 강속구가 들어오면 타자는 멍하니 서 있거나 헛스윙을 할 수밖에 없다.
현역시절 투수와 타자를 모두 경험했던 박노준 SBS해설위원은 “18.44m는 투구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지만 실제로 투수는 투구판 1∼1.5m 앞에서 공을 뿌리고, 타자는 홈플레이트보다 한발짝 앞에서 타격을 하기 때문에 실제 반응시간은 그보다 더 짧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며 “그것을 감안하면 0.15초 이내에 구질을 판단해 스윙을 해야하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박 위원은 “150km가 넘는 공을 던지는 투수를 타석에서 마주하면 엄청난 공포감이 들기 때문에 자기방어적으로 방망이가 나가 헛스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150km가 넘는 강속구는 마운드에서 결정적인 무기로 작용하기 때문에 스피드를 향한 투수들의 집념은 너나할 것 없다.
그라운드에서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감독들은 투구 스피드를 올리는 자기만의 비법 한 가지씩은 지니고 있다. 투수 출신으로 투수 조련사로까지 불리는 두산 김인식 감독은 “와인드업 후 키킹할 때 발을 순간적으로 채주면 스피드가 3∼4km는 향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력에 의해서 스피드가 무조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강속구 투수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당당한 체구, 강한 어깨, 튼튼한 하체, 유연한 몸 등이 강속구 투수들이 지녀야 하는 필수조건이다. 선동열 KBO 홍보위원의 현역시절을 상상하면 쉽게 강속구 투수들의 조건을 짐작할 수 있다.
변화구나 제구력은 훈련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지만 스피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게 야구계의 정설이다.
강속구를 던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후유증도 있다. 손가락 물집이 그것. 강속구를 던지기 위해서는 손가락으로 야구공의 실밥을 양쪽으로 걸치고, 투구시 강하게 채야 하기 때문에 마찰에 의해 물집이 생기게 된다.
타자에게는 마의 구속인 150km대의 빠른 볼을 던지는 광속구 투수들. 그렇다면 이들의 강속구를 제대로 때려내는 것은 불가능하기만 할까. 하일성 KBS 해설위원은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보고 때린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훈련을 통해 감각적인 스윙을 하고, 투구동작을 보면서 예측해서 타이밍을 맞춰 방망이를 휘두르면 공을 맞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순모 프리랜서